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마을만들기] 환자들이 만든 작은 진료소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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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만든 작은 진료소에서 출발[기획취재] 협동과 공동체로 건강한 마을 만들기
5.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의 한신의료생활협동조합

장호영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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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승인 2011.11.22  19: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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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의료생협이 운영 중인 와카쿠사 진료소의 모습.

한국의 주민참여형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은 안성에서 첫 출발한 지 17년이 됐지만, 일본은 7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1년 도쿄의 동경의료이용조합 설립이 첫 출발이다.

동경의료이용조합은 일본 생협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고(故) 카가와 토요히코의 지도를 받아 설립됐다. 이 조합은 ‘질병 치료는 빈부, 고하, 지역 구분 없이 향수(享受: 혜택을 받아 누림)해야 한다’는 이상을 내걸고 보건 의학, 예방 중시의 조직적인 보건운동을 펼쳤다.

당시 일본의사회와 동경의사회는 이 조합의 설립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다음해인 1932년 조합 인가를 받게 돼 실질적인 최초의 의료생협이 됐다. 1919년에도 의료생협이 만들어지긴 했다. 당시 시마네현[혼슈(本州) 서부에 있는 현]의 신용구매조합에서 ‘의사가 없는 마을에선, 진료소는 병원이 아니라 생산시설’이라는 억지를 부려 협동조합 형태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의료생협이 115개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의료복지생협연합회에 가입돼있다. 일본 의료생협 대부분은 설립되는 과정에 노동운동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효고현[긴키(近畿) 지방 서부에 있는 현] 아마가사키시 니시카와에 위치한 한신의료생협은 환자들이 돈을 모아 만든 조그만 진료소로부터 출발했다.

1950년대 아마가사키시에 위치한 아마가사키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들이 병원 측에 “정상적인 약을 투입하라” “환자의 대우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장기 투쟁을 벌였다.

투쟁 이후 이 병원에 있었던 환자(노동자와 주민)들이 ‘동아마가사키 건강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한 뒤, 1955년 이 모임에서 조그만 진료소를 개설했다. 당시 진료소의 이름은 ‘동아마가사키 진료소’로 모임의 성원들이 100엔 정도씩 모아 작은 건물을 임대하고 힘들게 의료진을 섭외했다.

   
▲ 한신의료생협이 생협을 만들기 전 마을공동체 진료소로 1961년 세운 제1진료소의 현재 모습.

1961년 여러 사정으로 동아마가사키 진료소를 철수한 후 모임은 새로운 진료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해 그해 11월 제1진료소를 세운다. 당시 진료소는 협동조합 형태는 아니었지만, 노동자와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노동자의 산업재해와 빈민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마을공동체 진료소였다.

제1진료소에 이어 제2진료소를 1964년에 개설했고, 1969년 10월에 조합원 1005세대가 참가해 출자금 1080만 3000엔으로 의료생협으로 전환했다.

한신의료생협은 2010년 말 기준으로 조합원 1만 3857세대, 출자금 1억 8450만엔, 총자산 17조 2146만엔을 보유하고 있다. 연간 사업수익은 18억 8000만엔, 직원은 400명 정도다. 조합원 세대수는 아마가사키시 인구의 10%를 조금 못 미치는 정도다.

현재 한신의료생협은 한방진료소를 포함해 진료소 총6개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재택개호센터, 거택개호지원사업소, 방문개호센터, 방문간호센터, 노인홈, 데이케어서비스센터, 병아보육실 등 사업소 30개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개호(介護)란 영어의 케어(care)의 뜻을 가진 말로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살핀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1997년 노인들을 위한 개호보험법이 통과돼 2000년 4월부터 개호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제도와 비슷한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의료생협의 대부분은 의료기관과 함께 개호 관련시설을 상당수 운영하고 있다.

한신의료생협은 의료기관ㆍ개호시설 운영과 더불어 지역사회 네트워크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1960~70년대에는 지역의 다른 단체들과 환경운동을 많이 했다. 아마가사키가 공해가 많은 지역인데 남쪽 지역만 정부가 인정하는 공해지역으로 지정돼있었다. 이에 한신의료생협은 조합원들과 공기 질을 조사하고 아마가사키시에 공해지역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지속해, 1974년 동아마가사키 지역도 공해지역으로 지정받았다. 공해지역으로 지정돼야 의료 혜택이나 보상이 가능하다.

또한 한신의료생협은 지역의 보건의료복지단체와 한신공동복지회를 만들어 운영 중이며, 노동조합ㆍ노동운동단체ㆍ보건의료단체 등과 공동으로 ‘아마가사키 노동자 안전위생센터’를 설립해 산업재해와 석면 추방운동 등 다양한 연대활동도 벌이고 있다.

   
▲ 한신의료생협이 운영하는 한방진료소에서 한방약을 제조하고 있다.

의료생협 활동을 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시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 시의원이 현재 16년 동안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신의료생협 후지와라 마사히로 전무이사는 “시의원이 있어야 시 정책을 빨리 알 수 있고 조합원들의 요구를 간단하게 시에 전달할 수 있다”며 “조합원들이 사는 지역에서 환경오염 문제가 생기면 시의원에게 직접 개선 요구를 하고, 시의원이 이를 시에 이야기해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가난한 주민은 의료 혜택이 필요한데도, 이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시의원이 함께 시에 방문해주면 이런 문제가 빨리 해결될 수 있다”며 “의료생협의 모든 시설에 시의원의 얼굴과 연락처가 적힌 선전판이 항상 비치돼있어, 언제든 전화로 민원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신의료생협은 5개 지부로 나눠진 조합원들이 탁구ㆍ걷기 등 운동모임과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친목모임’, 건강노인모임(노래 부르기ㆍ체조ㆍ생일축하) 등 다양한 모임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들이 같이 모여서 식사할 수 있도록 음식을 제공하는 조합원 모임도 활발하다.

조합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건강강좌도 열고 있으며, 전쟁과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는 평화시위도 조합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년 동안 걷기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요시무라 가추아키(68)씨는 “참가하기 전에는 혼자 살면서 삶의 흥미도 없었는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친해져서 좋다”며 “의료생협 의사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내 몸에 대해서도 알게 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사진모임도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한신의료생협 조합원 모임인 건강노인모임 회원들이 미지노 8주년 감사제에서 춤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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