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미래를 여는 대안공동체] 소유가 아닌 나눔의 생활운동, 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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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아닌 나눔의 생활운동, 지역화폐[기획연재] 지역에서 일구는 대안의 삶, 스스로 서서 미래를 만드는 대안공동체 ④

박혜연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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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호] 승인 2008.09.03  15: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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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1. 대안 공동체 운동, 왜 필요한가?
2. 제도권 학교 안과 밖에서 대안의 교육을 키우다
3.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대안 식생활운동
4. 소유가 아닌 나눔 중심의 생활운동, 지역화폐
5.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태마을공동체
6. 소통과 공감의 마을공동체를 위하여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돈’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돈’은 어떤 역할을 할까?

얼마 전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실시한 ‘한국인의 삶에 대한 생각’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최우선 조건은 돈’이라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 결과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 = 돈’이라는 등식에 “아무리 그래도…” 하며 고개를 저어보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돈’은 물건을 사고파는 교환을 위한 매개역할을 넘어 삶의 목적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돈을 되도록 많이 벌고 갖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주요 척도가 바로 돈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돈을 우리의 경제활동을 위한 단순도구로, 인간과 인간의 따뜻한 거래를 돕기 위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 거대 자본주의 화폐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움직임이 바로 ‘지역화폐 운동’이다.
지역화폐란 기존의 화폐가 아니라, 자신들의 화폐로 상품과 용역을 교환하는 것으로 공동체 화폐, 지역통화로도 불린다.

지역화폐는 일반적으로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로 불리며, 1983년 캐나다 밴쿠버의 작은 도시 커트니라는 곳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미군공군기지가 이전하고 이 지역의 기반산업인 목재산업이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는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되자 마이클 린튼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실업자들의 공동체 내부에서 사용할 화폐를 고안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역화폐 거래 관리시스템을 개발한 그는 녹색달러라는 지역화폐를 만들었으며, 이 지역화폐는 서로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면서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현재는 전 세계 2000여 이상의 지역과 공동체에서 지역화폐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물건부터 마음까지 나누는 한밭 레츠의 지역화폐 ‘두루’

   
▲ 한밭레츠는 정기적으로 전 회원이 모이는 ‘품앗이 만찬’을 열어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고 직접 물품을 거래하는 ‘두루장터’를 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는 민간단체인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1998년 처음 도입해 시작했으며, 현재는 과천시의 ‘과천품앗이’(화폐 이름: 아리), 서울 송파구의 ‘송파품앗이’(송파머니), 안산시 고잔동의 ‘고잔품앗이’(고잔머니), 경기도 광명시(광명그루) 등이 지역화폐 이용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중 대전지역 지역화폐공동체 ‘한밭 레츠’는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활발하게 지역화폐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한밭 레츠는 지역화폐로 ‘두루’를 사용한다. 두루란 ‘두루두루 쓰인다’는 순 우리말에서 따온 말이다. 7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시작된 한밭 레츠의 현재 회원은 약 560가구로 연간 5000건 이상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거래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실제화폐와 두루화폐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정해진 비율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거래하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그 비율을 정한다.

지난 2007년의 거래내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거래금액 1억 4000만원 중 실제화폐 거래량은 6800만원이고 두루거래는 7300만원으로 지역화폐 거래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들 사이에 거래가 성사되면 홈페이지나 전화 연락을 통해 거래 사실을 ‘등록소’에 알린다. 등록소의 거래를 담당하는 일명 ‘두루지기’는 온라인(www.tjlets.or.kr)으로 이런 거래 기록을 취합해 각 회원의 계정을 관리한다.

예를 들어 된장을 거래한다고 하자. 회원 갑은 을에게 된장을 받고 실제화폐 2만원과 두루 3000원을 지불했다. 이것을 두루지기에게 알리면 두루지기는 해당 거래를 기록하고 회원 갑의 두루 계정에 마이너스(-) 3000두루, 회원 을의 두루 계정에는 플러스(+) 3000을 기록한다. 모든 두루 계정은 0에서 시작하는데, 두루는 누구나 제약 없이 발생할 수 있다.

지역화폐 공동체에서 두루 계정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고, 플러스(+)라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표시다.

만약 마이너스 두루 계정이 많은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생겨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이 내놓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참여하게 된다. 이들의 수지 타산은 이익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마음’인 것이다.

지역화폐를 거래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

이처럼 지역화폐 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원 간의 관계와 신뢰가 중요하다. ‘내가 주었으니 상대방도 당연히 그만큼 나에게 주어야’하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많이 주었다고 아까워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 두루 화폐를 발생해 거래할 수 있다는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포도, 유정란, 배, 야채, 매실 등을 생산하는 대전 주변의 생산지에서도 자발적으로 한밭레츠 회원으로 가입하는데,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어려운 농가에 대한 믿음으로 회원들은 기꺼이 이들 농산물을 거래한다.

