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지속가능한 강화 마을살이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강화 마을살이
– 마을교육공동체와 학교의 만남을 중심으로

안 성 균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대표
산마을고등학교 교장

Little foreast in Ganghwa

‘Little foreast in Ganghwa’는 2018년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에서 강화지역 청장년일자리플랫폼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홍보 문구이다. 마침 김태리, 류준열 주연의 <리틀포레스트>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도시생활과 경쟁사회에 지친 청년들에게 잔잔한 위안을 던지던 즈음이라 이를 차용했었다. 2015년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의 태동 이후 양도지역 마을에서, 그리고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인 산마을학교에서 줄곧 고민했던 주제가 어떻게 하면 20,30대 청년들과 산마을고 졸업생들이 강화에 남아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였다.

그들을 위한 기반,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는 공동의 인식이 꿈틀거렸고, 마침 고용노동부와 인천시의 일자리 고용혁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청춘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하여 전문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마을교육공동체로서 본 사업에 선정되었다. 선정 당시 농촌지역에서 마을교육공동체가 수행하는 청년들을 위한 마을연계 프로젝트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일반적인 취창업률을 먼저 따지지 않는 신선한 정성평가에 다들 고무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1년 사이 평가기조가 바뀌고 말았다.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비난을 받으면서 그랬는지 고용노동부는 투자대비 단순 취창업률에 대한 정량평가로 돌아섰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강화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시도했던 청춘마을을 배제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인천시는 나름 지역기반 프로젝트로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여 계속 사업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규모는 반토막 났으나 2019년에도 청춘마을 사업은 유지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길게 서술하는 이유는, 농촌지역에서 살고자하는 청년들의 경제생활을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해야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 농어촌지역에 해당하는 강화에서 청년을 위한 일자리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매우 비관적이었다. 비록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거리밖에 안되지만, 수도권임에도 고령인구가 어느 지방보다 많은 지역이었다. 도시지역에서조차도 청년들을 모아서 교육과 훈련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과연 몇 명이나 올지 우려가 앞섰다. 일단 귀농 귀촌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젊은 층과 자연을 좋아하거나 생태적인 삶을 꿈꾸는 그룹을 주요 대상으로 잡아서 그들이 선호할만한 프로그램을 설계하였다. 사업 성격상 나이 제한없이 강화 내에서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적정기술에 관심이 동할만한 장년층도 념두에 두고 모집을 하였다. 혹시라도 정원을 못채울까싶어 강화지역민을 겨냥한 주중반과 외부에서 찾아올 청년을 겨냥한 주말반 두 과정을 설정하였는데, 프로그램이 매력적으로 어필한 탓인지 예상보다 많은 정원의 두배가 넘는 신청자가 쇄도했고 절반을 탈락시켰다.

크게 자연발효, 생활적정기술, 대안농법, 문화기획 등 4개 분과를 개설하여 천연발효빵, 수제맥주, 전통주, 직조, 화덕만들기, 돌담쌓기, 축제기획, 초음파농법, 밀농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분포는 강화지역에 입주한 30~40대 학부모 ‧ 경력단절 여성군 ‧ 50~60대 장년층 ‧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김포와 수도권지역의 20~30대 대안적인 사회와 공동체를 꿈꾸는 청년군 등이 고루 참가하였다.
결과적으로 50%의 취창업률을 기록했지만 실제 생업에 뛰어든 이들은 훨씬 적다. 제대로 준비하기엔 6개월 남짓 불과한 교육훈련과 기본적인 취창업 컨설팅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청춘마을은 하나의 플랫폼 내지는 인큐베이터 정도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결실은 농촌지역에서도 청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운영가능하다는 점과 20~40대 청장년층 가운데 농촌을 꿈꾸는 잠재적 생활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2차년도를 계획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하는 숙제를 풀어갈 참이다. 그들을 위한 사회적 경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양도면 도로가에 땅을 구입해서 상가를 저렴하게 임대해주겠다는 진동의 회원도 있고, 별도로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관련사업을 유치하여 수익 공간사업을 준비하겠다는 진동 내부의 그룹도 생겼다. 이렇게까지 청년을 동네에 뿌리내리도록 하자는 취지는 결국 지속가능한 사회, 마을, 삶은 전세대가 고루 깃들어 사는 곳일 때 실현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생업에 종사하는 기성세대가 씨를 뿌리고, 아직 불안정하지만 새로운 일을 찾는 청년들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다만 젊은 세대가 이른바 ‘꼰대’로 불리우는 이들과 협업을 하려면 꽤나 마음을 많이 내야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다.

