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소식

공동체로 뭉친 중산동 LH7단지 노인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12 15:29
조회
20
따뜻함 소올~솔 피워내는 노인들의 손냄새
공동체로 뭉친 중산동 LH7단지 노인정
  

밖에서 찬바람 쐬고 집에 들어오면 그리운 냄새가 있다. 콩 입자 살아있는 생청국장에 뚝뚝 썰어 넣은 두부, 매콤한 청양고추와 끓여진 청국장찌개만 있으면 밖에서 고생한 몸이 호강을 한다.
지금은 옛 방식 그대로 청국장을 띄우는 곳도 많지 않거니와 우리콩으로 만들어진 청국장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옛날 맛을 고이 간직한 할머니들이 모여 청국장, 된장, 간장을 만드는 곳이 있다. 직접 농사짓고 짚을 깔아 띄워 콩콩 빻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할머니들의 손맛으로 초대해 본다.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다.
인천시 중구 중산동 LH아파트 7단지 노인정입구에 할머니들의 자가용인 보행보조차가 곱게 주차되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어르신들이 모였나 보다. 노인정 현관부터 구수한 메주냄새, 청국장 냄새가 가득하다. 오늘은 이틀 전 아랫목에 묻어둔 청국장을 개봉하는 날이다.




볕 가득 들어오는 방 한구석에 네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꽁꽁 싸맸던 이불을 들추자 짚이 나온다. 짚 속에는 밤색의 보석이 실을 품으며 몸을 숨기고 있다.
“아이고, 잘 띄워졌네. 이 실 좀 보소~”
주기화(80세)할머니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바실러스균이 잘 번식된 청국장에서는 실이 폴폴날리고 있다.
주머니에 넣어진 청국장은 곧장 할머니들의 발절구 리듬에 맞춰 곱게 빻아졌다.
“칙칙폭폭~칙칙폭폭~” 서로의 옆구리를 잡고 장난기가 발동한다.
“잘한다~”
리듬과 장단이 착착 맞는 게 한두 번 박자를 맞춰본 솜씨가 아니다.
저울로 정확히 재어진 용량의 청국장은 동글동글 손으로 빚어져 예쁜 모양의 청국장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국장은 곧 동네 어떤 가정의 저녁 식탁에서 바글거리며 끓고 있을 것이다.




이곳 노인정에는 어르신 모두 일을 한다. 누구하나 그 흔한 10원짜리 민화투를 치는 사람이 없다. 3년 전 입주가 시작된 LH아파트는 서민아파트다. 13, 16, 21평의 작은 아파트다보니 독거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가 대부분이다. 특히 다른 단지보다 노인의 비율이 높아 이곳 노인정의 회원만 127명이다.

“시에서 주는 예산에는 한계가 있어요. 처음에는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들끼리 밥을 해먹자는 취지에서 모였는데 일이 이렇게 커졌네요.”
이상규 노인회 수석부회장은 노인회의 일등공신이다. 그는 3년 전부터 노인들의 외로운 식사해결과 소일거리 창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노인회가 처음 결성되었을 때는 독거노인들끼리 모여 식사를 같이 하자는 취지였단다.

이상규 노인회 수석부회장


이곳에서는 하루 한 끼 같이 식사를 해결한다. 철저히 분업화된 노인회는 식사당번, 청소당번, 운영 간부, 메주 당번, 청국장 당번 등의 당번을 정한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는 같이 식사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자체적으로 소일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장을 담가 팔았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직접 다같이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팔자 인기가 대단했다. 직접 농사지은 콩을 옛방식인 짚으로 균을 만들어 할머니의 손맛으로 만드니 그 맛은 보증되었다. 주변 아파트 단지서 소진되어 농사지은 콩이 바닥이 났다. 파주 장단콩을 구입해서 현재는 주기적으로 청국장을 띄우고 있다.



방에는 메주가 띄워지고 있다. 내년 장을 담그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작년보다 올해 수익금이 더 쏠쏠했다고 귀띔을 준다. “이렇게 장도 담그고 생선도 말려서 팔구요. 직접 배를 가진 노인이 있어서 잡아온 생선으로 젓갈도 담가 팔아요. 올해는 서로 김장도 같이 해서 50가구가 나눠 먹었네요.”




공동으로 일하고 이익은 좋은 일에 쓰는 마을 공동체
이익금으로 매달 5-7명 회원들의 생일파티를 연다. 그때는 먹고 싶은 음식도 실컷 해먹고 외식도 한단다. 또한 남은 돈으로 작년 12월에는 아파트 독거노인과 장학생을 돕기도 했다. 노인정 발코니에는 단호박 고추장, 찹쌀 고추장, 청양고추 고추장, 일반고추 고추장 등 4가지의 고추장이 햇볕을 받으며 맛있게 발효되고 있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간이공간에는 배에서 잡아온 여러 가지 생선이 젓갈로 맛나게 발효되고 있었다. 가래떡을 뽑아 직접 썰어 떡을 팔아 이익금을 남기기도 하고 해산물을 말려 팔기도 한다.




채영희(83세)할머니는 “힘들어도 재밌어. 이렇게 땀 흘리면서 일하니 건강도 좋아지고 내 생일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외롭지 않고...말 벗 있으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다 좋아! 내가 왕년에 만들던 실력을 사람이 맛있다고 인정해주니 기분도 아주 좋아.”라고 말한다.
임경순(66세)할머니는 “혼자 밥 먹으면 얼마나 외로워? 같이 밥도 해먹고 같이 일거리를 만들어 같이 먹으니 늙어서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누?”라고 말했다.



이상규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마을공동체로 일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익이 창출되어 회원들에게 작은 돈이지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제 꿈입니다. 가마솥, 항아리 등 구입할 것이 많은데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사업이 전환되면 본격적으로 시설물을 구입해야죠.” 라고 말했다. 그는 위를 다 절제한 위암환자지만 노인들의 권익증진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다.

어느새 다 같이 준비한 점심식사가 준비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점심은 회원이 이렇게 모여 밥을 같이 먹으면서 식구가 된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못하는 일, 젊은이들에겐 귀찮은 일이 그들에게 기회가 되어 찾아오기 때문이다.
중산동 한 작은 노인정에는 젊은이들은 만들 수 없는 메주와 장을 띄우는 우리네 부모가 있다.

이현주 I-View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