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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는 왜 ‘이상한 동화나라의 토끼’가 되었나?

신문New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31 10:43
조회
252
  • [기고] 나는 왜 ‘이상한 동화나라의 토끼’가 되었나?
  • 송월동 동화마을 축제에서 ‘송월동’을 찾았던 1인 문화행동 이야기
  • 14-03-31 01:47ㅣ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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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축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축제 이전에, 하나의 마을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되고 분노가 치밀었다.
     
    울긋불긋 차이나타운의 짝퉁 시설물들, 옛 일본 조계지 내 건물 외벽의 나무껍데기 덧씌우기 공사, 전국에 있는 전통 공원 양식을 모아 짜깁기 한 월미공원조성사업, 난데없는 각국거리와 러시아거리 조성 사업 등도 모자라 낙후된 지역을 살려보겠다며 한 마을을 동화 속 이미지들로 덮어버렸다. 당연히 이 마을이 간직하고 있을 나름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 주민들 삶의 이야기와 모습들은 이 화려한 치장물 속에 가려져 버렸다.
     
    이 사업에 대하여 지역사회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었고, 해당 마을 주민들 내에서도 적잖은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는 이유로, 마을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로 모두 무시되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마련한 것이 이번 축제였다. 이러한 성격과 방식의 사업을 당연시하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계속 확대 재생산해나가고자 하는 취지의 하나라고 보아진다. 나에게는 이러한 축제가 더 이상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언가 어떤 형태로든 예쁘장한 동화의 이미지로 포장된 천박한 관광사업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축제 때 가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입장을 드러내보자. 다만 손팻말 등 단순하게 정면으로 반대의 의견을 표명하기보다는 ‘동화’ ‘축제’이니 만큼 나도 동화 속 이미지를 빌어 축제에 같이 참여하는 척하며 무언가 다른 시선도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적절할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고 실험해 본 끝에 나온 것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이상한 동화나라의 토끼’라는 패러디 복면이었다. 핑크색 땡땡이 문양의 비닐 쇼핑백을 활용하여 토끼 얼굴을 만들고, 한 쪽 눈 위치에는 검정색 테이프로 X표시를, 또 다른 눈 위치에는 큰 구멍을 뻥 뚫어 시야를 확보함은 물론 속살(?)이 보이게끔 하여 이번 축제의 허구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어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어깨띠를 만들어 "'송월동'을 찾습니다"라는 문구를 쓴 후 두르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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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 개막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지만 약간 꾸물거리는 정도였다. 일단 한 바퀴 둘러보며 분위기를 익혔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인파들이 몰린 가운데 이런 저런 용도의 하얀색 캐노피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동화 패션의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동화 속 주인공 캐릭터 인형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동화 관련 상품을 파는 마켓과 먹을거리 가게도 열렸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페인팅, 스탬프 찍기 등의 체험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었고, 급조한 듯한 무대에서는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니 송월동 동화마을 축제에 ‘송월동’만 없는 줄 알았더니 ‘동화’도 없었다. 동화 속 파편화된 이미지들만 빼곡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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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준비해 온 토끼 복면을 뒤집어쓰고 어깨띠를 둘렀다. 비가 올지 몰라 준비해 온 투명 비닐우산은 또 하나의 그럴듯한 소품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 속에서 한 동안 멈춰있거나 행사장 끝과 끝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못 알아보지만, 나는 봉지 속에서 모두를 볼 수 있도록 만든 복면은 익명성을 작동시켜 뭔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1인칭 관찰자 입장에서 오는 묘한 감정을 자아내었다.
     
    나는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했다. 뭔가 특이하긴 했나 보다. 다가오거나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눈길을 주었고, 나의 등 뒤에서 온 사람들도 지나가며 한 번 씩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태어나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궁금했는데,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이겠지만 막간의 눈빛들 속에서 이 축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나름 흥미 있게 표현했구나 하는 반응으로 보였다. 하긴 축제가 열리는 송월동에서 왜 ‘송월동’을 찾을까? 이 정도면 원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했다. 주최 측이 마련한 축제를 그저 보고 즐기러 왔을 뿐인 이들의 시선과 기억 속에 잠깐이지만 그 강도는 좀 쌘, 무언가 멈칫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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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축제 개막식과 더불어 <송월동 동화마을 저층주거지 관리사업 기공식>을 하는가보다. 아니 원도심 활성화의 일환으로 마을의 정체성을 살리고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에 ‘기공식’이라니! 아무튼 겸사겸사 인천시장과 이곳이 지역구인 국회의원, 중구청장, 군ㆍ구 의원들, 6.4지방선거 출마자들, 그리고 관계 공무원들이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총출동하였다. 잘 되었다 싶어 이분들이 서 있는 곳 앞에서 얼쩡거리기도 하고, 지나가게 될 동선에 서서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모두 다른 형태의 마주함으로 나타났다.
     
