마을탐방_계양구 ‘귤현 그림책마을’

그림책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

계양구 귤현동은 행정이나 편의 시설도 부족한 작은 동네다. 몇몇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방치된 비밀의 화원이기도 하다. 관리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생해야 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혹은 섬같은 마을이라고도 한다. 아파트와 상가들이 한곳에 밀집되어 있고 옆동네라고 할 수 있는 마을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편함이나 자녀들의 교육 등의 이유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표현에는 분명하게 ‘비밀의 화원’이라는 말도 들어있다. 화원은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이 마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발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계양구 귤현동의 ‘귤현 그림책마을’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마을공동체이다. 귤현동을 보물로 생각하고, 그림책을 가지고 공동체의 소통을 이뤄내어 마을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인터뷰는 5월 4일에 ‘귤현 그림책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수연 선생님, 이경애 선생님, 안영미 선생님과 같이 진행했다.

‘귤현 그림책마을’ 소개와 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윤수연 선생님(이하 윤) : 귤현 그림책마을은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단체입니다. 여러 시설과 장소도 부족한 편이지만 이웃들이 자꾸 마을을 떠나기 때문에 결핍된 뭔가를 채워보고 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활동을 시작한 공동체입니다. 끈을 만든다는 것은 같이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동네에 정이 들게 만드는 것을 의미해요. 특히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하여 고민했고, 그것에 대한 해답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소통의 도구로 선택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소통의 도구로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경애 선생님(이하 이) : 우리는 단순히 그림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의 감정과 우리의 감정을 찾아서 헤아려주는 매개체로써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어요. 보통 그림책 모임이라고 하면 그림책을 읽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시지를 찾는 독서 활동의 연계로 생각하는데, 귤현 그림책마을의 활동은 그것과 차별된 것이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본 주인공의 상태나 감정보다는 책을 읽고 있는 아이 혹은 독자의 감정과 생각에 중점을 둬요. 예를 들어 그림책 속에서 우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왜 주인공이 우는 것일까’가 아닌 ‘너도 이렇게 울면 속이 시원하니?’라고 묻는거죠. 그러다보면 더 나아가서 왜 그렇게 울었는지, 슬펐던 근원이 무엇인지도 물어볼 수 있어요.

윤 : 감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활동하는 엄마들 중에 어떤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림책을 더 잘 읽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그것을 하면서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아요. 솔직히 사람들이 살면서 감정에 대한 부분들이 불안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 감정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주 얘기해요. 그런 감정들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그림책은 아주 매력적인 수단입니다. 그림책은 짧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짧은 시간 안에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안영미 선생님(이하 안) :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초등학생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다양한 그림책을 읽으면서 나의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되기도 하고, 우울증이나 육아로 지친 엄마들 혹은 병환으로 아프신 분들의 마음도 그림책이 만져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감정 상태를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말을 잘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림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하게 돼요. 그런 과정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아이의 마음, 내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림책마을 모임에 참가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윤 : ‘귤현 그림책마을’의 구성원들은 총 10명의 엄마들입니다. 인터뷰에는 3명의 엄마들만 참석했지만, 나머지 7명의 엄마들도 각자 재능과 열정을 한가득 가지고 있고 보석 같은 분들이에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해내는 분들입니다. 엄마들이다보니 육아나 살림 문제로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마을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귤현 그림책마을’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요?

이 : 계양 교육혁신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그림책마을 엄마들이 계양구 내 다른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로 수업을 나가요. 정말 재미있는 수업들인데 정작 우리 마을에서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수업을 우리 동네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월간 그림책’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매월 계산초등학교에서 진행했던 수업들 중 시기, 계절, 행사, 상황, 장소에 어울리는 책을 한 권 선정합니다. 지난 4월에도 봄비와 어울리는 ‘노란 우산’ 그림책을 선정해서 아이들을 모집하여 같이 그림책을 읽고 감정 활동에 관한 수업을 진행했어요.

윤 : 우리 마을에 있는 상가도 이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상가와 어울리는 책을 선정해서 상가를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상가와 연계해서 상가 내에 책을 배치하고 그림책을 더 널리 알라고 읽을 수 있도록 같이 협의하고 있어요. 또한 ‘찾아가는 그림책’이라고 해서 외출이 힘든 이웃들, 예를 들어 환우들을 찾아가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할 계획이에요. 그 밖에도 어린이집 등에 가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있어요.