따라서 회원들에게 지역화폐를 거래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가입한 회원들도 점차 거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고 서로 힘이 되고 든든한 이웃이 되면서 사회에서 의무와 경쟁으로 지친 마음과 스트레스를 풀어놓는다.

더구나 두루화폐는 동네 약국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받는 데도 사용된다. 농산물과 함께 거래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약국, 의료까지 지역화폐 거래가 가능한 것은 한밭 레츠만의 특징이다. 생활협동조합 활동에 주목하던 한밭 레츠는 창립한 이후 ‘대전 민들레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생협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두루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지역화폐가 활성화됐으며, 의료생협 역시 지역에서 건강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역화폐로만 거래할 수 있는 소중한 ‘노동력’

제목 : 모시발 만들기
바느질 모임에서 모시발을 함께 만들려고 합니다.
일정 : 8월 8일 (금) 오전 10시 30분
장소 : 레츠 두루방
비용 : 재료비 + 강사료 5000 두루

제목 : 송편 만드실 분!
추석에 필요한 송편을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함께 만들고자 하시는 분은 글 올려주세요.
일정 : 9월 10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한밭레츠 주방과 두루방
내용 : 색깔이 있는 송편
강사료 : 3000 두루

두루화폐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농산품이나 물건만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는 사전, 아이용품 등 재활용품은 물론이고 여행용 텐트나 등산화 등의 대여 거래도 가능하다.

특히 실제화폐로는 거래할 수 없는 노동력도 거래된다. 뜨개질이나 차 예절을 잘하는 회원은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내놓는다.

믹서기가 고장 나면 수리를 잘하는 회원과, 집에서 손님접대를 해야 할 때는 요리를 잘하는 회원과 거래를 한다. 회원들이 서로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치며 배우는 ‘품앗이 학교’도 상시적으로 운영된다.

돈이 없는 사람도, 딱히 내놓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역화폐 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이다. 실제화폐로는 취급도 되지 않던 자신의 재주와 능력이 이 공동체 안에서는 활용돼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이는 자신과 공동체에 대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준다.

한밭 레츠 두루지기 박현숙씨는 “더 쓰기 위해 더 벌어야 하는 자본주의 악순환을 벗어나 덜 벌고 덜 써도 마음 편하며 오히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인한 정신적인 만족은 어떠한 데이터로도 측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국의 다양한 지역화폐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동기와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참여한다. 또 누구는 돈 중심의 불평등한 시스템에 반대하기 위해 참여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나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참여하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의 바람은 자신이 가진 부의 가치로 자신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작고 큰 능력이 인정되고 그것을 사용해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어려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지역화폐공동체 ‘이웃사랑품앗이’

   
▲ 이웃사랑품앗이에서 지역화폐 거래계정은 ‘통장’을 통해 기록한다.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이웃사랑품앗이’ 역시 그런 관계와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화폐 공동체다.

이웃사랑품앗이는 갈산동과 삼산동을 중심으로 홀몸노인 봉사활동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다양한 사업을 벌여오던 이웃사랑교회가 주축이 돼 지역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지난 2006년 3월 창립했다.

이웃사랑품앗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화폐 단위는 ‘사랑머니’로 1000사랑은 현금 1000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물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회원에게 제공하면 자신의 계정에 사랑머니가 저축되는데 이때 거래계정은 ‘통장’에 기록된다.(홈페이지 www.lovelets.or.kr)

현재 가입된 회원은 220명 정도. 아직은 지역화폐 거래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웃사랑품앗이는 지역에서 아직은 낯선 지역화폐에 대한 인식을 넓히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천생활협동조합과 아름다운가게, 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 등 지역단체들과 연계한 ‘나눔장터’를 매월 개최하고 있다. 꾸준한 장터 개최로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점차 늘어났으며, 재활용물품을 교환하는 활동을 통해 친환경적 삶에 대한 생각과 지역화폐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서는 작은 지역단위에서 자발적 참여와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볼 때, 장터를 통해 거주지 중심의 동네 주민들 간의 동질감과 소속감은 부쩍 커졌다.

이웃사랑품앗이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본격적인 지역화폐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친환경 콩나물과 두부를 만들어 지역화폐를 통해 거래하는 등 작은 일이지만 노인을 비롯한 소외된 계층이 자신의 노동력을 발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역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부모들의 교육 ‘품’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웃사랑품앗이 운영위원장인 송규의 목사는 “지역화폐를 통한 관계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경제적 가치보다는 자발적인 회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문화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제도이자 운동이다”고 전한다.

이렇듯 지역화폐 운동은 공동체 회원 간의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구조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지역화폐 운동은 대안 경제운동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지역화폐 운동이 아직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체 경제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

그러나 지역화폐 운동과 공동체를 통해 사람들은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은 ‘따뜻한 나눔을 느끼고’, ‘내 가족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가 살아가는 마음의 편안함과 여유’를 갖게 되는 나와 서로의 삶의 자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의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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