마을교육공동체

몇 년 전부터 ‘마을공동체’, 또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운동, 교육운동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사실 새롭다기 보다는 재조명받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미 우리의 시민운동, 교육운동사에서는 유사한 선구적인 흐름들이 면면히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시민운동단체나 마을단위의 작은 조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교육현장에서도 직접적으로는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의 원조격인 ‘지역사회교육운동’이 수십년간 바닥에서 움직였던 역사가 있다. 다만 최근의 유사한 운동은 관주도이거나 지자체가 깃발을 들고 예산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 기본적인 철학과 활동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무튼 마을교육운동은 서울, 경기를 넘어 강원, 전북 등 온나라로 퍼져나가 곳곳에서 들썩인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교육운동이 이젠 학교의 담장을 허물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몇 십년전 ‘학교는 죽었다’고 탈학교를 선언했던 이반 일리치의 예언을, 학교를 없애자는 주장이라기보다는 학교다운 학교, 삶을 가르치는 학교로 변모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바람이 단위학교에서 불어야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와질 필요가 있다. 교사의 자발적인 자기 변혁의지라는 전제가 장벽이 되어서도 추진력이 생기기 어렵다. 오히려 이제는 학교만이 교육의 주체라는 관점을 탈피하고, 학교 밖에서도 변화의 동인을 끌어와야 한다. 거창하게 거버넌스, 협치라는 말을 안쓰더라도 교육의 장이 학교만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교와 지역, 가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아이들의 삶을 돌보고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한 때는 대안학교가 그 역할을 담당하며 교육적 상상력을 북돋기도 했었고, 학부모 교육단체가 정책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박근혜정부 들어서서는 중학교의 자유학기제가 학교 밖의 교육 인프라를 활성화시키기도 했다. 비록 절름발이 교육시책이긴 하나 교육의 장을 학교 밖으로 확산하는데는 나름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히 우려스러운 점은 공교육의 언저리에서 합법적이면서도 공적 가치를 띤 제2의 사교육 시장이 창성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교육공동체, 또는 학교 밖의 지역교육운동의 핵심은 ‘마을’과 ‘공동체’라는 지향을 담보하는 것이 필수적 요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을교육공동체와 학교

서울의 마을학교와 마을결합형학교, 경기도의 꿈의 학교는 대표적인 마을교육공동체와 학교의 협치모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기도 의정부 지역의 꿈이룸학교와 그 후신인 몽실학교는 교육청의 인적‧물적 지원과 민간 대안학교의 교육 콘텐츠, 지역의 교육운동단체, 그리고 공교육 교사들의 적극적인 결합으로 만들어낸 훌륭한 사례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주체로 학생들이 우뚝 섰다는 점이다. 교육 프로그램과 운영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며 자기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청과 파견교사는 판을 깔아주고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역시 담당자들의 혼신의 노고가 들어갔음을 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야말로 ‘학교 밖 학교’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안에서의 판짜기는 어떤 측면들이 고려되어야 할까? 무엇보다 교사의 업무가 가중되는 쪽으로 가면 부하가 걸리기 십상이다. 교육당국에서는 마을교육과정을 설계하여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도록 유도하고, 희망자를 대상으로 자율연수를 개설하는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공간과 재정을 적극 확보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나는 교육과정 구성이나 교사연수보다는 학생들을 키우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실질적이라는 경험치 때문이다. 앞서가는 타시도의 사례처럼 지자체와 교육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속도록 확산되는 분위기는 못타더라도 내실있는 교육의 질적 향상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산마을고등학교에는 ‘마테’라는 학교협동조합이 활동한다. 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주민 등이 조합원으로 가입된 학생중심의 협동조합이다. 여늬 학교협동조합처럼 학교가 주도하거나 학부모가 뒤를 봐주는 조직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이다. 일부러 정식 법인등록을 하지 않았고, 담당교사나 학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모든 운영과 조직활동, 회계는 협동조합의 원리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학교매점과 문화카페사업, 교육사업, 지역사업이 자발적으로 왕성하게 돌아간다. 특히 지역사업팀은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며 진동의 주체로 활약한다. 지역교육문화예술장터인 씨마켓과 마을잔치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학생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몇 년전 ‘인천 지역교육운동 활성화 방안 정책연구’ 보고회에서도 자문위원으로 참가하여 이러한 모델을 인천형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전형으로 조심스럽게 제시한 바 있다. 먼저 교육청에서는 각 학교단위의 학생동아리나 교사학습공동체에 협동조합 및 마을교육공동체 관련 사업을 공모한다. 초창기에는 활동비 수준 정도만이라도 지원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관련 단체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예상보다는 빠르게 교육현장에 보급되리라 생각된다.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등의 유관단체의 사전 교육활동이 학교와 지역 곳곳에서 펼쳐지면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고, 시의회와 협조하여 타시도와 같이 지원조례를 제정하여 재정을 확보하면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2018년 들어, 인천시 교육청 사업에 교육협동조합과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마을교육지원단이 설립되어 이의 현실화가 더욱 속도를 받으리라 본다.