귤현 그림책마을 활동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이 : 일단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상황이 힘들어요. 마을의 문화행사나 프로그램들은 보통 지역의 도서관과 주민센터에서 기획하거나 진행하는데, 우리 귤현은 도서관과 주민센터를 이용하려면 차량을 이용해서 옆 동네로 가야하거든요.

윤 : 그래서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귤현 그림책마을의 큰 계획이자 꿈입니다. 도서관이 생긴다면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같이 놀면서 그림책도 보고, 이웃끼리 가끔 앉아서 수다도 떨고,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거에요. 사랑방의 기능도 하고, 귤현동에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정이 있는 장소,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 힘들면 에너지도 받아가는 장소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안 :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행사 부스 등 기자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런 면에서도 행정기관에서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려움들이 아직 많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즐겁게 잘 헤쳐나가고 있어요.

그림책모임 활동을 하면서 잊을 수 없거나 감동을 받았던 순간들이 있나요?

이 : 마을에서 ‘달빛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정월대보름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 안타까워서 김윤경 선생님, 김보희 선생님과 함께 부럼이라도 나눠주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어요. 원래 계획은 보름달을 보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어요.

프로그램 시작 전에 모인 사람들이 어색하게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특별한 생각 없이 가방에 넣어뒀던 ‘누렁이의 정월대보름’이라는 그림책 한 권을 소리내어 읽었어요. 달이 아직 뜨지 않은 밤에 가로등 불빛과 휴대폰 플래시에 책을 비춰가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더 놀라웠던 것은, 뛰어놀 줄 알았던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 그림책을 집중해서 보는 모습이었어요. 덕분에 아이들이 정월대보름이나 부럼, 전통놀이 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LED로 된 초를 하나씩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공원에 도착하여 동그랗게 모여 앉았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달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초를 동그랗게 배치하고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달을 만들어보자고 할 때, 달이 정말 영화처럼 구름 사이로 나타났어요. 그 때 모여 있던 50여명의 주민 모두가 함께 달을 보고 환호했어요. 그림책을 보고 달을 보면서 다 같이 감정을 나눴던 그 경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 : 귤현동 마을 자체에도 역량 있는 분들이 매우 많아요. 그런 경험들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가르쳐주고 공유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들을 잘 고민해서 마을이 더욱 잘 뭉쳐지도록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귤현 그림책마을 활동을 행복하게,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합니다.

이 : 엄마들이 고생을 많이 해도 결국은 그 결과물들이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귤현동에는 타 지역에서 이사온 이웃들이 많아요. 그 아이들에게 귤현동이 고향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고향에 대한 추억을 즐거웠고 행복했던 귤현동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 :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고향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또한 귤현 그림책마을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와 마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 : 보통 이런 활동들을 하면 사람들은 ‘저런 걸 왜 하지?’라고 생각하며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 마을에서는 ‘좋은 일 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수혜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이것이 마을이 가지고 있는 신뢰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마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마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도 더 내 일처럼 느끼고, 투명성 있고, 공동체를 위해서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이 : 이 자리에 참석 못한 엄마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요. 허화란 선생님은 ‘그림과 글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그림책을 탄생시키듯이, 너와 나 우리가 조화를 이루어 아직 무엇인지 잘 모르는 뭔가를, 그러나 멋진 그것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즉, 귤현동 이웃들이 모여서 뭔가 멋진 것을 이룰 것 같은 기대감이 귤현 그림책마을 속에 들어있어요. 김윤경 선생님은 귤현 그림책마을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임이다.’라고 우리 모임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안 : 그림책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지고, 내 가정이 행복해지고, 내 이웃이 행복해지는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웃과 마을이 행복해지면 절대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이 너무 좋고 행복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에요. 시설이 부족해서 자식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동네를 떠나시는 분들이 많지만, 행복하게 웃으며 잘 지내고 정을 쌓다보면 귤현동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글 홍보담당 / 사진 ‘귤현 그림책마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