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아닌 공동체마을을 찾아서] 통영시 ‘동피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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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꿈이 있어요. 통영시 ‘동피랑’의 꿈[기획연재] 아파트뉴타운 아닌 공동체마을을 찾아서<1>

김갑봉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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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호] 승인 2009.02.26  14: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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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는 개발을 둘러싼 자본의 야욕이 불러온 비극이다. 인천에서도 200군데가 넘는 곳이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 등 도시개발 사업지구로 예정돼있다. 하나 같이 고층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사업이다. 계양산에 올라 부평을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단지다.

무릇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계획상 펼쳐지고 있는 이른바 ‘뉴타운’식 마을 만들기 사업들은 하나 같이 ‘아파트’라고 하는 하드웨어를 좀 더 입지 좋은 곳에 좀 더 비싼 가격으로 심어놓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뉴타운 만들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세상에는 이러한 뉴타운과는 거리가 먼 마을 만들기를 펼치는 이들이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마을과 대구 중구 ‘삼덕동’마을은 하드웨어를 심는 것이 아닌, ‘마을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담장을 허물고,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등 자신들의 터전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철거 대상에서 통영1번지로 거듭난 ‘동피랑’

   
▲ 통영 앞바다에서 올려다 본 동피랑 마을의 전경. 골목길 담벼락 벽화 사이로 주민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동피랑. 경상남도 통영시 태평동과 동호동 경계에 있는 언덕 마을로 ‘동쪽 비탈’이란 뜻의 이곳 사투리다. 동피랑은 주로 나이 지긋한 어른들 6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꼭대기에 올라보면 통영 앞바다와 통영시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영의 망루 같은 곳이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보듬고 살면서 조용하기만 했던, 심지어 통영사람들조차 어딘지 몰랐던 동피랑을 2006년 통영시가 도시계획을 통해 개발키로 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노후한 건물이 많은 곳, 이른바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불량주택’이 많은 이곳을 시에서는 말끔하게 밀어버린 뒤 그 위에 잔디밭과 정자를 짓기로 했다.

   
▲ 통영의제21 위관옥 사무간사.

이에 통영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 추진하는 ‘푸른통영21’에서는 ‘그러지 말고 벽화를 한번 그려보자’고 통영시에 제안한다.

“2007년 무렵 동피랑은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지정돼 사라지기 직전에 놓였던 거죠. 벽화를 그리자고 했을 때 시에서도 큰 반대가 없었어요. 뭐, 어차피 사라질 거니깐 그려 보라고 했던 거죠. 그래서 그 때 행정자치부에서 공모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벽화마을 만들기에 필요한 예산을 가져와 사업을 진행했죠”
위관옥 푸른통영21 사무간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변화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지금 동피랑에는 60여 세대 주민보다 이곳을 찾아온 외지인이 더 많다. 동피랑을 걷다보면 주민보다 관광객을 몇 배는 더 많이 만난다. 동피랑이 어떻게 통영의 대표적 관광지로, 그리고 통영시 지역경제에 득을 가져다준 보물이 됐을까?

동피랑에 꿈을 심은 벽화그리기

   
▲ 동피랑에서 어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내려다 본 통영어시장.

동피랑의 변화는 벽화그리기로부터 시작됐다. 푸른통영21은 벽화그리기에 앞서 가가호호 방문해 동피랑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주민들이 모두 푸른통영21의 제안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이관옥 사무간사와 함께 이곳 동피랑의 파수꾼이기도 한 김상현 <한산신문> 기자는 “지금은 시에서 빈집 일곱 채를 매입해 여섯 군데는 작가들에게 임대하고 한 곳은 마을 공동구판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지만, 처음에는 그저 철거 대상일 뿐이었다”며 “주민들이 보상비를 받아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 이사 가는 사람들로 나뉘었는데 벽화를 그리면서부터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푸른통영21은 벽화그리기에 동의한 집부터 벽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으나, 벽화를 그리지 않기로 한 집들이 그려달라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벽화가 그려진 집을 보고나서는 그 집이 좋아 보여 ‘우리 집도 그려달라고’고 했던 것. 그렇게 벽화는 하나둘 번져갔다.

동피랑의 벽화그리기가 유별난 데는 이유가 있다. 전문예술가만의 벽화그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푸른통영21은 벽화그리기가 주민들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피랑만의 벽화가 아닌 통영 전체의 벽화그리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 통영시와 교육청 등의 기관 협조를 통해 사생대회와 백일장을 개최했다.

사생대회에서 채택된 그림이 동피랑의 벽화로 그려졌고, 심지어 화가이기도 한 통영시장의 그림이 벽화로 그려졌다. 한 대학생은 틈나는 대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동피랑을 찾아와 혼신을 다해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은 슬슬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번져갔고, 나중에는 한국방송 KBS의 다큐프로그램인 ‘다큐3일’에 동피랑이 소개되면서 동피랑과 ‘동피랑 벽화그리기’는 급속도로 세상에 퍼졌다.

우린 단지 이 마을에 계속 살고 싶을 뿐

   
▲ 동네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관광객들의 쉼터로 재탄생한 동피랑의 명소 ‘태인카페’. 장사 안 되던 이곳 구멍가게는 카페로 변하면서 매출도 늘었다.

그 후 마을사람들이 놀라고 통영시도 놀랄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백 명의 인파가 동피랑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 관광객들이 저마다 사진기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동피랑’의 명성은 지금도 퍼져가고 있다. 동피랑을 몰랐던 통영시민들도 동피랑을 자주 찾는다.

위관옥 사무간사는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자 마을 주민들이 처음에는 당황했다. 일부 방문객들이 옥상으로 올라가질 않나, 열린 창문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질 않나, 사생활이 적잖이 침해받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할머니들이 옥상을 개방하기도 하고 주의 안내판을 세워 적절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동피랑의 벽화로 관광객이 몰려들자 덩달아 신이 난 곳이 동피랑 아랫마을에 있는 통영어시장이다. 관광객 증가로 매출이 늘자 어시장 상인들 또한 나서서 동피랑과 어시장을 이어주는 골목길에도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서정연 할머니가 텃밭에 거름으로 쓸 음식물찌거기를 싣고 골목길을 오르고 있다.

동피랑 언덕 위 텃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손수레에 음식물 찌꺼기를 싣고 좁은 골목길을 오르는, 38년을 이곳 동피랑에서 살고 있다는 서정연(75) 할머니를 만났다. 서 할머니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 반갑고 좋지. 예서 살다가 외지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할머니도 있어”라며 “우린 그저 여기서 오순도순 살고 싶은 것밖엔 없어”라고 말했다.

벽화그리기에서 시작된 동피랑의 마을 만들기는 2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당초 ‘밀어버리려’했던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 간 셈이다. 이제 통영시에서도 자체 예산을 편성해 동피랑마을을 지원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몰려들자 이곳 주민들에게 혜택이 갈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위관옥 사무간사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골목길 안에 조그만 카페가 생겨났고, 전에 장사 안 되던 언덕 위 구멍가게는 벽화와 더불어 마을주민과 관광객의 카페가 됐다. 앞으로 카페뿐만이 아니라 공예품판매장 등도 주민들과 준비하고 있다”며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수익 역시 공동으로 가져가는 판매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통영의제21이 펴낸 동피랑 안내책자 표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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