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 통한 인천문화예술 활성화] 무일푼 예술가들이 무단 점거한 건물이 예술 명소로

0
5

무일푼 예술가들이 무단 점거한 건물이 예술 명소로[공동기획취재 – 공유경제로 인천의 문화예술 활성화] 5. 해외사례 – 프랑스(상)

장호영 기자  |  [email protected]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504호] 승인 2013.09.23  10:05:5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한국보다 훨씬 앞서 공유경제와 공유문화의 바람이 불었던 유럽을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방문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공유경제,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바라보다’라는 공동기획취재의 해외 취재 일정으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의 여러 기관과 단체를 방문하며 앞서가는 공유경제와 공유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프랑스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공유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방문한 공간들에선 공유문화를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과 정부 주도의 문화 활성화 정책으로 진행되는 도시재생과 공유문화 활성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취재를 두 차례 나눠 싣는다.<편집자 주>

   
▲ 프랑스 파리 중심 리볼가 59번지에 위치한 ‘로베르네집’의 건물 외부 모습

프랑스 파리의 중심 리볼리(Rivoli)가 59번지에 위치한 로베르네집(Chez Robert). 이 건물이 위치한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지역이었다.

로베르네집은 이 지역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알록달록한 철제 대문과 건물 외벽에 설치한 거미줄 모양의 작품도 볼거리였다. 이 건물은 파리시가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작업공간을 대여해준 곳이다. 7층 건물로, 층마다 4~6명씩 현재 작가 30여명이 작업하고 있다.

이곳은 공간의 개방과 공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월요일과 공휴일(1월 1일, 크리스마스)을 제외하고 날마다 숙소를 제외한 전 공간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개방한다. 모든 공간이 작업실이자 전시장인 셈이다.

이곳의 개방적 문화예술 활동은 프랑스에서 가장 원초적인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평가받을 만큼 많은 이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2층 작업실에서 만난, 입주 작가인 동시에 회계를 담당하는 파스칼 푸카르트(Pascal Foucart)씨는 로베르네집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파리시 한복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건물이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으로 바뀌게 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일푼의 예술가 세 명, 일명 ‘KGB’의 무단 점거

   
▲ 로베르네집 2층 작업실에서 만난 입주 작가인 동시에 회계를 담당하는 파스칼 푸카르트씨가 로베르네집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1999년 11월 1일 밤, 무일푼의 예술가 세 명이 폐쇄된 건물을 무단 점거했다. 그들의 이름은 칼렉스(Kalex), 가스파르(Gaspard), 브르노(Bruno). 일명 ‘KGB’로 통한 이 예술가들의 뜻에 동조한 예술가 10여명이 그 다음날부터 발 빠르게 합류하기 시작했다. 파스칼씨도 이때 합류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이들이 점거한 건물은 프랑스 정부와 한 금융회사의 공동 소유였다가,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기관인 부동산회사 CDR로 소유권이 이전된 상태였다. 파리 시내에는 이곳 말고도 방치된 건물이 많았는데, 특히 CDR이 관리하는 건물 40여 채 대부분이 방치되고 있었다. 로베르네집 역시 14년째 방치된 건물 중 하나였다.

이들은 ‘퇴락하는 장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생각으로 건물을 접수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흉가나 다름없었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대부분 깨져있던 유리창과 꼭대기 층에 널린 비둘기 사체들 등, 온갖 쓰레기들을 걷어냈다.

점거 4일째 되던 날, 예술가들은 각종 전시회와 퍼포먼스로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로베르네집이라는 이름은 이때 만들었다. 점거 당시 건물에 걸려있던 간판 이름이었는데, 한국의 ‘김철수’처럼 아주 흔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영혼임을 은유하는 ‘자유로운 전자(election libre)’도 부제로 붙였다.

하지만 이들의 점거에 프랑스 정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철수하라’는 고발과 소송을 제기했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법에는 버려지고 방치된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했을 경우 겨울에는 쫓아낼 수 없도록 돼 있었다.

또한, 로베르네집을 변호하는 지지모임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해 법률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지루한 법정투쟁 끝에 6개월의 한시적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이를 발판삼아 예술가들은 창작과 전시, 퍼포먼스 등에 더욱 열을 올렸다.

파리 언론은 당시 작가들의 활동을 점거(Squat)와 예술(Art)을 합성한 ‘점거예술(Squart)’이라 규정했고,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인들과 정부의 관심을 끄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한 예술가들의 점거가 오늘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방문객과 지지층을 확보하고, 각종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명소로 이름을 알린 로베르네집은 2002년 프랑스 문화부 조사결과가 나오면서부터 새 국면을 맞는다.

연간 4만여 명의 관람객이 로베르네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사돼 퐁피두센터와 국립현대미술화랑에 이어 방문자수 3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해 파리시의 동의하에 로베르네집은 법인으로 등록됐고, 2007년에는 정부 지원으로 개보수, 2009년에는 합법적인 입주 근거를 마련해 3년마다 파리시와 입주기간을 갱신하게 됐다.

가장 중요한 운영원칙, 공간 개방과 공유

   
▲ 로베르네집에 2009년부터 입주한 작가 세바스티안 로카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로베르네집의 좋은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나이와 성별은 물론이고 국적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입주 작가 중 20명은 고정 멤버이고, 10명 정도는 6개월 단위로 바뀌는 초청 작가다. 공간이 협소해 평면 작가가 주를 이루지만 사진과 조각, 설치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입주해있다.

건물 1층에서 7층까지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 건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벽면에는 어지러운 벽화가 가득했다.

건물 안은 모든 공간이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이었다. 건물 안에는 작업실 32개와 공동전시실 2개, 숙소가 있다. 작업실은 작가의 성향이나 나이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지만, 함께 쓰는 작업 공간임에도 가벽을 치거나 커튼을 치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각 공간에선 누가 작업을 지켜보는지에 상관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들을 볼 수 있었다. 일부 작가는 구경 온 시민이나 관광객들과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 예술가들은 파리시의 지원으로 건물만을 무상으로 사용할뿐, 운영비는 자체 조달하고 있다. 한해 6만 유로 정도 소요되는 운영비는, 입주 작가마다 매달 130유로씩 5만 유로를 모으고,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입주 작가들은 매해 여름 독일 쾰른과 스위스 제네바 지역의 갤러리와 연계해 ‘점거 아틀리에 순회전’을 연다. 또 휴가철인 8월을 제외한 매달 주말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음악콘서트를 연다.

입주 작가들은 1년에 1~2회의 단체전과 개인전 일정을 소화하며, 3~4개월에 한 번씩 건물 전면의 디자인을 변경한다.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하는 날은 퍼포먼스도 연다. 최근에는 건물 유리창마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배치하고 연주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로베르네집에선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작품과 작업하는 모습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유쾌한 아뜰리에 ‘로베르네집’의 가장 중요한 운영 원칙은 공간의 개방과 공유다. 이는 끊임없는 창작과 만남, 소통을 통한 과정의 하나로 소통을 두려워하는 작가라면 이곳에서 머무를 자격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일푼의 예술인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개척해낸 로베르네집에는 자유와 관용, 저항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2009년 입주한 작가 세바스티안 로카(Sebastien Lecca)씨는 “친구들의 초청으로 한시적으로 입주했다가 이곳에 매료돼 5년째 머무르고 있다”며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데다 주위 작가들이나 지역주민, 관광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시민들과의 소통은 이곳의 철학이다. 익숙하기 때문에 작업 중에도 얼마든지 시민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한다”고 말했다.

* 이 공동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