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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인문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31 06:50
조회
265


배다리마을의 핫 플레이스, 청소년 흡연구역 이야기 



민 운 기 l 스페이스 빔 대표


 

 인천 동구 금창동 배다리마을에 가면 경인철로 아래 움푹 들어간 후미진 공간이 있어요. 이곳은 지난 2006년에 이 마을을 지나가는 산업도로를 내려고 철길 밑을 뚫어 차도와 보행로를 만들고, 이로 인해 단절될 기존 도로 대체용으로 육교를 철로 바로 옆에 붙여 지으며 그 아래 부분에 애매하게 만들어진 곳이죠.

 그런데 이 마을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고, 또한 어린이들도 매일같이 학교를 오가야 하는데, 이렇게 오르내리기 불편한 육교를 이용하라고 하는 건 너무나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였지요. 아무튼 이런 부분 포함해서 마을을 단절시키고 온갖 피해를 끼치며 ‘지나가려는’ 산업도로에 대해 주민들은 물론 지역사회의 반발이 이어지며 오랜 싸움 끝에 지하화로 결정이 되면서 육교 또한 쓸모가 없어졌어요.

 그렇지만 그 밑의 공간은 철길 너머 도로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모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겐 너무나 괜찮은(?) 공간으로 다가왔지요. 다름 아닌 학교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기에 매우 안전하고 적절한 곳이었지요. 그래서인지 하교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이곳에 몰려 있는 경우를 어김없이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은 학생들의 욕망의 해방구 또는 배설구 같은 곳이 되어 갔어요. 담배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피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진 후 발로 비벼 끄고,(그래야 흔히 말하는 ‘직성’이 풀리나 봐요) 가래침도 뱉곤 하지요. 그렇게 지저분해지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쓰레기를 이곳에 마구 버리곤 했지요.

 당연히 지나가다 이를 보게 된 마을 주민들 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하고, 보다 못한 일부 어르신들이 이를 나무라기 시작했어요. 더불어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이 동네에 폐를 끼치는 것을 알고 이곳에 머물지 못하도록 했죠. 그랬더니 가뜩이나 주위의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 중 일부는 사람 눈에 덜 띠는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 피우기 시작했어요. 이른 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죠. 한 쪽을 누르면 줄어든 만큼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주민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담배 연기가 창문 등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옴은 물론 골목길 자체가 지저분해진 것이죠. 그래서인지 담배를 아예 피우지 못하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애초의 ‘그곳’에서 피우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이즈음 필자가 여러 회원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는 지역 공동체 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빔에서 배다리 마을 안팎의 작가들과 마을주민 두 분이 참여하는 레지던시(거주)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당시 주제가 <배다_리사이클 빌리지>였는데, 그 하나로 이렇게 방치된 곳을 다시 살리는 작업을 해보자 해서 몇몇의 참여 작가들이 이를 맡았어요. 주된 방향은 이곳의 환경을 밝고 친근하게 바꾸어 편안하게 쉬는 가운데 안심하고(?) 담배를 피움은 물론, 학생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같이 사용하고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면서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다소 이상적인 것이었죠.

 그래서 이곳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벽에 노란색의 페인트를 칠하고, 벤치도 놓고, 가운데에는 드럼통을 구해 모래를 채워 놓았죠, 다름 아닌 담배를 피운 후 꽁초를 이곳에다 버려달라고요. 공식적으로 ‘청소년 흡연구역’으로 지정을 한 것이죠. 더불어 노란색 천막을 뚫어 장식을 만든 후 입구 천정에 매달아 안온한 느낌을 줌은 물론 외부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했지요. 어쨌든 환경이 바뀌면 마음과 태도도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어요.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어떻게 활용하나, 이따금씩 나아가 살펴보았어요. 처음엔 바뀐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좋아했는데요.






그러나 며칠도 안 되어 우리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지요. 벤치는 삐거덕거리고, 담배꽁초는 여전히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드럼통엔 꽁초보다도 쓰레기(봉지)들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터졌어요. 이곳 드럼통 안에서 불이 난 것이죠. 쌓여 있던 쓰레기에 누군가 불을 붙였거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버린 때문이 아닌가 짐작을 했지만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어요. 





