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을 만드는 청년들] 예술인들이 정당한 대우 받는 신나는 세상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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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이 정당한 대우 받는 신나는 세상 꿈꿔요”[기획연재] 스스로 일을 만드는 청년들 ⑦ 제이컴퍼니

심혜진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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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승인 2013.07.11  12: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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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직자들은 취업이 힘들고, 막상 취업에 어렵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 끝 행복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경쟁적인 취업 시장을 벗어나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일을 선택하는데 자신의 적성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출을 꾀하는 점에서, 이익과 매출을 강조하는 일반 창업과 확연히 다르다. 일자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청년들의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주>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공연예술인 평균 연봉이 얼마인 줄 아세요?” 이 청년, 시작부터 세게 나온다. 머뭇거리는 사이 속사포처럼 말이 이어진다. “434만 원이래요. 그런데 이것도 돈을 받는 사람들만 계산한 거예요. 제대로 돈을 못 받는 이들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적어질 거예요”

남동구 만수동 창대시장 골목에 요즘 한창 내부공사 중인 건물이 있다. ‘공연문화사업단 제이컴퍼니’와 ‘협동조합 꿈꾸는 문화놀이터 뜻’이 지역을 거점으로 문화 사업을 벌이는 공간이다. 정윤호(28ㆍ만수동)씨는 두 단체에서 각각 대표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제이컴퍼니는 문화예술을 하는 청소년과 청년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공연기획과 강사파견 등을 해온 단체다. ‘협동조합 꿈꾸는 문화 놀이터 뜻’은 안전행정부가 주관하는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만수동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프로젝트 실행을 준비 중이다. 두 단체를 이끌고 있는 ‘센 청년’ 정대표를 7월 2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 의견이 수련관 운영에 반영돼 기뻐

   
▲ 제이컴퍼니 직원들. 왼쪽부터 정윤호 대표·한태수·심혜지·류지형·박푸른씨.

제이컴퍼니는 2006년 정 대표를 포함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소년 네 명이 ‘연극퍼포먼스-광끼’라는 공연단체를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 ‘광끼’의 시작을 설명하기 위해선 그의 고교 시절로 되돌아가야한다.

그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다. 2학년 때 친구들과 자유롭게 연습할 공간을 찾던 중 남동구청소년수련관에서 동아리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과 이곳을 드나들며 연극 연습을 하던 어느 날, 한 청소년지도사가 그에게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수련관을 이용하는 청소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이었어요. 수련관 쪽에 우리의 불만이나 요구를 전달하는 거죠”

그는 수련관이 오후 6시에 문을 닫아 청소년들이 평일에는 공간을 이용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수련관은 이를 받아들여 공간을 오후 10시까지 이용할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수련관 이용시간이 늘어난 것도 좋았지만, 제 의견이 수련관 운영에 실제로 반영됐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어요”

그는 또 수련관이 주관하는 청소년축제 기획에도 참여했다. 처음엔 지도사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세 번째부터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축제기획단을 꾸렸다. 그는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며 청소년을 대변하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때 청소년지도사가 그에게 ‘힘을 가지려면 단체가 필요하다. 네가 직접 만들어봐라’는 조언을 했다. 이 말은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청소년위원회 활동은 제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어요. 시야도 많이 넓어졌죠.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싶어요”

청소년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은 아니잖아요?

그는 고교 졸업 후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을 하는 한편, 수련관에서 만난 친구ㆍ후배들과 축제나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에서 공연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청소년 공연팀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했다.

“‘너희는 실력이 안 되니까’ ‘너희는 아직 배워야하는 처지이니까’ ‘너희에겐 이 정도 대우도 충분해’ 이런 생각이 어른들에게 있는 것 같았어요. 열 명이 공연을 해도 공연비는 고작 몇 만 원 받기 일쑤고 때론 못 받기도 했죠. 실력은 조금 부족해도 열정만큼은 우리가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이 청소년을 마치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결국 뜻 맞는 친구들과 ‘연극 퍼포먼스-광끼’를 만들었다. 집단이 있으면 목소리에 힘이 실릴 거라 판단했다. 함께 활동할 청소년들도 모으기 시작했다. 춤과 연극으로 시작해 점차 노래와 마술, 응원단 등 분야가 넓어지면서 1년 만에 청소년 100여 명이 모였다. 단체 이름도 ‘광끼 패밀리’로 바꿨다.

