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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마을만들기] 원폭 피해로 차별받던 마을이 건강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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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16 10:39
조회
331
“원폭 피해로 차별받던 마을이 건강한 마을로”[기획취재] 협동과 공동체로 건강한 마을 만들기
7. 일본 히로시마중앙보건생활협동조합
장호영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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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승인 2011.12.07  10: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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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돔의 현재 모습.
히로시마시는 일본 혼슈(本州) 남서부에 있는 히로시마현(廣島縣)의 수도로 현의 남서쪽에 있는 시다. 히로시마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하 원폭)을 투하한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오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 35명이 탄 폭격기 3대 중 1대가 현재 히로시마돔이라고 불리는 곳에 원폭을 투하했다.

미국은 당시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44곳에서 투하 연습을 실시하고, 교토ㆍ히로시마ㆍ후쿠오카ㆍ나가사키 등 4곳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중 인구 20만~30만명이 살고 있고 가장 날씨가 좋은 곳으로 결국 히로시마가 선정된 것이다.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투하됐다.

당시 히로시마상업장려관으로 사용됐던 현재의 히로시마돔에 떨어진 원폭은 온도 1만 5000도를 내서 동그란 지붕과 벽돌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당시 건물에 근무하던 직원 200명 가운데 80명이 즉사했으며, 원폭이 떨어진 곳에서 반경 2㎞ 이내 사람은 모두 즉사했다. 현재 히로시마돔의 형체가 남아있는 것만도 기적이라고 한다.

원폭 이후 히로시마시는 히로시마돔을 보전했다.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보전키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기금 1억엔을 모았다. 이 기금으로 히로시마돔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돔 주변에 평화공원을 만들었다. 핵무기와 전쟁을 없애자는 평화운동의 상징물로 만든 것이다.

평화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을 가보면 원폭 당시의 끔찍한 피해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당시 원폭으로 히로시마시 인구의 10%가 즉사했으며, 80%가 부상을 입었고 10%는 겉으로 보기엔 부상이 없었지만 내부 피해를 입었다. 원폭 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대부분 평화공원에 안치됐으며, 총27만명에 달한다.

이름 없는 사망자가 8만명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모임’의 다카스키 아키라씨는 말했다. 아키라씨는 히로시마중앙보건생활협동조합(이하 히로시마보건생협)에서 감사를 맡고 있다.

원폭피해 주민위한 진료소서 출발

  
▲ 히로시마보건생협이 후쿠시마의료생협 시절 히로시마시 서구에 세웠던 후쿠시마생협병원의 외부 모습.
히로시마보건생협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히로시마시의 원폭 상황과 피해를 되짚어본 것은, 당시 피해를 당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진료를 위해 진료소를 세웠는데, 거기서 히로시마보건생협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원폭 피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10년 뒤에 ‘내부피박’이라는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은 누구에게나 기피지역이라 의사도 진료소도 없었다. 의사가 필요한 내부피박 피해 주민들이 돈을 모아 히로시마시 서구에 진료소를 세우고 의사를 초빙했다.

어느 의사도 들어오길 원치 않던 지역에 자기희생정신으로 초대 원장을 맡은 사람은 외과의사인 나카모토 야스오(85)씨다. 지금도 히로시마보건생협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렇게 진료소를 만든 주민들은 1955년 후쿠시마의료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고 병원 이름도 후쿠시마의료생협병원으로 정했다. 야스오 원장은 초대부터 2대까지 원장을 지낸다. 후쿠시마의료생협병원은 출발 당시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병원이었기 때문에, 원폭 피해에 대한 의료 연구를 많이 했다.

특히 원폭 피해자들에게 많이 발생한 병은 ‘부라부라’이라는 병이었다. 이 병은 머리와 몸이 흔들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병으로, 무기력증이 심해진다. 이 병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도 있었다. 원폭 피해자들에게 국가에서 원폭수첩을 지급했는데, 원폭수첩을 가졌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결혼을 못하거나 고령자 연금을 못 받는 등 차별이 심했다.

이에 야스오 원장은 이 차별을 없애기 위해 히로시마 시의원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야스오 원장은 시의원을 모두 일곱 번 역임하며 원폭 피해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앞장섰다. 현재는 사망한 사람에게만 원폭수첩을 주고 있다.

조합원 3만 6천세대로 확대ㆍ발전

후쿠시마의료생협은 1978년 5월 총회를 열어 히로시마보건생협으로 이름을 바꾼다. 57년의 역사를 가진 히로시마보건생협은 현재 병원 2개와 방문요양기관 3개, 거택요양지원사업소 1개, 포괄지원센터 1개를 보유하고 있다. 사업 분포도를 보면 의료 85%, 요양 13%, 기타 2%로 돼있다.

지역적으로는 히로시마시의 서구ㆍ사이키구(이츠카이치)ㆍ나까구ㆍ히가시구ㆍ미나미구ㆍ아끼구ㆍ하츠카이치시를 담당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총3만 6000세대 정도다. 총출자금은 55억엔이며, 연 매출액은 50억엔 정도다.

히로시마보건생협에서 운영하는 2개의 병원 중 사이키병원을 찾아갔다. 2006년 히로시마사이키구에 이 병원이 설립될 당시엔 인근 조합원이 아주 적었다. 하지만 지역민에게 적절한 의료활동을 펼쳐 이후 조합원 3000명이 늘었다. 165명이 입원 가능하고 진료실ㆍ치과ㆍ주사실ㆍ물리치료실ㆍ방사선실ㆍ요양서비스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사이키병원을 방문했을 때 히로시마보건생협 지역 지부장 회의에서 만난 모리사키 야에코(75)씨는 30년 동안 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마다 지부가 있고 지부 아래에 모임이 있다. 조합원들이 건강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인다. 지부는 지부위원회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의료부문서 국가보다 앞선 역할

  
▲ 히로시마보건생협이 2006년 히로시마시 사이키구에 세운 사이키병원의 내부 모습. 간호사가 한 조합원을 진료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부를 넘나들며 취미ㆍ요리ㆍ손뜨개ㆍ종이접기 등의 동아리활동을 공민관(한국의 주민자치센터와 비슷한 곳)이나 생협병원의 조합원 공간에서 진행한다.

야에코씨는 “조합원 추천으로 가입하게 됐는데, 병을 고치면서 생활과 건강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어 좋았다”며 “내 나이 정도면 뇌졸중에 걸릴 수도 있지만, 조합 활동을 하며 약을 복용하지 않고 생활방식을 바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지부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에게도 계속 이런 부분들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보건생협은 조합원들에게 ‘7가지의 건강습관’을 갖도록 홍보물과 교육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보건 예방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이를 전파하고 있다.

오오노 마사키 상무이사는 “원폭 피해가 심각했던 지역에 의료생협이 생겼고, 피해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도 계속 진행해왔다”며 “옛날에는 이 지역이 차별받는 빈민촌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지역으로 변했다. 오히려 조합원과 지역주민들이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생협은 조합원들의 요구로 국가가 의료보험을 적용하기 전부터 이미 방문 간호와 방문 진료를 해오는 등 의료 관련해서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의료생협이 미리 진행했던 것을 국가가 따라오는 형식이었다”며 “의료생협이 뭉친다면 의료보험제도 등 국가의 정책을 바꾸거나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