 

이후 드럼통을 치우고 한동안 관심을 끊었어요. 결국 다시 원래로 상태로 돌아왔죠. 그렇게 또 방치되어 가며 마을 주민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중 누군가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지 어느 날 직원들이 나와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그물망으로 차단을 했지요.(참으로 쉽고 간단하죠?) 당연히 며칠 못 가 구멍이 뚫리고 결국엔 곳곳이 떨어져나가며 또 다른 흉물이 되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다시 여러 해결 방안을 고민했어요. 이를 위해서는 첫째, 학생들의 흡연을 못하게 하는 게 있는데, 이는 역사(?)를 통해 불가함이 증명되었지요. 그렇다면 둘째, 학교에 흡연 구역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이 또한 공식적으로 결코 용인 받을 수 없는 일이고 학교 측에서 받아들일 리 만무하죠. 셋째는 학생들과 배다리 사람들이 직접 만나 이 마을이 어떤 곳임을 알게 해주고 담배를 피우더라도 우리들의 입장을 헤아려 주기를 요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희망 섞인 방안인데, 이따금 지도 단속 나오는 선생님께 이런 제안을 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어요.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지요. 이 친구들의 흡연 욕망 및 반항 심리를 억누를 수 없는 거라면 이를 오히려 적절한 방식으로 해소 및 분산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면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죠.

 또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후미진 공간 안의 (육교 ‘계단’ 밑) 또 다른 움푹 패인 공간에 어느 샌가 버려져 있던 폐기물과 쓰레기를 꺼낸 후 이곳을 합판으로 막았지요. 그런 다음 모 행사에 썼던 마을과 연관된 사진 프린트 물을 이곳에 게시하여 미니 전시장으로 활용했어요. 누렇게 변한 벽은 다시 하얀색 페인트로 칠했고, 가운데 벽면에는 책꽂이를 또 한 쪽에는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합판을 자르고 칠을 하여 부착하였지요. 그리고 가장 핵심인, 페인트 통을 농구골대 높이로 벽에 붙여 담배꽁초를 그냥 버리지 않고 이곳에 던져 골인의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인했지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을 확인했어요.


 





  더불어 또 한 가지 준비한 회심의 작품. 화판으로 막은 미니 전시장 옆 여분의 공간에 그간 스페이스 빔에서 설치되어 꽤나 방문객들의 인기를 끌던 다트를 옮겨 설치했지요. 혹여나 떼어 갈까 싶어 과녁을 벽에 못으로 고정시키고 화살촉 열 개를 꽂아 두었어요. 작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반응이 왔어요. 하교길에 아이들이 너도나도 화살촉을 던지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다음 날 화살촉이 몇 개 없어지더니 그 다음날엔 한 두 개 밖에 남지 않았고, 또 며칠이 지나서는 이마져 보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엔 전혀 생각하지 못할 일이 발생했어요. 다름 아닌, 과녁 자체가 없어진 거죠.(맨붕) 그리고 미니 전시장의 사진도 일부가 담뱃불에 타 구멍이 나 있더군요.

한 동안 낙담 후 다트를 다시 구입하여 이번에는 더 튼튼히 고정을 시킨 후 화살촉을 또 놓아두었어요.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얼마 간 잘 놀다가 결국엔 화살촉은 안 보이고 과녁만 남게 되는 상황이 왔지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학생들이 이를 가지고 내기를 하다가 액수가 커져 제법 큰 액수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본 누군가 신고하여 경찰이 다녀갔다 하더군요. 아~




 이것이 최근까지의 이야기이구요. 현재는 저 개인적으로 더 이상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관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이곳은 하나의 장소를 두고 서로 다른 주체들이 지닌 사고와 욕망, 기대와 시선이 이렇게 다르게 드러남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솔직한 단면 또는 축소판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다수가 아닌 일부 학생들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우리는 이곳에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 이해와 교감을 통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곳에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나온 이유는 우리가 꿈꾸고 지향하는 공동체를 실현하기가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고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좋은 분들이 모여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낸 것도 좋지만(모든 활동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 못한 것을 통해 또 다른 어려움을 인식하고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를 살펴보아야만 해결책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사실 청소년들의 흡연을 포함한 일탈적 욕망은 어떤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하고 규정짓기 어려운 문제이지요. 우리의 교육문제와 사회의 억압구조, 소비문화, 대중매체, 기성세대의 사고와 행태 등등과 맞물려 있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접근 태도와 방법도 다르게 드러날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마을공동체 활동도 특정의 주체가 어떤 한 가지 사안으로 한 가지 방법에 의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식하고 모든 주체들에 의한 다차원적인 접근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이야기가 우리의 마을 활동에 있어 한 차원 더 깊이 들어가 살피고 따져보게 될 논의거리로 던져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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