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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인문학> 배다리마을 정자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0-28 18:03
조회
14

 


 



 


민 운 기 l 스페이스 빔 대표


 


 인천 동구 금창동 배다리마을에 가면 경인철로 변 주택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소 휑한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네모난 정자(亭子)가 한 쪽에 멀뚱히(?) 서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어디에서나 있음직한 평범한 시설물 같지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의미와 역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정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애초 이곳은 인근 주택가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곳이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야심차게 진행해오고 있던 인천경제자유구역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송도와 청라지구를 잇는 가장 빠른 직선 길을 내기 위한 계획을 세웠는데, 그 길이 배다리마을 중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공사를 본격화하면서 해당 부지에 포함된 주택들을 모두 철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해당 부지의 주민들은 일정 비용 보상을 받고 떠났지만 도로 부지에 인접한 주민들은 폭 50미터 8차선 산업도로로 인해 발생할 각종 소음과 매연, 분진 등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고, 큰 도로로 인해 오랫동안 오고가던 길이 끊기고 철로 변에 높게 설치한 육교를 힘겹게 이용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마을이 지닌 역사 문화적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시민문화단체 및 활동가 분들은 이 도로 공사가 어떤 파괴와 훼손을 가져올지 우려하였습니다.


 


 


 이에 2007년 초부터 이 공사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결국 지하화라는 성과를 끌어내었습니다. 그러나 공사는 인천시의 재정난으로 인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이 공간을 두고 관리주체인 인천시 동구와 저를 포함한 ‘배다리사람들’ 사이의 생각이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동구는 코스모스나 유채꽃밭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예쁜 모습을 보여주면서 쓰레기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민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배다리사람들은 생태계의 자연스런 복원을 기대함은 물론, 이곳을 마을 또는 주민 공동체를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는 다각적인 실험의 장소로 활용하며 갈라진 두 마을과 주민들을 새롭게 잇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코스모스 꽃밭에 재활용 창작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알록달록 바람개비를 꽂기도 하고, 이른 봄에는 우각로와 맞닿은 부지에 벼룩장터를 열기도 하는 등 조심조심 개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월대보름 달맞이잔치의 일환으로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행사 등을 이곳에서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6월부터는 구청장의 허락을 얻어 일부 부지를 텃밭으로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텃밭이 좋은 이유는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마을 주민 분들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음은 물론, 소일거리도 생기며 건강도 챙기고, 텃밭 작물을 키워 먹게 됨으로써 가게에도 보탬이 되고, 이웃에 나누어 줌으로써 오고가는 정도 싹트게 되지요. 또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게 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도시 속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마을 주민 분들이 이 텃밭에서 그 동안 감추어 놓았던 온갖 경험과 재주, 생활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텃밭이라는 무대 위의 멋진 주인공이 되고 있는 셈이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정자는 바로 이 텃밭을 가꾸게 되면서 배다리사람들이 바로 옆에 세운 것입니다. 주민 분들이 텃밭 일을 하다가 비나 햇빛을 피할 수도 있고(물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얼마 전 보강을 했지만), 누구나 이곳에 나오거나 지나가다 쉴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음료수나 막걸리를 한 잔 걸칠 수도 있답니다. 배다리사람들은 더 나아가 이곳을 활용하여 다양한 생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안적인 마을 또는 도시의 미래적인 가치를 경험 및 공유하는 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자를 둘러싸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노숙자가 생긴다고, 남녀가 보기 민망한 애정 행각을 벌인다고, 또 어떤 분은 한밤 중 이곳에서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옥상의 개가 짖으며 주민들 잠을 방해해서 민원을 받게 된다는 이유로 이동 또는 철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요긴하게 사용을 한 후 뒤처리를 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정자는 배다리 마을 구성원들 서로 간에 이해와 소통의 폭을 넓히는 가운데 구 행정의 단순한 ‘관리’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도로 부지에 대한 주민 및 배다리사람들의 권리를 되찾으며 주체로 나서게 됨은 물론 책임의식 또한 무한히 느끼고자 하는 문화적 ‘거점’ 내지는 ‘교두보’의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산업화의 상징인 도로와 차량 대신 생명과 생태 등 지속가능한 가치로 대체하려는 패러다임의 전환과도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정자를 주목해주시고, 앞으로도 이곳을 매개로 도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벌여나갈 계획이니 만큼 많은 관심과 성원, 활용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