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가 안내하는 골목길- 산곡동 명화마을(i-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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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안내하는 골목길

산곡동 명화마을
  

좀처럼 걸을 일 없는 요즘이다. 그래도 바람이 불고 선선해지니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듯하다. 어느새 거리의 꽃이 눈에 들어오고, 구름의 움직임을 그려본다. 거리에서 만난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는 시기다. 거리에서 만난 벽화도 예외는 아니다. 회색빛으로 짙게 드리웠던 골목이 언젠가부터 무지개 색으로 물들었다. 땅거미가 짙어지는 시간에도 나름의 운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가을, 천천히 걷기 좋은 산곡동 명화거리가 당신을 감성의 골목으로 인도한다.

가을은 가끔, 여름보다 화려하다. 여름보다 촉촉하며, 무채색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밝고 경쾌하진 않지만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다. 산곡1동 명화골목거리는 그런 가을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한적한 회색빛의 골목길은 누군가에겐 오랜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소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을 덧입고 나이를 먹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외면 받고 그대로 방치되었던 골목은 가을의 쓸쓸함을 닮아 있었다. 그렇게 겨울을 맞이하고, 다시 봄이 지난 작년 여름, 그곳에도 꽃이 피었다. 인천예술인협회에서 낙후된 골목을 개선하기 위해 새롭게 옷을 덧입혔다.

낡은 벽을 도화지삼아 페인트를 슥슥, 칠하니 명작이 나타났다. 서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가 거리의 옛 모습을 그려 넣은 듯 선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이 골목을 촘촘히 수놓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무채색의 벽에서 생명을 얻었다. 우리 눈에 익은 외국 명화와 한국의 민속화까지 장르를 불문한다. 관광지라고하기엔 그저 조용한 골목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벽화에 집중할 수 있다. 사진을 찍거나 잠시 들러 여유로운 가을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골목은 벽화의 생명과 겹쳐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다시, 생명을 되찾은 것이다. 행인의 뒤를 따라 거위가 그림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전봇대에 붙어 뒤 돌아 있는 아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얼굴을 보여줄 것 만 같다. 40년은 더 되었을 것 같은 동네의 터줏대감 ‘다복상회’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벽화와 어우러진다.
이곳의 주민 김 씨 할머니는 “늙은이들이 사는 동네가 훤해져서 보기 좋지요. 이렇게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시끄럽게 구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전한다.

넓고 길게 뻗은 대도시의 거리도 좋다. 하지만 사라지는 골목길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분명 그 공간이 가진 시간과 그 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억 겹으로 쌓여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칠한 한 겹의 벽화는 공간의 시간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화려한 벽화에도 언젠가 시간이 쌓일 것이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그때 다시 낡고 휑한 바람만이 이 골목을 감싸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명소는 시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우린 그 시간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차지은 I-View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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