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를 꿈꾼다] 자본주의와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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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기획연재] 위기의 시대, 사회적 경제를 꿈꾼다 ③ 유럽피언들이 꿈꾸는 세상 <중> 벨기에

김갑봉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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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승인 2009.11.23  03: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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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두들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돌입했다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양극화·청년실업·지역경제 붕괴 등 암울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위기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국내외에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고 하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덧 우리에게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협동조합’ 등의 말로 성큼 다가온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위기의 시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국내외 사회적 경제의 현 주소와 그들이 그리는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민자도 제3세계도 다 같은 ‘벨기에 사람’

   
▲ 부이용드뀔뛰르는 방치된 채 버려져 있던 폐공장부지를 이민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자체와 투쟁했다. 부지 일부는 공원으로 조성했고, 공원 왼편에 있는 기존 건물은 육아시설과 노인복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건물로 변모했다.

벨기에 부이용드뀔뛰르(Bouillon de Cultures)는 지난 20여년 동안 브뤼셀 스타지뱅(Schaerbeek)코뮌(=한국 행정구역으로 자치구에 해당)에서 다문화사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곳 지역주민과 인근주민의 복리를 위한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는 활동을 해왔다.

이들은 주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통합과 학업 지원, 차별 반대, 시민교육 등의 활동을 해왔는데, 이 지역은 모로코나 터키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밀집된 곳이기 때문이다.

■ 부이용드뀔뛰르 사업 분야
·오로라(Aurora) : 6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 70명에게 매일 방과 후 숙제지도, 자유놀이, 창작 작업장 등의 활동.

·청년활동센터(Josaphat) : 12세에서 25세 사이의 청년들에게 실내축구, 창작 작업장, 문화작업장 등의 프로젝트를 제공. @touts Possibles팀은 12세에서 15세 사이 청소년들에게 학업과 관련해 서로 돕는 구조를 제공.

·학업상조그룹(le groupe d’entraide scolaire) : 15세 이상 청년들에게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학업에 관련한 사례관리를 제공. 또한 정보통신, 문화, 역사 터키문학 등의 활동이 제공됨.

·세잠(Sesam) : 사회적 경제와 다문화행동 영역에서 주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사회통합과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동네 레스토랑과 급식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급식서비스의 영역에서는 다문화 교류활동과 시민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국제교류와 정치토론, 성인여성을 위한 활동, 지역축제, 환경관련 캠페인 등도 이뤄지고 있다.

세잠은 사회적 기업 식당이지만 한국의 주민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부이용드뀔뛰르 산하단체로 오늘날 부이용들꿀뚜르의 모태가 된 곳이 바로 세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차 대규모 이민이 있었고, 60년대 들어서며 경제성장과 더불어 노동인력이 요구되면서 2차 이민으로 브뤼셀에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민자들이 모여들었으나 말도 안 통하고, 이들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해 이 지역은 가난하고 쇠락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에 벨기에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중 1970년대를 거치면서 세잠을 설립한다. 세잠 장마리 르꽁뜨 사무국장은 “정부가 노동계약을 통해 이민자를 데려왔지만 그 뒤 노동문제에 신경을 안 써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래서 민간단체가 개입한 것”이라며 “우선 벨기에 사람과 이민자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은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회합할 수 있는 까페 역할을 했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뒤 대화와 토론 등을 거쳐 지금의 방과후 수업, 학습지도, 노인복지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르꽁뜨 세잠 사무국장(사진 오른쪽)과 주방장(터키인) 모두 손님으로 세람을 이용하다가 나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사회적 기업 세잠의 우선 목표는 수익창출이 아니다. 그들은 이 지역 청년과 직업훈련생, 보호감호자, 사회봉사명령 수행자들의 사회통합과 직업훈련을 촉진하고, 사회적 실천과 다문화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스타르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세잠을 통해 부이용드뀔뛰르를 알게 됐으며, 현재는 일반인들이 더 많이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르꽁뜨 사무국장은 “이곳에서 펼쳐지는 다문화 교류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대중들이 주민센터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알게 됐으며, 이 지역의 쇠락했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도 일조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 설립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아이들 방과후학교 수업, 그 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정규수업을 따라갈 수 없자 학업지도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뒤 프랑스어(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주로 사용) 문맹 해소 프로그램까지, 더불어 이민자 가정 내 여성의 지위문제와 여성운동 등의 영역까지 이르게 됐다.

이제 3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부이용드뀔뛰르에는 회원 100명에 후원자 등 관련자가 300∼400명에 이른다. 부이용드뀔뛰르는 회원들과 함께 지자체와 협력을 통해 지역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세잠은 지난해 벨기에 왕비(벨기에는 입헌군주국가)가 주관하고 있는 재단에서 시상하는 벨기에 사회적 경제 모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24명 정도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중 자원봉사자만 20명이다. 운영재정의 90∼93%를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식당 수익과 후원 등으로 충당한다.

