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_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주민주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주민주권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장 이혜경

# 주민이 결정하게 하라

주민은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주체이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주권재민」에서 볼 수 있듯이 주민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정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지역민주주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권한과 주민 역량의 성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주민의 아래로부터 떠받치는 힘, 즉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지역사회의 변화, 행정혁신, 일상의 민주주의 실현에 이르게 할 것이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현장에서 주민을 직접 만나는 활동가로서 마을공동체는 주민자치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기능적인 사업을 실행하는 단위로 그칠 수밖에 없음을 보아왔다.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근본적인 목적은 주민자치와 마찬가지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는 한 몸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민권한과 이에 따른 마을정책들이 연계되어야 한다. 지역민주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각종 제도가 보완이 되어야 하는데 자치권한 강화를 위한 제도인 주민자치회가 그 하나이다. 자치권한 강화를 위한 제도정착과 강력한 이중분권의 전제가 지역 풀뿌리자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주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분배되어야 하는데(Let the people decide)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주민세 활용은 주민자치력이 형성되고 지속하는데 충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행안부의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에 보면 주민자치회의 권한보다는 역할과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음을 볼 수 있다. 조례를 기준으로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쟁점사항, 즉 권한의 불명확성, 마을의 대표조직으로써의 지속가능한 체계 보장 미흡 등으로 인해 아직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자치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자치력이 성장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주민의 역량이 성숙되기에 앞서 조례제정-시범실시-주민총회 순으로 주민자치를 관주도에 의해 실행하는 곳도 눈에 띈다. 보다 주민의 권한을 명확하게 하고 동시에 주민이, 주민자치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일상의 학습과 공론장을 풍토로 만들며 이를 위한 자치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치제도구축과 자치력의 강화는 늘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풀뿌리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주민참여기구를 통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바람직한 운영방안, 그에 따른 수평적 분권 실현의 가능성 타진, 주민자치기구와 행정기관, 의회와의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이 늘 고민이다. 다음은 올 여름 풀뿌리자치활성화 토론회에서 있었던 안동시 이재갑 의원 발언이다.

‘주민참여예산 제도에 대한 강력한 시행이야말로 조기에 수평적 분권을 달성하고 풀뿌리 주민자치 정착을 실현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수평적 분권의 정착이야말로 수직적 분권을 촉진케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주민자치구의 실질화가 필수적이다.’ _ <이재갑 안동시의원, 2019년 7/25일 풀뿌리 자치활성화 토론회 발제문에서>

 

# 주민참여 정책 결정 체계_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장치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지는 동시에 주민과 시민에 의해 반드시 통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책결정권한이 단체장에게 있고 감시감독을 해야 하는 의회가 역할을 못할 경우 그 피해가 주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특히 주민들에게는 정보접근성도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약방문하는 상황이 초래될 경우가 많다. 지역의 정책결정사항에 주민들이 권한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체계가 부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에 의회와 마을의 자치조직 사이에 정책을 공론과 합의하는 주민참여 정책결정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문화·역사적인 토대를 무시하고 개발 위주의 도시정책이 진행될 경우 주민의 권한부재로 인해 결정에서는 항상 소외되고 단체장의 권한이 행사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왕적 자치단체장의 문제를 지방의회가 견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이 권한을 가진 주민참여제도, 주민배심원 제도 등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세인트폴과 로스엔젤레스 시의 ‘사전조기고지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참여예산제도, 주민세 등 예산환경 구축

단체장의 분권은 반드시 주민자치, 지역민주주의 실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수평적인 분권을 위해 주민참여예산제도의 강력한 시행이 풀뿌리자치를 정착시킬 것이다. 훌륭한 사례로 익히 알려진 당진의 ‘주민세’ 활용정책은 주민주체가 지속적으로 마을살림을 하기위한 가장 안정적인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람으로는 주민세는 마을의 사업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지원으로 주민자치회 사무국 운영의 비용으로 쓰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주체로서 공공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주민자치위원들의 참여와 활동이 확장될 수 있도록 역량강화 구축체계 또한 필요하다. 주민자치회 설치 밎 활동근거를 지방자치법 또는 새로운 법률제정을 통해 명시하고 법적 구속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민주적 협치를 실현하고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주민참여기본조례 제개정 및 주민참여제도 통합 운영체계 마련 역시 필요하다. 또한 주민이 권한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예산환경을 구축해야한다. 주민세의 개인균등분 또한 장기적으로 목적세(주민자치세)로 전환하여 동 단위 마을계획을 지속적으로 수립하고 실행하는 자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마을자치 플랫폼 구축, 시민성을 기르는 공론장

