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정책_마을과 동네책방

책방산책 책방지기 홍지연

우당탕퉁탕.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 셋이 우르르 헐레벌떡 몰려 들어온다. “물 주세요!”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아이들에게 차례로 물 한잔씩을 가득 따라주면 꿀떡꿀떡 시원하게도 마신다. 목을 축인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책을 편다. 그렇게 15분 즘이 흐르면 아이들은 다시 우당탕퉁탕 놀이터로 훌쩍 가버린다. 자전거를 타다 마음의 양식을 쌓으러 왔다며 물 한잔 마시고 만화책을 읽고 가는 친구들도 있고, 학원 갈 시간이 아직 안 되었다며 책방에 앉아 책을 읽고 가는 친구들도 있다.

가방만 덩그마니 놓아두고 길냥이들 밥 주러 갔다가 돌아와 책을 보다 가는 친구들도 있다. 화장실이 급해 들어왔다가 느긋하게 책을 읽고 가는 친구들도 있다. 동네 놀이터 앞 책방의 일상적인 풍경의 하나다. 재미나게도 물만 먹고 가거나 맡긴 가방을 그냥 찾아가는 법이 없다. 10분이고 15분이고 꼭 책을 읽고 간다. 물 한 잔 마신 값을, 가방을 맡아준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하는 걸까. 어쨌든 아이들은 여기에 오면 책을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책방 문을 열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동네에 서점이 사라진지 너무나 오래 되어서인지 작은 동네 책방을 신기하고 낯설게 본다. 도서관도, 책대여점도 아니고 서점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책방 이용법을 묻는 분들도 있다. 언제든 오가시며 마음껏 둘러보시고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구입하시면 된다고 답한다. 두 번째 질문은 책이 팔리나요? 네, 그럼요. 어떤 날은 한 권, 또 어떤 날은 열권도 팔린다고 답한다. (물론 그 어떤 날들이 몇 손가락 안에 꼽히긴 하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하하) 세 번째 질문은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어린이·청소년·주민 모임을 안내한다. 때때로 강좌나 작가와의 만남 등이 있는데 원하신다면 연락처를 남기고 가시라고 한다.

책방은 책을 매개로 하는 모임에 언제든 열려 있다. 마을학교가 열리는 때엔 동시교실이 열리기도 하고 마을공동체 모임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제 11월 말이면 책방 문을 연지 2년이 된다. 그간의 변화라면 여기에 작은 책방이 있다는 걸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 책을 둘러보고 사가는 사람들이 천천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 마시러 드나들던 친구들 중 부모님이나 할머니 손을 잡고 와 책을 사가기도 하고 길냥이들 밥을 주러 가방을 맡기던 친구는 김중미 작가의 책을 만나 한 권 한 권씩 책을 사서 읽고 친구들에게 읽어보라 권하며 11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릴 김중미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여 기다리고 있다. 쉬는 월요일에 책방지기가 불을 끄고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는 걸 아는 친구는 책방에 가도 되느냐고 카톡을 보내기도 하고, 매주 금요일마다 책방에 새로 들어온 책을 보러 와 용돈지갑을 열어 책을 사가는 친구도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용돈 모아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고 돌아간다. 천 원짜리 22장을 고이 접어 좋아하는 배우 팬 미팅에 책을 고르고 골라 선물로 들고 간 친구도 있다. 오가며 드나든 만큼 책방 이용방법을 스스로 알아가는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이 슬슬 생기고 있다.

요 며칠 이곳을 드나드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책방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느냐고. 모두 하나같이 그렇다고 답했다. 왜? 졸릴 때 베고 잘 쿠션이 있어서요. 화장실 급할 때 딱 좋아요. 어른들이 어떤 책을 보는지 궁금한데 도서관에서는 그러기가 힘들어요, 6학년인데 중학생들 읽는 책도 빌릴 수가 없는데 여기에 오면 어떤 책이든 궁금하면 볼 수 있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데 내가 사서 보는 책은 그렇지가 않아요, 읽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고 두 번 세 번 읽을 수 있어요. 내가 시간될 때 아무 때고 왔다가 아무 때고 갈 수 있어요, 엄마한테 책 사달라고 하면 검사받는 것 같은데 여기는 내 마음대로 보고 살 수 있어요. 어른들이나 우리들이나 너무 크게 떠들면 똑같이 뭐라고 그래요. 어른들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가끔이지만 운 좋으면 먹을 게 있어요. 돈 없어도 편하게 올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가 좋아요.

듣다보니 여기가 서점인지, 쉼터인지, 사랑방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책방이라고 말해주어 참 고맙다.

사실 나도 그렇게 자랐다. 배다리가 한창 번성하던 시절 그 많던 헌책방은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커다란 서재였고, 맞은 편 새 책 총판거리를 노닐고 있으면 운 좋게 잡지 파본을 얻어 읽기도 했으며 동인천 대한서림 1층부터 4층까지 곳곳의 책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때때마다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때 어린 나도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어느 순간 용돈이 생기고 돈을 벌면서부터 책을 샀을 것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을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들었던 그 수많은 책방들이 나를 책방지기로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내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책방에서 책을 사던 수많은 어른들이 있었을 것이다.

독자는 하루아침에 쉬이 탄생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하나 둘 셀 수 있는 실적으로도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사람들의 몸과 마음속에 녹아내려져 이곳저곳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 믿는다.

내친 김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말고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우리 동네엔 얼마나 있을까. 예전 동네 골목길에 있던 널찍한 평상이 떠오른다. 찐 감자 고구마 옥수수 내어놓고 나누어 먹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앉아 쉬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낮이고 밤이고 두런두런 마실을 하던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작지만 넓었던 공간, 평상.

지금 동네책방 산책은 동네의 그런 열린 평상을 꿈꾼다. 이 평상은 책방지기 혼자만 꿈꾸는 것이 아니다. 5년여 간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며 함께 한 동네 사람들, 관계와 소통의 플랫폼으로 책방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에누리 없는 책방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꾸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