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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아닌 공동체마을을 찾아서] 담장 허문자리에 관계를 심은 대구 삼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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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16 10:12
조회
335
담장 허문자리에 관계를 심은 대구시 삼덕동아파트뉴타운 아닌 공동체마을을 찾아서 <2>
김갑봉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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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승인 2009.03.07  15: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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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는 개발을 둘러싼 자본의 야욕이 불러온 비극이다. 인천에서도 200군데가 넘는 곳이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 등 도시개발 사업지구로 예정돼있다. 하나 같이 고층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사업이다. 계양산에 올라 부평을 내려다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단지다.

무릇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계획상 펼쳐지고 있는 이른바 ‘뉴타운’식 마을 만들기 사업들은 하나 같이 ‘아파트’라고 하는 하드웨어를 좀 더 입지 좋은 곳에 좀 더 비싼 가격으로 심어놓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뉴타운 만들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세상에는 이러한 뉴타운과는 거리가 먼 마을 만들기를 펼치는 이들이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마을과 대구 중구 ‘삼덕동’마을은 하드웨어를 심는 것이 아닌, ‘마을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담장을 허물고,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등 자신들의 터전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삼덕동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조성된 마을 담벼락 벽화.

담장 허물기부터 재개발 홍역까지 ‘고스란히’

주택가에 부족한 주차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혹은 좀 더 이웃과 살갑게 지내기 위해서 담장 허물기 사업은 지금도 곳곳에서 계획되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곳이 대구시 중구 삼덕동이다.

담장 허물기에서 시작된 삼덕동의 마을 만들기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담장이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을 허물기만 했을 뿐인데 담장이 헐린 공간으로 마을 사람들 간 소통이 싹트기 시작했고, 개인별로 단절돼있던 동네에 하나의 ‘커뮤니티(공동체)’가 싹텄다.

국내에서 보수층이 결집해 있는 도시로는 대표적이라는 ‘대구’, 그 중심가에서 사람들이 중심된 마을 공동체는 어떻게 싹을 틔웠을까?

  
▲ 김경민 대구 YMCA 사무총장이 삼덕동의 마을 만들기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곳으로 이사와 첫아이와 둘째아이를 낳은 김경민 대구 YMCA 사무총장은 삼덕동 마을 만들기의 산증인이다. 김 사무총장 본래 대구사람은 아니지만 96년에 이사와 98년에 담장을 허물기 시작했다. 삼덕동의 담장 허물기 1호집이 바로 그가 살던 집이었다.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에도 다른 도시에 비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근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대구 토박이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마을 안에는 사람들끼리 공동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그가 담장을 허문 것은 말처럼 그런 마을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삼덕동에 담장 허물기를 통해 담장이 없어진 집은 20여군데에 불과하다. 때문에 담장 허물기로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병원이나 학교, 공원 등 대형 건물과 시설에 담장이 없어 전체적으로 담장이 없는 마을임을 느끼게 해준다. 담장을 허문 곳 중 대표적인 곳이 경북대의대병원과 치대병원, 삼덕동주민자치센터와 초등학교, 그리고 집 몇 채 등이다.

담장 허물기가 삼덕동 마을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불리는 것은 맞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다. 담장 허물기에 동참한 삼덕동 주민들은 담장 허물기 외에도 자신들의 마을이 보다 살고 싶은 곳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있으면 삼덕동의 사랑방인 ‘삼덕동마을만들기센터’에 모여 주민회의를 열었다.

김 사무총장이 살던 담장 허물기 1호집이 현재 ‘삼덕동마을만들기센터’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마을만들기센터’라는 이름과 사무실이 있다고 해서 무슨 센터장이 있거나 직책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아니다. 담장 허물기를 통해 가까워진 마을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르는 사랑방이자 마을에 무슨 일 있을 때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이는 소통의 공간이다.

  
▲ 삼덕동 주민들이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도서관 내부.

그렇게 공동체 관계를 형성한 삼덕동 마을사람들은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일본식 다다미 건축물을 개조해 동네 갤러리도 열었다. 삼덕동의 벽화는 통영시 동피랑의 벽화만큼이나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진행됐다.