부이용드뀔뛰르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자체와 갈등이었다. 실례로 세잠 인근에 버려진 땅(공장 부지)중 지자체가 인수한 곳이 있었다. 이에 부이용드뀔뛰르는 활용방안을 요구했으나 당시 지방정부는 보수 성향이 강한 극우정부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르꽁뜨 사무국장은 “나쁜 정부(당시 극우정부) 시절 그래서 우리는 투쟁했다. 싸움을 많이 했다. 그렇게 투쟁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 녹색도시와 사회적 문제에 관심 많은 세력으로 1994년 지방정부가 바뀌면서 지자체가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협력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며 “시민사회진영의 탄탄한 토대가 있어 가능했다. 6시 퇴근 이후 벨기에 시민들은 다양한 민간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무역 옥스팜, “바른 돈은 바른 일에 써야”…Oxfam Magasin du Monde (=옥스팜 세계상점)

1976년에 창립된 옥스팜 세계상점(벨기에 브뤼셀 소재)은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며 나아가 그들이 존엄한 시민이며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공정무역 단체이자 투쟁하는 민간단체다.

옥스팜이라는 이름은 1942년 영국에서 설립된 ‘기아구호를 위한 옥스퍼드위원회(=Oxford Committee for Relief Famine)’에서 비롯됐다. 2차 세계대전 중 이 그룹은 적국에 의해 점령된 그리스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연합군의 해상봉쇄에도 불구하고 생필품을 보내기 위해 투쟁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탄생한 옥스팜은 공정무역의 최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단순한 공정무역 활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북반구와 남반구(제3세계)의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 옥스팜의 수익은 전액 본부로 보내져 제3세계 지원 활동에 쓰인다.

그래서 옥스팜은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돈(white money)를 버는 것, 또 그렇게 번 돈을 올 바른 일에 쓰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옥스팜과 남반구 생산자그룹의 협력을 통해 생산된 식료품·화장품·장신구·보석·가방·그릇 등 수백여종의 상품들은 벨기에 왈룬지역(=벨기에 남부에 해당. 불어권)과 브뤼셀에 있는 70여개의 옥스팜 세계상점과 208개의 플랑드르지역(=벨기에 북부에 해당. 네덜란드어권) 옥스팜 세계상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옥스팜엔 지역팀에 소속된 자원활동가만 3000여명에 달하고 학교에 있는 ‘젊은 옥스팜 세계상점’에 소속된 학생은 1500명에 달한다. 각각의 팀들은 이 운동의 민주적 조직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옥스팜의 활동은 이들에게 일종의 평생교육이다. 구성원들은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이용자·소비자·시민으로서 각각의 지위와 역할을 성찰하며 개인의 무력감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옥스팜의 브랜드는 ‘Made In Dignity’ (= 존엄으로 만들어진)

   
▲ 벨기에 옥스팜 세계상점(브뤼셀) 지원봉사 활동가 프란시스 윌보씨.

옥스팜은 공정무역이라고 하는 상거래 활동 외에도 제3세계 저소득층의 능력과 가능성을 개발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 역시 사회적 경제 실천방식으로 해결해가고 있다.

이를테면 제3세계 어떤 마을에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도록 옥스팜이 직접 접촉해 도움을 준다. 관계가 한 번 형성되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구입액의 50%를 다음해도 보장해 점차 시장접근성을 열어주고 있다.

또한 옥스팜의 브랜드가 ‘Made In Dignity(=존엄 속에서 만들어진, 존엄으로 생산된)’인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노동이 존엄하기에 그 가치를 거래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상품에 매겨진 가격이 아니라는 것.

브루셀의 한 옥스팜세계상점 활동가 윌보(Francts Wilbanx)씨는 칠레의 구리팔찌를 예로 들어, “대부분의 광산을 다국적 기업이 장악했지만 옥스팜에서 판매하는 팔찌의 재료 구리는 노동자들이 광산을 개발해 생산한 것이다. 똑같은 구리 팔찌를 사는 것이라도 옥스팜의 물건을 사는 것은 ‘의미(가치)를 사는 것’이라고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며 “옥스팜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고 요즘에는 더 원칙적인 공정무역 상품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옥스팜 매장에서 일하는 자원활동가들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왔을 때 옥스팜이 왜 이런 물건들을 사와서 판매하는지 홍보하는 것이 중요한 실천 과제다.