    인천시장을 맞이하러 미리 와 있던 중구청장은 보고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며 수행원들과 함께 나타난 인천시장은 축제 관계자 및 방문객들과 악수를 하며 다가오다가 내 앞에 이르러 다른 쪽을 바라보며 지나쳤다.(이곳에서 만난 한 시의원을 통해서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왜 저러냐고 물어보아서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단다) 국회의원은 행사장에서 축사까지 하고 나오다 나를 보더니 싫지 않은 듯(?) 악수를 청했다.(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외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들 중 적지 않은 분들과도 어색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한 후보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슬쩍 치켜 세워주었다.
     
    오늘의 행동이 내가 기대한 수준 이상으로 성공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장면은 사실 이 분들보다도 이분들이 지나가기 전과 후였다. 구청 직원이라는 사람이 와서 저쪽으로 피해줄 수 없냐며 두 번씩이나 나를 저분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하려 하였다. “내가 행사나 방문객들의 이동에 피해를 주는 게 있느냐?” “이 정도의 표현의 자유도 없느냐?” 하며 따지니 당혹스러운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갔다. 아무튼 내가 그들의 눈에 적잖이 신경 쓰이게 보였나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본의 아니게 방해물(?)이 된 적이 있었다. 투어 스탬프 찍는 프로그램 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주인공이 그려진 곳이 있었나보다. 어린 친구 둘이 나를 보고 동화 속 토끼로 생각하여 왔다가 아닌 걸 알고 다른 곳으로 부랴부랴 뛰어 갔다.
     
    그 외 모 유선방송사와 신문사 기자의 인터뷰를 받았고, 지나가다 궁금했던지 몇몇 분들이 왜 이렇게 하냐는 질문에 답변을 드리니 공감한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분과는 한 차례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하였다. 거기에다가 이곳 주민이라고 하는 한 아주머니께서 자신이 못하는 말을 대신해준다는 듯 반가운 인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또 한 어르신과도 만나 주민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업 및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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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는 두어 시간 동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마치고 복면을 벗었다. 돌이켜보니 관주도 행사로 모든 것이 사전 계획에 의해 마련된 축제에 그 의도를 떠나 자발적인 참여를 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얼굴을 드러내 놓고 이 축제의 바깥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일단 눈에 들어온 장면이 한 주택 앞 계단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는데, 아무도 이분에게는 시선이나 관심을 주지 않고, 벽에 그려진 만화 속 여주인공 이미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행사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는 상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몇몇 할머니들이 주행사장 거리를 비켜선 골목길 초입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역시나 축제와는 관련이 없는 존재로 비켜나 있었다.
     
    그 다음엔 축제의 주 행사장을 조금 벗어나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을 지나 언덕 쪽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에서 다시 한 번 이 행사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상황을 목도하였다. 그곳에는 송월동 주민자치위원회 이름을 내건 먹을거리 장터가 있었는데, ‘위원’의 명찰을 건 한 아저씨가 술을 마셨는지 취해 소리를 지르며 동화마을 공사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둘째 치고 이 행사를 준비하고 관계된 사람들이 축제의 공식 행사장에 나가 있는 것이 아닌, 뒤로 물러나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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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의 송월동 주택의 지붕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으로 가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여느 마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꾸밈없는 송월동 마을의 민낯이 아니던가. ‘원도심 활성화’란 이를 꼼꼼히 잘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저기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알록달록 색깔과 잘 보이지 않는 그림들이 중간 중간 드러나고 떠들썩한 음악이 들려온다. 그야말로 동화 껍데기 이미지를 만들어 붙여놓고 좋다며 즐기는구나. 그야말로 이 유아적인 사고의 수준을 어이할까나.
     
    자유공원 쪽으로 올라와 돌아오는 길, 어떻게 하면 이 축제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지 또 다른 고민과 과제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길가의 시멘트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 살짝 뻗은 메마른 담쟁이 넝쿨 가지들의 자연스런 모습이 새삼스레 눈길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