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순환, 나눔의 콩 세알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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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순환, 나눔의 콩 세알을 심다

<콩세알> 서정훈 대표 인터뷰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그래서 사회적기업 활동은 좋은 생산과 소비가 사회적 서비스·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강화도에 있는 사회적기업 <콩세알>은 농사와 가공이 결합된 생산 공동체로, 자연과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던 중 2008년에는 최초의 농촌형 사회적기업이 되었다.

옛 조상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었다고 한다. 한 알은 벌레나 새가 먹고, 한 알은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고. 그리고 남은 한 알은 심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란다. <콩세알>은 일을 벗삼아 사는 공동체적 가치 위에서 생명, 순환, 나눔이라는 콩 세알을 심기 위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된 작물을 가공하며 취약계층과 함께 자립하고, 결과물을 나누며 더불어 살고 있다.

취약계층을 끌어안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상 생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효율의 논리 속에서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었던 일꾼들은 공동체 안에서 어느새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과 더불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업활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정훈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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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농촌은 내게 늘 친숙한 환경이다. 다만 학업으로 인해 30대 후반까지 서울에 나가서 생활했다. 목사이면서 생협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부친상으로 인해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했지만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고민하던 주제인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조화롭게 살 것인가.” 등 관계 안에서 본래적으로, 바르게 사는 삶을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고민했다. 생명, 영성, 공동체라는 세 가지 모토로 살고자 했는데, 이 말은 곧 농을 생활 기반으로 하고, 사람과 더불어, 자연 안에서 살자는 것이었다. 교회에는 ‘정주목회’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저기 교회를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들어가 내가 먼저 마을사람이 되어서 이웃과 이러한 가치들을 공유해 나가면 그게 목회나 다름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목회는 기회가 되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사를 먼저 시작했다. 아버님이 농사를 지으실 때는 관행상 농약을 많이, 자주 사용해야 훌륭한 농사꾼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농약에 가장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농민이기도 했다. 부친께서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원인도 농약인 듯하다. 그래서 '나도 상하고 다른 사람도 상하는' 농사,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짓는' 농사가 아니라, 친환경 농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3.jpg일을 벗삼아 사는 '일벗 공동체'

집안에 대대로 농사를 짓던 논밭이 있었다. 그 논에 오리를 풀었다. 동네에서는 “저 녀석이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선 논에 그물을 치고 오리를 놓네?”하며 신기한 느낌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시작해 어느덧 40~50명이 함께 하다 보니 친환경 작목회가 구성되었다. 작목회에서는 작물을 공동구매/수매/판매하는 일을 한다. 나는 지금 10년째 작목회 총무를 보고 있다. 동네에서는 ‘서총무’로 통한다.(웃음) 시간이 지나자 마을사람뿐 아니라 지향이 같은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서 함께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벗삼아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일벗공동체’가 만들어졌다.(1999)

다만 아이들을 키우며 정주하고 살기에 농사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가공을 시작했다. 옛날에는 다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가지고 집에서 김치나 두부를 담그고 쪄서 먹지 않았나. 그래서 가공도 농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매일 만들어 먹고 판매할 수 있는 두부를 품목으로 정하고,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직접 공장을 짓고 유기농산물을 소재로 첨가제 없이,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2004)


1.jpg가공을 시작하다.

처음에는 묵 종류에 관심이 많았다. 주변에 도토리 같은 것이 많았고, 그 덕에 동네 어르신들이 예부터 묵을 즐겨 드셨기 때문이다. 콩세알에서 생산하고 공급하는 물품에는 친환경농산물 외에 두부류, 가공두부, 두류가공품, 묵류, 장류 등이 있다. 초기에 가마솥에서 제작하는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위험하기도 하고, 품목도 하나씩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위생 기준과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설비를 직접 설계부터 개발까지 진행해 가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다가 ‘한살림’에서 유부 제작 의뢰를 받았다. 처음에 멋모르고 수락했다가 고생을 많이 했다. 생각보다 공정이 까다로웠고, 국내에서는 기술을 전수받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이 앞서 있는 일본에 가서 조사, 연구 과정을 거쳤다. 일본은 첨가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라서, 국내에서 무첨가 방식의 양산 시스템을 만들려면 직접 튀김기를 제작해야 했다. 첨가제가 많이 들어가면 제품이 부드럽고 균질화되는 장점이 있으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알 수 없다. 국내 생협에서는 그런 것들을 지양한다. 아무튼 제작에 성공해서 당해 한살림 ‘올해의 생활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혁신 사례로서 다른 생산자들에게 자극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5.jpg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