한편, 옥스팜 매장 모든 직원들의 활동은 자원봉사로 이뤄지며 윌보씨가 일하는 곳 역시 25~30명의 자원봉사자로 운영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적절한 역할을 스스로 분담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2년에 한 번 역할 조정을 통해 모든 사람이 다양한 활동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옥스팜은 지역운동도 펼친다. 윌보씨는 “여기 자치단체가 지속적으로 옥스팜의 공정무역 커피를 구입하고 있다. 매출의 20%는 자치단체와 같은 단체들이 구매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바른 돈 바른 소비’운동뿐 아니라 지역의 많은 일들에 개입해 활동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의 시대, “다른 방식은 가능하다”…벨기에 사회적 기업 그룹 ‘떼르’

   
▲ 벨기에 곳곳에 설치된 수거함을 통해 수거된 옷들이 트럭에 실려 떼르로 들어온 뒤, 이를 다시 분류하기 위해 하역을 하고 있다.

떼르 그룹(Groupe Terre)은 사회적 경제에 속하는 사회적 기업과 민간단체들로 구성돼있다. 떼르 역시 옥스팜처럼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방식’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다른 방식’의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2차 대전 직후, 윌리엄 와우터의 주도 아래 몇몇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서 떼르는 비롯됐다. 이후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당시 벨기에도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윌리엄 와우터는 공동체만으로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여러 사람들(실업자·장애인·마약중독자·전과자 등)의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만들게 된 것. 활동가 끌라우디아 마롱지우(Claudia Marongiu)씨는 “1980년 첫 작업장이 문을 열며 일자리가 필요한 3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왈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왈룬 프로젝트
헌옷 분야 – asbl Terre
· 수거 : 29명. 왈룬과 브뤼셀에 1300개 수거함
·선별 : 87명. 2개 선별장
· 재활용가게 : 27명. 11개 수선가게, 1개 골동품 가게, 1개 인터넷 쇼핑몰
· 아프리카와 아시아, 동유럽 등으로 수출

종이 분야

· Recol’Terre safs : 20명. 지역의 폐지 수거
· Tri-Terre safs : 18명. 종이 선별

건축 분야
· Pan-Terre safs : 11명. Acoustix S.A.를 통한 상업 활동
· Co-Terre safs : 23명. 금속용접, 음향판·이동칸막이 생산.

떼르가 벨기에 남부인 왈룬지역에서 하루 수거하는 옷은 35톤 정도다. 이중 10~15%는 쓰레기(그래서 재활용 안 되는 것은 넣지 말자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음)로 6%는 질이 좋은 의류로 세탁해서 벨기에나 프랑스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80%는 수출하는데 이 중 절반은 옷감으로 재활용하고 절반은 다시 옷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폐기물 1톤을 처리하는 데 150유로의 처리비를 지자체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종이의 경우 1일 300톤 정도를 수거하는데 최상품은 신문용지로 재활용하며 두 번째는 종이상자로 판매한다. 또한 재활용 과정을 거쳐 방음판넬을 만들어 건축시장에 판매도 하지만 이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량생산이 중요해 현재는 주문생산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역에서는 품질을 인정받은 상태다.

떼르는 2000년 지자체가 실시한 입찰을 통해 제도적으로 재활용품을 수거하게 됐다. 이보다 앞서 떼르는 60년 전부터 재활용품을 자체적으로 수거했다. 그리고 지금 벨기에 각지에 수거함이 2000개가 있어서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율적으로 버리고 떼르는 이를 수거하고 있는 것.

떼르의 현재 고용인원은 280명(정원 300명)이다. 떼르의 작업은 매우 고된 일이기에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그것이 작업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덕분인지 구직 문의가 많고 이직률이 낮으며 20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떼르의 특징은 민주적 운영구조다. 연 1회 총회가 기본적으로 열리며 300명 모두가 가급적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국적이 15개로 다양할 뿐더러 문맹자도 있어 전원 참석이 쉽지 않다. 이를 해결 하는 것 역시 떼르의 과제다. 총회를 통해 떼르의 운영방향을 결정하며,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모여 토론하고 강연회 등을 연다.

임금 역시 총회에서 결정하는데 떼르 노동자의 가장 낮은 임금과 가장 높은 임금의 차이가 2.5배 이상 나지 않도록 노동자 스스로가 결정한다.

최근 재활용품 사업이 돈이 되면서 떼르와 민간기업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떼르 또한 사회적 경제의 한 축이지만 시장에서 경쟁을 피할 순 없는 것. 이와 관련, 활동가 마롱지우씨는 “그래서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린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며 “떼르의 수익은 임금과 적립금, 그리고 제3세계 파트너들과의 협력 사업에 사용된다. 유용한 경제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위기의 시대 다른 방식으로 경영이 가능하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답은 그렇다. 다른 방식(=다른 방식으로 노동하고 수익을 내고 분배하는 것)의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한 뒤 “떼르는 노동자의 자율적인 자주관리를 통해 모든 자본은 일하는 이들의 몫이며, 수익은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의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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