산마을고등학교 학교협동조합 마테는 2017년부터 인천시 마을만들기 지원사업 공모에 ‘마을에서 만나고, 마을에서 공부하기’라는 주제로 사업 선정되어 지역사업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2019년도에도 ‘마을과 어울려 하나되기’라는 이름으로 마을아띠 프로그램을 왕성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사업선정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세무서에 임의단체 등록을 했고, 미성년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사회적 경제와 마을공동체 활동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행사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7년 5월에는 공모사업 내용 중에 일환인 ‘구워먹기 축제’를 마테 친구들이 기획 진행하였는데, 산마을학교 소재 면지역의 00중학교의 희망 학생들과 그 가족을 초청하여 상호교류하는 행사를 성황리에 잘 치루었다. 11월에는 마테의 교육사업의 한 축인 <대안사회정기모임 go>(일명 ‘대꼬’)에서 ‘우리가 꿈꾸는 마을’이라는 주제로, 18년 11월에는 ‘청년자립’을 주제로 오픈세미나를 개최하였고, 12월에는 인천 최초로 학교협동조합 컨퍼런스를 아이들이 주도하여 성황리에 치루었다.

협동조합의 7가지 운영원리와 마을교육공동체의 지향이 서로 만난다면 대단한 시너지를 내리라 낙관한다. 아직 학교와 교사가 준비되지 않은 마당에 너무 앞서 간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교육판은 학교만의 자기완결 구조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리라 본다. 어쩌면 진짜 학교는 마을이나 시민사회일지도 모른다. 학교가 모든 것을 다 담고 해결하려던 교육의 근대적인 양상은 변화무쌍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일리히의 외침처럼 개개인의 삶의 모든 순간을 공부하고 나누고 돕는 순간으로 바꾸도록 고양시키는 교육망 형성으로 바뀌어가는 전환점에서 마을교육공동체는 매우 유의미한 실체이다. 그는 교육의 자유를 제한하고 독점하는 제도화된 학교를 바로 잡기 위해 ‘자율적 공생’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탈학교 사회에서 훌륭한 교육제도의 목적으로 꼽았던 3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부하기를 원하는 모두에게 그 나이에 관계없이 필요한 자원에 접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고자 원하는 사람에게 그로부터 배우고자 원하는 사람을 찾게 해주어야 한다. 셋째, 공중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도전을 알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은 지금 학교의 패러다임으로는 접근불가로 보인다.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대체한 ‘공부망’ 속에서 도서관, 전시실, 극장, 공장, 공항, 농장 등이 교육의 도구로 사용되고, 각자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공생공락(conviviality)의 개념은 흡사 ‘학습마을’ 또는 ‘학습공원’의 묵시록처럼 다가온다. 모쪼록 우리 학교가 삶과 유리된 섬으로서, 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기관으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발을 딛고 배우는 생활 공동체, 보편적 교육이 가능한 ‘삶의 학교’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미래교육의 갈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산마을 졸업생-청년들의 강화살이

