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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인문학> 빵과 장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27 15:32
조회
222


 


 


빵과 장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어렸을 적에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번쯤 친구와 말다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괜한 장난말처럼 들리지만 이 문제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질문을 가지고 생명과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려고 했지요. 그리고 현대에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서도 이 질문을 던집니다.


서구식 사고방식은 이분법적 단순화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백과 흑, 정신과 몸, 우리와 남, 이렇게 세상 온갖 것을 두 부류로 가르려 시도할 뿐 아니라, 그 중 한편에 가치를 더 부여하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 정신, 우리를 흑, 몸, 남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서구식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우리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로는 세상을 살며 부딪치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이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은 직장을 잡은 다음에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취업과 인문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것이지요. 취업 경쟁으로 삭막해진 사회에서 인문학은 실용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취업만큼, 취업은 인문학만큼 중요합니다. 일할 권리와 노동의 대가가 삶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긍심은 고단한 삶에 힘과 위로가 됩니다. 1912 미국 여성 방직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빵과 장미를 함께 요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마을 공동체의 발전도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합니다. 마을 공동체는 주로 경제적인 필요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아, 교육, 의료 같은 공동 관심사나 난개발, 환경오염 같은 지역 현안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공동체를 튼튼하게 오랫동안 유지하는 힘은 문화적인 밑받침에서 나옵니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도울 뿐 아니라 자신과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고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마을 공동체들은 당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 사업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해 발전 방향을 제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 교실을 열고, 미술, 사진 등 예술 체험 활동이나 공연, 축제를 기획하기도 하지요. 구성원들이 좀 더 행복하고 풍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반갑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실패하거나 무산된 공동체 사업 소식들도 들립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변하거나 지속적인 연계 사업의 준비가 부족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 실패한 실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을 안에 또 다른 마을을 만들거나, 기획하는 사람들과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르는 실수를 피해야 할 것 입니다. 마을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대한 사업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공간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이니까요.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처럼 보입니다. 마치 작은 혁명처럼 말입니다. 거대한 태풍처럼 모든 것을 단숨에 뒤엎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혁명이지요. 마을 공동체도 결국 그런 변화를 가져오려고 시도합니다. 그런 시도들이 결실을 맺을 때 이웃끼리 빵과 장미를 나누는 마을들이 곳곳에서 아름다운 빛을 뽐낼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빵과 장미'는 1912년 1월부터 3월까지 미국 메샤추세츠 로런스에서 있었던 여성 방직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사용되었던 유명한 구호이다. 빵과 장미라는 간결한 이미지를 통해 정당한 임금과 함께 노동자의 자긍심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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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종 I 인하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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