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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와 배다리의 문학적 '고리찾기'

신문New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4-15 09:05
조회
267
  • 박경리와 배다리의 문학적 '고리찾기'
  • 동구 추진 ‘북카페’는 격에 맞지 않아
  • 12-11-21 02:14ㅣ 이장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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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이장열 기자

    인천 동구는 2013년도 예산안에 “박경리 북카페” 사업비 3억을 올렸다. 동구 전략기획팀 노영철 팀장은 “3억 예산안이 2013년도 예산안에 편성되면,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박경리문학공원’과 협의해서 명칭을 공식 확정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노영철 팀장은 “배다리에는 빈집이 많다. 빈집을 활용할 방안으로 북카페를 모색중에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배다리에 2년 정도 살았다는 사실을 2011년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가 새롭게 발견해 알려져, 박경리 선생을 테마로 삼는다면 홍보 효과도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박경리 북카페’ 사업은 박경리가 인천 금곡동 헌책방 운영한 사실과 박경리 따님의 구술(미음(ㅁ)자 한옥이라는 메시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술적 고증과 검증이 없다.
     
    ‘박경리’ 이름에 ‘북카페’를 붙이는 방식도 적절한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박경리 이름자에는 문학사적 의미가 포함된 용어들이 붙는 것이 마땅한 근대문학작가에 대한 대접이라는 것이다. 행정단위에서 단순히 홍보 측면에서, 빈집 활용과 맞물려 급조해서 소설가 박경리 이름을 따 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동구의 ‘박경리 북카페’ 추진에는 문학인의 이름이 어떤 장소나 건물에 함께 붙일 때 반드시 필요한 수고스럽고 힘든 고증 작업과 지역문학사적 의미 재구축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경남 하동에 있는 <토지문학관>은 박경리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문학관이 세워진 데에는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 공간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박경리 문학관>으로 명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은 문학인으로서 박경리가 말년을 보낸 장소이기에 그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2011년 8월 26일자 <인천in>에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가 ‘고 박경리 선생 배다리 헌책방 운영했다”는 글을 기고하면서부터 인천 지역사회에 박경리와 인천사이에 인연이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배다리를 중심으로 박경리와 인천의 고리 찾기는 시작됐다.
     
    곽현숙 대표가 박경리는 1948년 남편 김행도가 주안염전으로 부임하면서 인천으로 이사와 살았다는 기록은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약력에서 1948년 인천 금곡동에 살았다는 기록을 발견하면서부터 출발했다. 
     
    특히, 박경리가 1948년 금곡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곽현숙 대표가 박경리의 따님 김영주씨로부터 구술로서 전해 듣고, 박경리와 인천의 인연을 구체적으로 찾는 작은 노력들이 이어졌다.  
     
    인천과 박경리를 이어지는 고리는 1948년 인천 동구 금곡동 59번지라는 주소지이다. 박경리의 제적등본과 그의 따님의 재적등본에서 금곡동 59번지 주소지가 확인되었을 것이다. 당시 금곡동 59번지는 현재 지번이 61번지 일대로 변경됐다고 한다. 당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특히, 헌책방을 운영했다는 주소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동구가 이른바 '박경리 북카페'로 활용할 한옥 전경
    현재 동구가 북카페로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미음(ㅁ)자 한옥은 박경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장소임은 확인이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도 짚어야 한다. 박경리의 문단 데뷔 년도는 1956년이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시기도 짚어야 할 사항이다. 서울 구로구에서는 박경리가 살았던 집을 보존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박경리는 문학인이기에 문학사에 기록되고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생활인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에 소설가로서 박경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문학 데뷔시기도 인천과 연결고리로 삼을 때 검토해야 할 사항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현재 동구가 추진하는 ‘박경리 북카페’와 관련해서 우선 인천 지역사회는 박경리와 인천의 고리를 찾는 노력들이 수행되어야 하고, 인천지역 문학사 차원에서 시기문제와 연결해서 접근하는 문학적 시력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북카페와 박경리는 분리해서 배다리의 역사성을 구축하는 사업들로 확장해 나가는 동구의 노력들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