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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인문학>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3-26 00:17
조회
238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김여현 I 장기동 사람들


 


 


얼마 전 전철 안에서의 일이다. 20대 여자승객 앞에서 자신이 85세라고 밝힌 한 할머니께서 “다리를 꼬고 앉지 말라, 허리가 꼬부라진다.”는 훈계의 말씀을 하고 계셨다. 난감한 듯 웃으며 다리를 푸는 20대 승객을 보면서 다른 승객들도 상황종료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의 상황은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야 말았다. 85세 할머니의 훈계는 자신이 20대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인생이야기부터 건강상태, 가족상황 등의 인생역정까지 큰소리로 이어졌고, 이후 3개의 정차역이 지나 할머니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로소 끝이 났기 때문이다. 여자승객은 주변을 의식하며 다음 역에서 부랴부랴 내렸으나, 거기가 목적지는 아닌 듯 보여 이 상황을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르신들과 젊은 사람과의 관계에 존재하는 불편함을 경험하곤 한다. 고대 벽화에까지 ‘요즘 젊은것들은’이라는 말이 써 있을 정도라니 세대 간의 불편한 갈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해 온 것으로 보인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인생을 경험한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돌출적인 행동들이 가져올 불행한 결과가 걱정스런 마음에 조언을 해 준다는 것이, 때로는 논리를 잃고 고집만 남은 뒷모습으로 기억되고 마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과거의 지혜로운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분들이다. 젊은이들과 긍정적으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에너지로, 또한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함께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텐데, 가부장적 통제를 몸에 익혀온 어르신들에게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행동과 표현은 ‘버릇없음’이라는 마음의 벽을 만들어버리는가 보다. 서로에 대한 조금의 이해만 곁들여져도 함께 사는 모습이 더 즐거워질 텐데...



초등학교-교장선생님.jpg


▲(사진) 좌측이 저자, 오른쪽이 계양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김여현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아침 일찍부터 학교 정문에서 등교지도를 하시는 걸로 유명하다. 단순한 등교지도가 아니고, 멀리서 장난치는 아이가 보이면 그 아이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한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아이가 교문을 지나면서 교장선생님께 뛰어와 한번 꼬옥 끌어안고 들어가는 모습은 더욱 놀랍다. 중간놀이 시간(30분)이 제일 좋다며 아침마다 웃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학원 하나 더 보내는 것이 교육이 아님을 깨닫곤 한다.


한여름에는 교장실보다 학교 도서관 옆 텃밭에서 선생님을 더 자주 뵙게 되는데, 주로 허름한 작업복에 땀범벅인 얼굴을 하고 풀을 뽑고 계신다. 처음 본 사람들은 경비아저씨로 착각하기 일쑤다. 아이들은 서슴없이 교장선생님께 달려가고, 선생님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입에 넣어주신다. 학창시절, 뒷짐을 진채 학교복도를 오가던 교장선생님께 눈도 마주치지 않는 형식적 인사로 일관했던 내게 다음세대를 대하는 이 어른의 방식은,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일까지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신다. “나를 보고 배우라”는 훈계의 말을 건네기보다,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넉넉한 어른의 모습은 다음세대의 자유로움에 지혜로움을 더해줄 수 있다. 뵐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분에게 오늘도 한수 배우게 된다.


 


마을 속 다양한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의 고향을 넘겨줄 것인가’라는 숙제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 어른으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고향의 골목과 냄새들이 자본주의적 획일화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고, 훗날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는 인간적 개발을 고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을행사에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함께 고민하도록 늘 의견을 묻는다. 마을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될 것이고, 시대적 자격을 먼저 가지고 태어난 우리 어른들이 미래에 이곳에 살게 될 아이들과 동등한 자세로 마을을 고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책임이다.


옛 여인숙의 모습을 잊으려는 듯 화사하게 리모델링 중인 씨앗가게 앞에서, 다방마크가 아직 창문에 남아있는 2층 다방건물을 지나며, 동네초입을 지키는 은행나무, 방앗간이 되어버린 옛 면사무소와 보건소 건물, 독서하는 소녀상이 있는 학교 교정, ‘음메~’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옛 장터의 흔적들. 그리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초록의 논밭들.... 한나절 걷기만 해도 마을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흥미롭다. 70~80년대 마을의 역사가 현재에 공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이 지혜롭게 마을의 아름다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하루하루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 아이들 삶의 전반에 지혜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어른으로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것이 더욱 권위를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 오늘의 배움이 실천을 통해 다음세대에게 지혜로 전해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열심히 흉내 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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