기계의 핵심부품은 직접 만드는 것들이 많다. 제품이 시장에 나가면 생협이나 소비자의 냉엄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수 있는가를 고민해 봤다. 처음엔 친환경, 무첨가, 전통방식만 가지고 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식품 제조 영역에서는 품질의 균질화와 높은 위생 수준을 바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장이라는 게 인건비나 원가 반영이 잘 되지 않는다. 수작업은 단가가 너무 비싸지는 요인이기에 생산량을 일정량 갖추어서 단가도 떨어뜨려줘야 한다. 즉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계량화를 할 수 있어야 했다. 현재는 하루에 5000모정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대기업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우리 수준에서 재밌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은 것이다.

기존의 기계제조 매뉴얼은 두부 간수나 첨가제를 사용하는 기술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기존 기술에 의존한 두부 제법만으로는 시중 제품 이상의 무엇이 나올 수가 없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직접 고안하고, 설계하고, 실험하고, 만들며 콩세알 만의 적정온도, 압력, 간수 및 함수량 조절법을 찾게 되었다. 여전히 전통에서 길을 찾고, 일본의 두부 박람회 등을 다니며 아이디어도 얻고, 계속 응용해 가는 중이다.


사회적 일자리 제공부터 귀농지원까지

콩세알에서는 생태농장을 운영하며 친환경 작물을 공급하거나 텃밭·과수 분양 및 농사체험, 귀농 지원을 한다. 귀농자 정착을 위해 지역농산물을 공동수매해서 가공한다. 농민식당(친환경 식당)을 운영하면서 지역농산물로 만든 유기농 밥상을 선보이기도 하고, 결식아동·독거노인 무료급식을 돕고 있다. 그밖의 도농교류(도시농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목적 실현 차원에서 강화노인복지센터와 연계해 독거노인 120분께 도시락을 공급하고, 강화지역 내 두부용 흰콩, 고구마묵 가공용 고구마를 수매하고 있다. 농민식당은 현재 운영을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로 젊은 귀농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많이 한다.


콩세알과 함께하는 사람들

주민들과는 쌀농사, 작목회, 마을일에 참여하면서 만난다. 강화노인센터에서 어려운 어르신들께는 두부 배달도 해드린다. 오래 전부터 간헐적으로 강화지역의 거동이 불편하신 독거노인께 무상으로 식사를 지급하기도 한다. 동네의 60대 이상 어르신들 5분 정도가 콩세알에서 일하신다. 서너명 정도는 마을의 노총각, 돌싱 들이다. 콩세알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이 4-5명 정도 있다. 인근 마을에서 오시는 3분, 읍내에서 오시는 여자분, 귀농하려고 혼자 읍에 와있는 총각 한사람이 온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있고, 김포에 살면서 운전을 업으로 하는 두 분이 계신다.

양사면은 통째로 민통선 지역이라 인구밀도가 낮고, 강화군 내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적은 고령화된 마을이다. 이곳에 들어올 때 검문소를 통과해야 되고, 건물을 지을 때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 또한 북이 지척에 있어서, 연평도에 비상이 생기면 동시에 긴장하는 취약지구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농촌의 풍광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좋다고 느낀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이북의 생활모습이 다 보이기도 한다.


