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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뿌리내리는가 – 대전 주민조직 활동을 중심으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07 11:32
조회
724

강영희(전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장)

컨퍼런스 자리에 초대를 수락하고 메일로 요청받은 발제의 제목은 도저히 내가 감당이 안되는 제목이다. 평소에도 거창한 제목에 별거 없는 내용의 발제가 가장 꼴불견으로 여긴 나에게 이번 제목은 영락없이 내 스스로 꼴불견을 만드는 자리이다. 거절할까? 여러번 생각하다가 나를 부를 때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과 나에게 늘 숙제같은 제목이어서 숙제를 여러분들에게 같이 풀자고 던져보기로 했다. 컨퍼런스 발제문에 굳이 이렇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이번 발제문은 마을에서 7명의 엄마들과 함께 도서관을 만든 활동가에서 재단을 지향하는 법인을 만들고, 중간지원센터에서 일하고 개방형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늘 고민했던, 민주적시민으로써 주민조직화에 대한 개인의 회고형태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질문을 던져보기 위해서이다. 내 고민이 내 고민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써내려가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학술성도 객관성도 낮은, 지극히 개인의 인식에 기대어 작성하는 글임을 양해해 주길 바람이다.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말은 의회정치, 지배권력의 엘리트 정치의 대안으로 일상에서 주권 행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80년대 학생운동권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공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위 현장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일상의 민주주의는 촛불이 광장을 토론의 공간으로, 공공의 공간으로 바꾸면서 힘있게 얘기되었다. 마을과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생활 의제로부터 사회 의제를 논의하고, 정책으로 제안하는 활동들이 풀뿌리민주주의의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광장의 이야기가 골목으로 가고, 일터와 가정에서 종교, 직위, 성별에 차별 없이, 그저 타인을 나와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는, 생활 속에서 민주시민으로써의 태도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렇듯 삶의 정치를 조직하는 풀뿌리민주주의로 일상의 민주주의는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정치적 플랫폼으로서 공간을 구성하는 것과 함께 지금까지 비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다양성과 평등이 일상의 가치 기준이 되는 민주적 시민으로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공간으로써 광장을 일상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민주시민으로 정치권력자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는가?
당신은 정치하는 사람입니까?
최근에 대전에서 ‘시민 정치 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 ‘시민 정치 네트워크’는 기존의 다른 조직들과 달리 조직의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역 리더들이 모여 결의하고 조직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네트워크 조직 운영의 지향을 두고 있는 모양새이다.

최근 마을활동가들과 차담회를 하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마을 활동가들로부터 듣는 행정과의 마찰, 마을활동가 간의 갈등,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 높아짐에 대한 불안감과 피로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재미가 없고 힘만 드는 고통 등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동안 듣지 못했던 소소하지만 가시같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시국이 시국인지라 대통령선거와 지방 선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태지면서 할 일은 많고, 관여해야 할 일도 많은데 능력은 부족해서 뭘 할 수가 없다는 자해적인 푸념들과 선거철이 되면 여전히 시민정치는 없고, 정치판에서 소모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정치하는 사람입니까?’ 마을 활동을 적어도 5년 이상 해왔고, 최근에는 주민자치회, 시민 자산화, 주민자치위원, 통장으로 일하기도 하는 마을활동가들이었음에도 이 질문에 선뜻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예’라고 해야 하는데 ‘예’라고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정치하는 사람’으로 불려 지는 것이 싫다는 얘기와 정책이라는 말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내 일이 아닌 듯하다 등 우리 안에 얼마나 ‘정치’에 대한 혐오와 많은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였다. 특히 ‘나는 정치를 모른다’라는 생각이 깊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정서들이 마을의 활동 자체가 정치활동임에도 정치적인 인식을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로 우리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공감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민정치’를 강하게 얘기해야 하는 때라는 문제의식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정치학교 파일럿프로그램’을 해보기로 했다.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해 지역의 교수님으로부터 3강의 강의를 들었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해 온 수많은 학습과 별반 특이할 것도 없었던 학습 과정이었지만 이후 변화는 달랐다. 시민정치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강한 욕구로 시민정치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시민정치 네트워크”은 간단한 원칙을 공유했다. ①‘시민정치’로써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 제안한다. ②네트 워크 조직으로 운영한다. 두 가지 원칙으로 6개의 목표를 만들고, 현재 시민정치학교-시민정치학개론과 기금 운영-000 기금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몇 가지가 계속 제안되고 있다.