그럼 지역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주민자치회가 주민세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활용해 지역사회의 최고의결기구인 주민총회를 거쳐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지역사회마다 정착될 수 있도록 실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 자기결정권 행사와 민주적 결정과정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나가는 자치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자치플랫폼은 주민에게 정보를 꼼꼼히 전달하고 숙의과정인 마을총회를 통해 개인의 이해가 공동체의 이해를 공론하게 함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주민은 마을에서 자율적이고 자립적 방식의 마을계획 수립과정을 통해 일상의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의 문제를 관주도에 의해 동원되어 해결하는 경험이었다면 공론장은 시민성을 기르고 민주시민으로서의 경험을 축적하는 장이 되어야한다.

# 란츠 게마인데, 모두가 정책의 주체

해마다 5월에 열리는 스위스 그라루스 지역의 광장 민주주의 란츠 게마인데에서는 5,000여명의 주민이 모여 정책을 함께 결정한다. 안건은 해마다 20여개 안팎이며 작게는 식당의 금연문제부터 마을버스 무상이용, 크게는 소수를 위한 세금감면혜택과 관련한 의제까지 주민총회를 거쳐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주민 모두가 정책의 주체이고 정책 결정권한을 가졌다는 것이다.

“스위스는 칸톤 뿐 아니라 2,700여개에 이르는 게마인데가 가기 다른 지리적, 인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게마인데의 자치권 역시 중요하게 고려된다. 게마인데에서는 칸톤의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정치조직을 선택해 구성할 권리가 있고 세목과 세율 결정권도 가지고 있다. 게마인데는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현장에 밀착한 구체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톤의 범주 내에서 게마인데는 자주적으로 자신들이 존립할 제도적 근거를 가진다. 또한 다른 게마인데와의 통합 또는 독자적 위치를 지속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러한 권리는 칸톤이나 연방정부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다.”(출처: 인천 주민자치인문대학_<자치하는 인간 2강 _ 스위스 직접민주제사례>_ 이호)

#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위해

대의제 민주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주민이 주인이고 주민에 의한 통치이다. 스위스에서는 중요한 결정사항들을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의회가 결정했다 하더라도 시민들에 의해 번복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주민자치회의 경우 조례에 명확한 권한명시,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의 주민총회의 위상 명시, 자치플랫폼 운영 기반 구축을 위한 지원을 함으로써 향후 주민자치회가 집행과 행정을 동시에 맡는 기구로 뿌리내리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지방자치단체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주민자치의 맥락에서 주민들이 역량을 키워서 자기목소리를 내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자치, 주민자치 등 지역민주주의라는 이론적 근거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한다.

기능적 관점에서의 주민자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마을에 어떤 조직이 필요한지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되어야한다. 주민세와 참여예산 등 일정한 예산을 마을에 배치해서 마을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숙의과정을 거쳐 마을의 문제를 자발적인 주민참여로 해결할 수 있는 생활자치의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의제를 내놓으면 자치회는 지원하는 리더십을 가지는 자치플랫폼을 구축해야한다. 주민자치회는 풀뿌리 자치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마을의 주축조직으로서 지역사회 전체를 포용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 수평적으로는 마을공동체의 의제들이 잘 연결이 되고 수직적으로는 행정과 마을단위가 유기적으로 위아래로 넘나드는 관계를 만들어야한다. 이는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마을의 대표조직인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권한이양이 전제될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민자치회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자치플랫폼이며 주민총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임을 잊지말아야한다. 실질적인 풀뿌리 주민자치, 지역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해 앞으로도 얼마간은 주민자치조직, 의회, 행정이 수평적으로 모이고 토론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탄탄해질 수 있도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