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두레 현장을 찾아⑤ 30년 묵은 동네쓰레기, 닷세만에 해결한 주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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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묵은 동네쓰레기, 닷세만에 해결한 주민의 힘

통두레 공동체 현장을 찾아 ⑤기흥주택 통두레

15-10-23 18:56ㅣ 문성예 통두레실록 ‘틈만나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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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에 ‘통두레’라는 소모임들이 생긴지 올해로 3년째다. 지역의 리더를 중심으로 5명 이상 모여 마을환경개선 사업을 비롯, 방범·안전, 주차, 지역봉사, 육아 등의 마을 현안을 주민 스스로 해결해?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나아가 지역공동체의식과 주민자치역량을 높이고자 한다. 기존의 관변단체가 아닌,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 통두레의 기본 특징이다. 남구에는 21개 동에 현재 53개의 통두레가 조직돼있고 참여인원은?880여명에 이른다. <인천in>은 통두레 현장에서 활동하는 ‘통두레 실록’팀(팀명 ‘틈만나면’)의 청년 작가들과 함께 통두레별로 현장을 찾아 그들의 활동을 취재, 격주로 연재한다.

스스로 방법을 찾은 ‘우리’들의 문제

사또로 부임하여 가는 곳마다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자신의 재산을 털어 백성을 도왔던 “이현경”이라는 목민관이 있었다. 임금님께선 아름다운 선비가 태어난 마을이라고 사미골이라고 불렸던 주안3동.

그 곳에서도 신기길에는 30~40년 남짓의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골목과 거리가 수많은 쓰레기들로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끊이지 않는 민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방법이 없이 쓰레기 무단투기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여름에는 방치된 쓰레기 때문에 악취가 심해서 밖에 나가기도 꺼려질 정도였고 남이 하니까 나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서 점점 상황은 나빠져만 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제의 해결은 한 주민의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김현자 통장(14통)은 30여년이 된 기흥 주택의 쓰레기 문제로 고민하다가 통두레를 통해서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치우러 약속한 날짜에 아무도 나오지 않아 혼자서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혼자 애쓰는 김현자 통장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사람들부터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삼일 째 되는 날에는 열 몇 명의 주민들이 나와 함께 쓰레기를 치우는 데에 힘을 모았다. 대부분이 노인들이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주민까지 나와서 쓰레기를 담는 포대 자루라도 잡고 힘을 보탰다. 나중에는 담장구석에서 담배를 피던 청소년들도 나와 삼일동안 일을 거들었다. 시작할 당시에는 일주일을 잡았던 일이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그 힘으로 닷새 반 만에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통두레를 엮어서 청소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동사무소에서 플랜카드로 만든 포대자루를 100개를 줬어요. 그렇게 묶고 또 싸매고 또 흙은 수거가 안 된다고 해서 그 걸로는 밭을 만들었고. 쓰레기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흙이 다 됐어요. 그렇게 쓰레기를 다 치워놓으니까 동사무소에서 와서 실어갔어요. 수거하는 차로 높이 쌓아서 차 세대를 가득 실었어요. 나무는 나무대로 또 묶어서 하고 그렇게 쓰레기를 치웠어요.”

한번 모인 주민들의 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던 곳을 밭과 화단이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도시농부학교의 지원을 받아서 씨앗과 꽃모종을 받아 심었다. 그렇게 스스로 일궈낸 장소에서 주민들은 꽃을 가꾸고 밭에 심어진 호박을 따서 먹고, 수세미로 청을 만들어서 먹으며 보람을 느끼는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여기도 원래는 밭이 없는데 밭을 만들었어요. 여기도 이렇게 밭을 만들었고요. 도시농부학교에서 모종을 가져오면서 이렇게 별 종류를 다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다 가져다가 심었어요. 할머니들이 그런 일들을 잘하시잖아요. (여기)꽃을 보세요 얼마나 예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다 물을 주고 관리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예뻐졌어요. 여기도 쓰레기가 제일 많았는데, 이렇게 됐어.”