2.jpg<사회적기업> 콩세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벗 생산공동체’가 <콩세알>이라는 두부를 만드는 생산공동체가 되었다. 당시(2004년)에는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잘 없었다. 아마 2006년쯤부터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만들어지면서 관심이 하나 둘 생겨났던 것 같다. IMF이후로 실업, 고용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앞으로의 일자리는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재화나 서비스 영역에서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적어도 우리가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농촌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면 농업회사나 영농조합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적기업의 지향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기업이 정부에서 야심차게 이뤄지는 사업이다 보니, 인큐베이팅 기간 동안 지원되는 항목들이 유효했다. 초기에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지속이 어려웠는데, 인건비지원 외에도 경영컨설팅이나, 멘토를 붙여줘서 도와줬던 것들이 유익했다.

그냥 고유의 산지를 가지고 싶고, 전통적으로 제대로 만들면서 맛있고, 생산방식도 협동적이고자 했던 콩세알과 사회적기업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개인적인 영리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기반 기업의 틀로서 괜찮았다. 경영을 공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고, 결과물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의사결정 등이 민주적인 점 등이 잘 맞았다. 더불어 잘 사는 형태, 취약계층 고용 등도 좋았다.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자립을 못한다고 한다. 인건비지원은 한시적인데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자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생산성과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서 외부에 베풀기는 쉽지 않다. 콩세알은 지금 자립에 성공한 케이스로 소개되고 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속 가능의 힘

당시만 해도 사회적기업에 접근할 때 '지원금에 대한 관심'에 의해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린 사회적기업이 목표가 아니라 원래 생산공동체를 열심히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밤늦게 일하면서 월급도 못 가져가는(웃음)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기업의 형태를 취한 것이었기에 유익했다. 그냥 하던 대로 쭉 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움이 되고, 약이 되었다. 뭘 해보자는 마음에서 억지로 사업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실패했을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취지도 굉장히 좋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행정 주도로 지원하다보니 기초가 튼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고용률이라는 성과주의가 배어 있다 보니 20명이 일하는 콩세알에 갑자기 50명을 고용하라고 해서 억지로 50명까지 늘린 적도 있다. 1년간 과잉고용으로 인해 적자가 많이 났었다. 그때는 고용을 위해 사업성도 없는 팀을 많이 만들어서 일을 많이 벌였다. 1년 뒤 행정에서도 이게 아니다 싶은지 철회했다. 어쨌든 콩세알은 운이 좋았다. 적기에 지원 시스템과 만났고, 함께했던 사람들의 성향도 사회적기업에 대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본래적인 추구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기업이 달리 사회적기업인 건 아니다. 그저 정부에서 “사회적기업의 요건이 이렇다” 하면 사회적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말보다는 ‘공동체에 기반한 삶터’, 내지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는 실현지’와 같은 개념이 중요하다. 생산하는 곳이자 생활의 기반이 되는 곳이니 열심히 노동의 신성함을 지키며 살고, 나아가 사람들끼리 구체적으로 삶을 나누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같이 모여 산다던가, 잔치를 연다던가, 교제를 나눌 꺼리를 늘려가는 삶의 형태가 이어지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견고한 기반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주체들이 될 것이다. 그런 견고한 터가 되게끔 하는 것이 앞으로 콩세알에게 남은 과제다. 살아내기에 급급해서 일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관계를 더 촘촘히 가져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동료들 중에서 “당신 모습이 목사이기도 하니, 교회를 하면 기꺼이 교인이 되어 주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양사면과 강화읍 내에 생산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 농민회, 진보정당, 시민활동가, 환경운동가, 동료 목사, 대안교육 모임 등에서 만난 사람 등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됐다. 식구처럼 만나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 기성 교회의 틀에서 자유롭게 생활나눔 등을 하고, 평신도도 강단에서 진행을 하고, 밥 나눠 먹고 풍물 하고 농사 짓고 재밌게 지내면서 더 친밀한 공동체를 이야기하게 되고, 일본의 스즈카 에즈원 공동체에 다녀오기도 하다 보니 이렇게 함께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나누는 관계도 됐고, 나눔도 실천하게 되었는데 맘만 맞는다면 구체적으로 같이 모여서 사는 것도 해봄직 하겠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땅이 나오면 사서 집도 같이 짓자”는 등의 이야기들이 모여졌다. 이렇게 지역 안에서 작은 것들을 함께 해 나가면서 마을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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