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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시대 어린 여공들 이야기 ‘소녀, 공순이 되다’

신문New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2-26 10:51
조회
304

http://www.bp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6755

 

 

산업화시대 어린 여공들 이야기 ‘소녀, 공순이 되다’부평역사박물관 특별기획전 진행 중

김영숙 기자  |  [email protected]
 
 
▲ <사진제공·부평역사박물관>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전시장에 들어가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부른 노래 ‘사계’가 들린다. 작은 소리였지만 전시된 물품과 어우러져 가사가 선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부평구 삼산2동에 위치한 부평역사박물관에서는 작년 10월 25일부터 올해 3월 2일까지 ‘소녀, 공순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산업화 정책은 섬유ㆍ의류봉제공업 등을 중심으로 경공업 위주로 실시됐다. 부평지역에는 1966년 인천수출공업단지(수출4단지, 현 부평공단)가 조성돼 많은 수출기업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공장에는 농촌이나 도시빈민층 출신의 어린 소녀들이 입사했는데, 이들이 이른바 ‘여공’으로 불린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기차라는 건 처음 타봤어요. 다음 역이 부평역이래요. 처음에는 도시로 간다고 해서 엄청 좋아했는데, 아직 모든 것들이 낯설어 조금 무섭기도 해요. 나, 잘 지낼 수 있겠죠?’ 전시장 초입에 쓰여 있는 글귀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박순덕’은 어린 나이에 부평으로 와 봉제공장에 취직, 하루 16시간 야간ㆍ철야 근무가 힘들기는 했지만 야학에서 공부하며 검정고시로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에 갔다. 배가 고파도, 잠이 부족해도 학교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찼다.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야학에서 배운 ‘인권교육’이 떠올라 동료들과 파업을 벌이기도 하고 소모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결혼과 동시에 퇴직한 박순덕은 아이들을 모두 키워 결혼을 시켰고, 지금은 태어날 손자를 위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전시회는 부평에 살고 있는 실제 주인공을 모델로, 그의 진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전시회 기획자인 김정훈 학예사는 기획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 김정훈 학예사.

“부평은 회색도시죠. 일제강점기부터 근ㆍ현대까지 공단을 중심으로 산업도시가 형성되고 삶의 터전이 만들어졌죠. 경제개발로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하는 데 큰 역할 담당했지만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무거운 현실이 있어요. 2011년 부평역사박물관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아버지의 월급봉투’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의 힘든 삶과 월급이 가정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번 전시회처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조명해 봤죠. 이번 전시는 그것의 연장선이고요”

‘아버지의 월급봉투’가 중공업 중심의 남성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전시는 경공업에 종사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어떤 분의 추천으로 갈산동에 계시는 분을 만났어요. 1970년대에 부평공단에 다녔던 분인데 전시회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야학ㆍ소모임ㆍ노조활동 등을 했죠. 그 분 얘기가 영화 같더라고요. 굴곡 있는 삶을 사셨는데 아직도 그 시절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계세요”

신문 기사와 영상 등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하더라도 ‘노동자’나 ‘파업’ 등의 단어가 등장한 전시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갈등은 없었지만 단어 선택에 조심하기는 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시찰 부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거나 노사갈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으니까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했지요”

일부의 우려 섞인 시선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준비하면서 심리적 위축도 있었다.

“팩트(fact=사실)는 어린 여성노동자가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의 정체성을 찾고 교육을 통해서 각성하는 거죠. 나중에는 결혼해 한 가정을 꾸린 여성으로, 아내와 엄마로서 살아온 삶을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보람을 느낀 일도 있었다. 박물관 근처에 사는 주민이 친정엄마, 언니와 박물관에 들렀는데 엄마와 언니의 촉촉해진 눈시울을 엿봤다고 한다. 박순덕과 같은 삶을 산 언니의 희생에 본인이 편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그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다시 느꼈다는 내용의 글이 지역의 어느 매체에 실렸다.

“인력 부족으로 대대적 홍보는 못하지만 이렇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시고 감동을 받는 것을 보면 저도 감동입니다”

부평역사박물관은 올 상반기에는 개관 7주년을 기념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부평이야기를 펼칠 계획이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놀이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맞춤형으로 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 남구와 중구에서 성장한 김정훈 학예사는 부평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부평역사박물관은 단순히 부평이란 공간에 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부평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의 삶을 녹여서 보여줄 수 있어야죠. 고향은 아니지만 그러려면 부평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전시가 끝나려면 아직 보름이나 남았다. 이야기가 있는 전시회에서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봐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