정 대표는, 우선 하고 싶은 공연을 마음 껏 해보는 것을 목표로, 청소년들이 많이 찾으면서 공연도 가능한 장소를 물색했다.

부평문화의거리는 두 가지를 충족하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였다. 시장상인회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당시 상인회장을 맡고 있던 인태연씨는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값비싼 음향장비 대여는 꿈도 못 꾸는 이들에게 시장 전체에 마련돼 있는 스피커를 사용하게 했다. 작은 콘크리트 단상에서 이들의 첫 길거리 공연이 시작됐다. 단상 근처엔 작은 모금함도 놓았다.

“누가 공연비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주말마다 무대에 올랐어요. 저는 주로 사회를 봤죠. 틈틈이 사람들에게 제 명함도 돌렸어요”

공연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주말마다 부평문화의거리를 찾는 이들이 생겼다. 공연 섭외도 곳곳에서 들어왔다. 게다가 이들처럼, 무대에 오르기를 원하는 청소년들도 생겼다.

“한번은 공연 중에 ‘이제 막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즉흥 공연을 해보고 싶다’며 제게 말을 걸었어요. 제가 사회자였으니 바로 등장시켰죠. 지금 그 마술사가 아주 유명해졌더군요. 유호진 마술사 아세요? 텔레비전에 많이 나와요. 나중에 들으니 이 무대가 그의 첫 무대였다고 하더라고요”

또, 내성적이고 꿈도 없던 한 고등학생이 자신도 노래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와 결국엔 보컬트레이너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서울의 한 기획사 소속으로 일하다 얼마 전부터 정 대표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창단 멤버들의 눈물이 그를 붙잡아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공연을 시작한지 1년 쯤 지났을 때, 정 대표에게 날개가 꺾이는 듯한 시련이 찾아왔다. 청소년들이 정대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은 많이 하러 다니는데 왜 수입이 적냐는 거였어요. 사실, 정말 공연을 많이 하긴 했어요. 불러주는 곳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청소년동아리들이 인원은 많은데 공연비는, 사실 공연비라기보다는 동아리활동 지원금 수준으로, 정말 적게 받았어요. 저 역시 공연을 통해 먹고 살 수 있는 미래를 구상해야하는데, 일을 할수록 지쳤어요”

청소년동아리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순식간에 ‘광끼’를 빠져나갔다. 남은 인원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정 대표의 마음도약해지려는 그때, 창단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그를 눈물로 붙잡았다.

“‘형만 믿고 따라왔는데 그만 두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해보자’며 마음을 다잡았죠” 그는 이참에 공연기획을 공부하고 싶어 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008년 겨울, 군대에 갔다.

청년이 올바르게 선 모습 보여 주고 싶어

군대에서 그는 스무 살부터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이십대 중반에 들어선 그에겐 ‘청소년’이란 말도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해나갈 사업 분야를 ‘공연’ ‘기획사’ ‘교육’으로 압축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단체 이름으로 ‘제이컴퍼니’를 떠올렸다. 제이는 자신의 성에서 앞글자를 딴 것이다.

2010년 가을, 제대를 한 후 이전에 함께 하던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201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자비를 털어 지하에 연습공간을 마련했다. 생활비와 활동비는 연극 강사를 해 번 돈으로 충당했다. 그의 활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연 섭외와 기획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2012년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컨설팅을 받으며 점점 더 뚜렷한 비전을 갖춘 사업체로 성장했다.

그는 6월 말 현재, 올해 매출이 7000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여기서 실비를 제하고 나면, 아직 인건비를 마련하기엔 불안정한 수준이다. 하반기에는 사무실이 있는 만수동 창대시장 일대에서 동네축제를 벌일 계획이다.

“왜 이 동네냐고요. 제가 가장 잘 아는 동네에요. 21년 동안 살았거든요. 재밌는 축제를 구상하고 있으니 꼭 놀러 오세요”

그는 공연예술을 하는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누구나 삶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마을을 꿈꾼다. 그리고 한가지가 더 있단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문화 쪽이 아니어도 좋아요. 우리가 그 모델이 되고 싶어요. 청년이 올바르게 서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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