앞서 언급한 산마을고의 학교협동조합 마테를 졸업한 친구들 중에는 지역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정이 들고 학교 주변에 남아 살고 싶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단을 내릴만한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호구지책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지 못했다. 대개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마을과 끈이 떨어졌는데 18년 여름에 6명의 산마을고 졸업생들(그들 모두 마테 출신)이 2주간 학교주변 마을에서 살아보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각자의 희망패턴과 활동을 통해 강화살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남고자 했던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산마을고 학교협동조합 마테의 학생들이 마을(정확하게는 마을교육공동체, 진동)과 가까워지면서 농촌마을에 남겠다는 희망이 조금씩 쌓이다가, 드디어 18년 3학년 중에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마을에 남아서 살겠다며 4명의 친구들이 대내외적으로 공식 선언을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청춘마을’의 교육훈련과정에도 참여했으며, 19년 현재 강화에 남아 살고 있다. 산마을고 20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개교 이래 산마을고 졸업생 가운데 강화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단 1명에 불과하다. 4명의 친구 중 한명은 마을의 장애인 자활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제빵사로 취직을 했다. 다른 3명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강화에서 어떠한 삶을 도모할지를 고민하고 탐색하는 중이다. 아르바이트로 강화살이를 채우다 떠날까 싶어 다소 걱정은 되지만, 이제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그들에게는 마음껏 실패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실컷 고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틴 루터 킹의 말처럼 계단의 앞과 끝을 다 보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발부터 내딛는 행동이 더 어울리는 세대이기도 하다. 일단 마을에서 4명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골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일 터이다. 그러나 그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품어주고 밀어주려는 어른들(산마을고 교직원과 진동 식구)이 주변에 있고, 강화읍에도 ‘청풍상회’라는 2,30대 청년 생활공동체가 있다. 그들은 8년전 화덕피자 가게에서 출발하여 게스트하우스와 펍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한편으로는 문화기획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선배 유경험자들이다. 가게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시장의 기성세대와의 갈등으로 한 때는 위기도 겪었지만 잘 극복하여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이전에도 산마을 및 진동과의 왕래도 잦았고, 필요할 때 서로 돕겠다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강화에 청년 모임체가 없지만, 차후 청년세대 간에 작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참고삼아 마테의 학생들이 작성한 2019년도 사업계획서의 관련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지역의 학생들이 지역의 청년으로 남으려는 연결고리와 학교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사회로 확장되어가는 인식의 지평을 엿볼 수 있다.

◦ 우리가 졸업하고 살아갈 사회는 경쟁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기주의가 되어가는 사회이다.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을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지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안사회를 꿈꾼다. 산마을 고등학교 협동조합 ‘마테’는 현대 사회의 모습에 따라가지 않기 위해, 또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기 위해 모여왔다. 우리는 대안적인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함께 나누는 ‘대안사회 GO'(이하 ‘대꼬’)라는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대꼬’에서는 함께 사는 것에 가치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부를 한다. 또한 대안사회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공유한다. 작년에는 우리 각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올해는 우리가 그리고 있는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고 소속되어있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대꼬’를 함으로서 경쟁과 개인주의의 모습이 아닌 함께하는 모습으로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고, 실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강화에는 마테가 소속되어 있기도 한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이하 진동)가 있다. 작년에 진행했던 ‘마을아띠’라는 사업에서는 청소년들(동광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했었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또래 청소년들과의 만남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올해는 진동 구성원 전체와의 교류를 위주로 진행할 계획이다. 작년의 과정들을 바탕으로 진동가족들을 만남으로서 더 가까워지고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산마을 협동조합 ‘마테’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속되어있는 마을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올해 진동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마을 발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함으로써 깊은 유대감과 소통, 관계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킨포크족과 사토리세대, 그리고 비빌 언덕

Kinfolk는 친척이나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인데, 점차 낯선 사이지만 식사를 함께 하며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사용되고 있다. 킨포크족의 유래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화가, 사진작가, 디자이너, 농부 등 40 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처음 모여서 텃밭에서 직접 가꾸고 재배한 식재료로 함께 요리하고 나눠먹으며 즐겁게 식사를 한 것이 시초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Kinfolk>라는 잡지로 펴냈고 이것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먹는 행위 자체보다는 함께 나눠먹으며 소박한 시간을 함께 즐기고 교감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식사 뿐 아니라,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사람들끼리 삶을 공유하는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다.