< 새롭게 태어난 벽화골목>

기흥주택 골목 인근에 있는 벽들도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낡고 볼품없던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 넣어 벽화골목 통두레를 만들었다. 주민이 재료비 70만원을 충당하여 5명 이상의 주민들이 신청하면 원하는 장소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인 학산콜을 신청하여 강사의 지도로 벽화골목도 조성했다. 시간이 지나자 재개발에 묶여있었던 주민들이 집을 수리하고 지붕도 고쳐서 새로운 모습의 마을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주민의 재능기부로 뜻깊은 시들도 벽에 새겨졌다. 어떤 주민은 스스로 나와 밤 열한시까지도 벽을 색칠하기도 했다. 낡고 색이 바래서 흉측한 모습이었던 골목의 벽들은 예쁜 벽화와 좋은 시들이 쓰인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사해진 골목길에는 이제 예쁜 벽화가 있는 벽들 사이사이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뀐 동네는 이제 스스로 그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일들을 함께하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무단 투기가 성행하던 전과 다르게 이제는 기흥주택도, 벽화골목의 주민들도 스스로가 쓰레기봉투를 사서 버리고, 재활용을 하며 변화된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움직임들
작년에는 벽화골목 사람들이 김장을 해서 기흥주택의 어르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처음에는 돈을 거둬서 하려던 것이 주위 여러 사람들의 자발적 도움으로 비용 없이 김장을 담가서 서른네 가구와 나누며 이웃간의 정을 쌓았다.

“미디어 센터장 장석현씨가 활동하는 동아리에서 무랑 배추를 심어놓은 곳이 있다고 어디 봉사할 곳이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추를 50포기 정도 주면 김장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배추 50개하고 무 20개를 주더라고요. 그래놓고 여기 사람들에게 재료비로 돈 만원씩만 가지고 김장하러 오라고 했어요. 기흥주택에 사시는 할머니들이나 혼자 사는 노인네들 드리게 우리 집으로 김장하러 오라고 했더니 그러겠대요, 사람들이. 그래서 도시농부학교 사장님께 파하고 갓을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전화를 했어요. 갖다드리겠다고 해서 조그마한 배추하고 무를 1톤 차로 실어왔어요. 그러니 또 어떤 분이 자신이 가진 고춧가루를 가져오고, 마늘 세 자루를 또 보내주고. 또 젓갈은 내가 하고 소금은 또 어떤 사람이 가져오고, 이게 십시일반이 되니까 돈이 필요가 없어졌어요.”

2013년 연말에 개최된 통두레성과발표대회에서 기흥주택 통두레가 1등을 수상했다. 그 상금으로 동네의 할머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실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공간이 마땅치 않아 빌라 한쪽 마당에 천막을 설치하고, 할머니들이 천막 속 맨 바닥에 있는 모습을 보고 학산 문화원 회원들이 85만원이란 돈을 재료비로 지원하여 창작공방 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평상이라는 대화가 숨 쉬는 쉼터가 만들어졌다.

“할머니들이 갈 곳이 없으셔서 어느 날은 이쪽 층계에, 다른날은 저쪽 집 층계에 있다가 하셨어요. 겨울에는 볕바라기 하고 여름에는 그늘바라기 하고 왔다갔다 그러셨어요. 그래서 천막을 하나 오십만 원을 주고 해드렸어. 그랬더니 문화원 사람들이 와서 보더니 그래도 너무 열악하다고 각자 몇 만원씩을 거둬서 평상을 하나 해줬어요. 그랬더니 아주 대궐이야. 할머니들께서 너무들 좋아하세요.”

서로 유대가 없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 오고 가는 정이라는 것이 생기고, 함께 하는 즐거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변화한 골목길에는 벽이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림과 시로 옷을 입었다. 악취로 어서 지나가기에 여념이 없었던 전과 달리,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집들 간의 거리는 좁게 붙어있지만 이웃들의 거리는 멀고 소원하기만 하던 모습과 달리 기흥주택 통두레와 벽화골목 통두레는 주민들 스스로가 문제점을 풀어내고 서로 아우르며 돕는 행동으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2014년에는 할머니들이 주안 미디어 축제에 참여하여 개사한 민요를 부르며 노래 솜씨를 뽐냈다.
올해 9월에는 기흥주택 통두레 주민들이 함께 마당극을 준비하여 공연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서로의 입가에 피어난 웃음꽃이 점점 전염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오늘뿐만이 아닌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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