이와 관련해 김 사무총장은 “그림을 그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생활폐기물을 재활용한 것들로 만들었어요. 일례로 마을만들기센터 벽화에는 병뚜껑 8000여개가 들어갔는데, 그 작업을 할 때는 동네 길바닥에서 병뚜껑을 찾아볼 수가 없었죠.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병뚜껑을 일일이 주워와 디자인해서 벽화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이밖에도 삼덕동 주민들은 버스를 개조해 이동도서관을 만들었으며, 재활용품 활용을 위한 녹색가게를 열었고, 자전거를 테마로 한 사회적기업인 ‘자전거희망제작소’를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인접한 대구시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 ‘차 없는 거리’와 ‘자전거테마거리’를 낳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공동체 사업을 통해 형성된 관계는 1년에 두 번(5ㆍ10월) 열리는 삼덕동 골목길 ‘인형마임축제’로 한층 두터운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 삼덕동 주민들이 재활용품 활용을 위해 만든 녹색가게.

삼덕동 마을 만들기는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

순항하던 삼덕동 마을 만들기도 2006년 삼덕동이 재개발예정구역으로 고시되면서 홍역을 앓는다. 10년 남짓한 마을 만들기의 성과가 단 한 번의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당시 마을주민은 찬성과 반대, 그리고 방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이에 대해 김경민 사무총장은 “이듬해 우리가 국토해양부의 살고 싶은 마을만들기 사업에 공모한다고 했을 때 찬성 측에서 ‘재개발 사업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고 거칠게 항의하는 등 난리가 났었다”며 “최근 대구의 미분양 아파트가 2만 5000세대로 집계되고 비공시적으로 4만 세대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재개발 추진은 잠잠해졌다”고 말했다.

  
▲ 삼덕동 주민들은 자전거를 테마로 한 사회적기업인‘자전거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이는 삼덕동과 인접한 대구시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 자전거테마거리를 낳았다. 사진은 커뮤니티를 테마로 디자인한 자전거거치대.

물론 삼덕동에서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아파트 아닌 공동체를 심으려 한 그들의 노력이 맺은 결과이기도 하다. 김 사무총장과 주민들은 교수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삼덕동마을 만들기’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호소해가며 마을을 지켜가려 했다.

재개발 사업이 잠잠해지면서 ‘삼덕동마을 만들기’는 더 많은 삼덕동 주민들을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주민 스스로가 나서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높은 건물이 없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삼덕동은 100여년 된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삼덕동 중 삼덕1가는 동성로에 해당하는데,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달성 서씨 집안의 건물이 100년이 흘렀어도 그대로 남아있다.

삼덕동과 동성로 일대는 골목과 골목길로 이어진 특징을 가진 곳으로, 골목길 저마다 사연과 현대판 특색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골목은 노점상거리, 어느 골목길은 늑대골목(남성들이 주로 찾는 로드매장)과 야시골목(여우의 이곳 사투리로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골목), 통신골목, 떡볶이골목 등 골목길 이름만 해도 열 너 댓개 된다. 골목길마다 이야기가 있는 셈이고 그 골목길을 따라 사람들은 흐른다.

김 사무총장은 “대구는 정말 골목길이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앞으로 어찌 변할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만 골목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 골목과 골목길로 이어진 특징을 가진 삼덕동과 동성로 일대.골목길 저마다 사연과 현대판 특색을 가지고 있다.

삼덕동 마을 만들기의 핵심은 ‘동피랑’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구성에 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도시계획이 주로 물리적인 공간계획이라면 마을 사람들의 도시계획은 ‘공동체 디자인’인 것.
이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마을 만들기는 그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진행해야 지속가능하다. 활동가 몇 명이 마을에 들어가 하는 것은 오래 못 간다. 정작 중요한 회의 때 마을 주민들은 활동가를 배제한 채 결정한다”며 활동가 중심의 마을 만들기를 경계했다.

충남 홍성의 생태마을 문당리는 지난 2000년 시작과 더불어 마을주민들이 ‘문당리 100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마을 만들기의 힘은 이처럼 당사자인 마을주민들로부터 나오게 돼있다. 그리고 마을주민들의 힘은 동피랑과 삼덕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마을에서 마을주민들의 관계, 공동체 형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견학을 준비했던 임종우 부평의제21 문화복지분과위원장은 “커뮤니티의 모습과 마을 만들기의 구체적 사례를 보기 위해 일부러 부평미술인회 회원들과 같이 갔는데 많이 배워 온 것 같다”며 “부평에서도 신촌(부평3동)의 문화마을 만들기, 문화의거리의 시장 활성화와 자전거도시를 테마로 한 마을 만들기가 있는데, 마을 만들기가 부평 곳곳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평의제21과 부평미술인회는 지난 2월 14일 ‘마을 만들기’ 선진지 답사 차원에서 1박2일 동안 통영시와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견학을 준비한 부평의제21과 부평구미술인회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취재에 협조해주신 통영시 동피랑 마을주민들과 대구 삼덕동 마을주민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