Sato(悟)ri 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일본의 젊은 세대로, 돈벌이ㆍ출세ㆍ연애ㆍ여행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세대를 일컫는다.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적게 벌어 적게 쓰며 그 속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경제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던 청년들이라는 점에서는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른 배경을 지닌다. 90년대 버블 경제의 몰락 이후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저출산의 지속으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이 필요없는 저임금 일자리가 남아돌아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태여 정규직에 목매면서 팍팍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충실한 그들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1970년대 청년세대보다 두배 이상 높아졌다고 한다. 결혼, 출산, 연애, 내집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한국의 5포세대는 오히려 희망난민이라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에 더 근접했는지도 모르겠다. 사토리세대 행복의 원인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과연 희망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일본의 사토리세대와 비슷한 부류가 ‘YOLO’(You Only Live Once)족이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자는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절망의 표현이자,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희망의 주문을 담은 이중적인 신조어이다. 그러나 소박한 사토리세대와는 달리 현재의 삶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맛있고 비싼 외식을 찾아다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토리세대가 여행 욕구마저도 적은 반면에 욜로족은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과 취미생활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일본의 사토리세대나 한국의 N포세대 등은 노오력마저도 통하지 않는 금수저 세상,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피로사회가 낳은 결과물이지만, 역으로 나는 그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같은 존재들이 사토리세대나 킨포크족이라고 평가하는 편이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금전만능 체제에서 자본의 노예로 편입되지 않고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은 내겐 무척 긍정적인 그림으로 다가온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군의 저항세력들이 전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월가를 점령했던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퍼머컬쳐(Permaculture)의 영역을 거론하지 않아도 지속가능한 삶과 세상을 향한 작은 날개짓으로 말미암아 여기 강화를 비롯하여 이 땅의 이곳 저곳에서 유쾌한 작당을 하며 재미지게 사는 젊은 무리들의 웃음꽃이 피어나길 소망한다. 단 두명의 청년만으로도 그들이 사는 마을은 2% 이상 생태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을생태계의 허리로서, 교육생태계의 허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돕고 확장하면 전환은 일어난다. 이를 위해 산마을과 진동의 몇 살이라도 더 나이들은 어른들은 그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어울리며 일할꺼리를 만들어 가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자연과 벗하면서, 적당히 벌고 소비하면서, 약간의 농사도 짓고, 에너지도 덜 쓰고, 가끔씩 이웃과 즐겁게 밥상도 차리며 느리게 살아가는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믓하다.

2016년 기준 전국의 귀농귀촌 인구는 335,383명이었고, 그 중 30대 이하 청년가구는 144,934명이었다. 의외로 39세 이하의 청년층이 43%가 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일본제국주의 강점시기에 젊은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이 농촌지역에서 전개했던 계몽적 브나로드 운동이 떠오른다. 이러한 흐름을 나는 도시‧자본‧생존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대안적 삶을 지향하며 시골로 하방하는 ‘생태적 브나로드 운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시대와 환경은 바뀌었어도 청년세대의 고단한 인생과 불투명한 미래는 다를 바가 없다. 강화와 같은 농어촌 지역에서 살만한 청년들은 사토리세대나 킨포크족에 가까운 성향을 지닌 친구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글의 모두에서 다룬 청춘마을 사업의 컨셉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에서 인용했던 까닭도 그래서였다. 도시에서 시험과 취업, 생존경쟁으로 지친 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다. 너무 낭만적으로 접근한다고 비판할 수 도 있는데, 그러면 어떠랴,,, 나 자신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나 답게 살고 싶은 청춘들에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진짜’ 인생을 여기 강화에서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수도권이라 그런지 강화군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청년 이주 지원방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고령화로 인해 30년 안에 소멸할 지역으로 꼽히는데도 말이다. 기왕이면 정책적으로 청년들이 편히 쉬며 놀며 배우는 팹랩(Fab Lab) 과 같은 창작실험실을 비롯하여 인천시의 ‘유유기지’라든지, 서울시의 ‘청년허브’와 같은 청년 문화복합공간이나 청년 취창업지원기관을 강화에 세운다면 종전보다는 더 청년층이 살만한 동네가 될 것이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마을은 마을대로 청년이 진입을 돕는 다양한 형태의 유연한 플랫폼과 지속가능한 경제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이 아니라 나만의 숲을 찾고 싶은 청춘들이 모잇감을 구하는 참새들처럼 하나 둘씩 모여드는 꿈을 꾼다. 모쪼록 강화를 선택한 그들이 강화라는 마을에서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작은 숲을 찾아 갈 때, 한동안 기댈만한 작은 언덕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