네트워크 조직으로 운영해보자고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고 싶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제안하면, 지원그룹을 같이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고, 사업을 고민하며, 그 사람을 실행할 사람을 찾는 조직-사업-사람의 운영방식이 아니라 사람‧사업‧조직이 동시에 생기는 운영방식을 만들어 가보려 한다. 두 번째는 청년으로 대표되는 미래세대의 조직화 특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우리는 동일한 가치 비젼을 만들고, 그것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으로 조직 운영을 했다면, 현재 청년들은 아무리 동일한 가치비젼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른 조직을 구성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대화를 조직하는 것이 일상의 정치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활동가의 역할은 이런 조직을 기획하고 촉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일상의 대화가 정책이 된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을 만들고 단체장 후보들이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들이 활발했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 정책을 만드는 방법이 전문가와 엘리트 활동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고, 일반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활동과 창구는 미비했다. 일상에서 시민들의 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고민을 2명의 청년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살폈을 때 자신들이 편안한 공간에서 수다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많다는 게 쉽게 관찰되었다. 그리고 일상의 공간에서 정치 수다를 만들어내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정상회담@대전’을 열었다. 장소와 시간, 모이는 사람의 규모, 이야기 꺼리를 제한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라는 대주제만 제안하였는데, 30여개의 팀들이 모였고 파일럿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2018년 2월, 시민들로부터 후원금을 걷어서 ‘2018년 우리가 바꾸고 싶은 것들’ 누구나 정상회담 @ 대전을 열었다. 61개의 대화모임, 493명의 시민이 참여해서 작은 공론장을 열었고, 공론장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은 타운홀미팅을 통해 대전시장 후보들에게 제안되었고, 이후 ‘누구나 정상회담@대전’은 해마다 대전시의 정책을 만드는 시민들의 공론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누구나 정상회담@대전”은 ‘우리의 대화가 집중되는 곳이 우리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정치 플랫폼이다. 이미 일상의 공간에서 하고 있는 대화를 정책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공간 즉 플랫폼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생활의 문제를 정책으로 가져가는 것, 일상의 의제가 사회적 의제로 되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사회적 의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민주시민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열어줄 때 민주시민은 조직화 된다.
공론장의 핵심은 민주적의사결정
요즘은 포스트잍을 꺼내면 진저리치는 경우를 가끔 만나게 된다. 이유를 물어보면, ’맨날 포스트잍에 쓰라고 하는데, 결정되는 건 없고....‘라고 말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아무리 좋은 수단도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지금은 포스트잍 기법, 월드카페, 퍼실리데이터 등 의사결정과정을 돕는 다양한 기법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런 것들은 왜 계발되었는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대전은 마을 공동체활동에 대전만의 특이한 경험이 있다. 주민자치형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시민 주체적으로 함께 진행했다는 것이다. 대전 석교동에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진 후, 반딧불터사업단 교육을 통해 제각기 모인 시민들을 마을별로 모둠을 만들고, 교육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활동들을 마을에서 복제해서 활동하는 방식으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7개의 마을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마을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주민들의 수평적 조직으로써 운영되기 위해 마을총회를 반드시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도서관의 실질적인 실행단위로 운영위원회나 실무분과를 운영하였는데, 조직활동을 처음 해보는 주민이 대부분이었고, 조직 활동을 했다고 해도 수평적조직의 경험이 없다 보니 결정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들이 생겨났다. 갈등의 종류는 리더의 역할, 정체성에 대한 차이, 무임승차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하였는데,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결정 과정의 민주성이었다. 결정을 했다고 하나 결정에 동의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경우와 할 얘기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등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핵심적으로 우리 사회에 흐르는 권위주의에 의한 결정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지식, 나이, 연령, 경험 등 권위주의에 의한 논의는 말문을 막았고, 다수결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것이 수평적 주민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제임을 알게 되었고, 민주적 의사결정의 가장 크게 방해하고 있는 권위주의를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다양한 퍼실리데이터 기법들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해가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와 긴밀한 것이여서 개인의 태도가 바뀌는 것과 동시적 변화가 요구되지만, 적어도 공론장에서의 민주적 결정의 경험을 높이는 데에는 다양한 기법들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권력자를 제어하는 힘으로써 일상의 정치, 풀뿌리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활성화를 열심히 만들어 가려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통해 마을에서 자고 가던 주민에서 사회적 시민으로 까칠해지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을 조직하는 것을 일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권력으로부터 소외 받고 있는 타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적극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일상의 민주주의는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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