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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을공동체, ‘사람’에게 달렸다 (시사인천)

신문New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2-20 18:05
조회
457
행복한 마을공동체, ‘사람’에게 달렸다[2013년 인천사람들] 손보경 동구 골목도서관 관장
이승희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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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승인 2013.12.31  16: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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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역사를 등지고 바로 왼쪽에 중앙시장이, 그리고 중앙시장 북쪽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송현시장이 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전통시장이 그런 것처럼, 두 시장이 누렸던 영화(榮華)는 사라진 지 오래다. 송현시장에 지금 남아 있는 점포수는 100개도 안 된다.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 시장 형성과 때를 같이해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런 송현시장에 2013년 한 해 동안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금요일마다 상인들을 위한 ‘책수레’가 시장 골목길을 돌고, 토요일엔 ‘시장탐험대’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시장을 누볐다. 시장의 매출이 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장에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분 좋은 바람이 시작된 곳, 골목도서관(관장 손보경)을 12월 26일 오후 찾았다.

송현시장에 분 기분 좋은 바람
시장골목 책수레와 시장탐험대

송현시장 내 솔마루사랑방이라는 건물 2층에 있는 골목도서관은 인천여성회 중ㆍ동구지부가 2011년 8월에 문을 연 작은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서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은 ‘시장골목 책수레’와 ‘시장골목탐험대’ 그리고 ‘안전마을 만들기’와 아이돌봄공동체 ‘아이사랑’이다. 이 사업들은 동구의 마을만들기 사업 공모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았다.

최근 동구 마을만들기 사업 최종 평가보고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앞서, 안전행정부가 지역공동체 우수사례 발표대회를 부산에서 열었는데, 공모에 신청한 61곳 중 12곳에 뽑혀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상을 받은 다섯 곳에는 들지 못했지만, 사업성과를 동구 안팎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이를 두고 손보경(44) 관장은 “동구의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선정되지 않았어도 할 생각이었어요.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 되는 사업이니까요. 특히 도서관이 시장 안에 있는 이상 상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책수레와 시장탐험대를 운영한 거죠”라고 말했다.

시장탐험대는 그동안 6회 운영했는데, 한 번에 초등학생 15~20명이 참가했다. 초청된 상인이 시장이야기를 해주고, 가게에서 가져온 먹거리를 맛보게 한다. 그런 뒤 아이들이 각자 요리할 메뉴를 정하면, 그에 들어갈 식재료 목록을 적어주고 시장으로 내보낸다. 그 전에 각자 재료를 살 예산을 짜게 하고 돈을 준 뒤 꼭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일러준다.

“아이들이 ‘시장 물건이 싸다’ ‘엄마 심부름 갈 때는 겁났는데, 이제 겁이 하나도 안 난다’는 둥, 좋아했어요. 또, 아이들에게 상인들과 가위바위보와 스피드퀴즈게임 미션을 주고 해오게 하는데, 상인들이 바쁘신 데도 좋아들 하세요. 우리(=골목도서관 상근자)가 영수증 써달라고 하면 잘 안 써 주시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에겐, 영수증이 없는 노점에서는 종이에다가도 써 주시더라고요”

손 관장이 들려준 아이들과 상인들의 변화다. 금요일마다 운영하는 책수레는 현재 점포 30곳에서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책수레가 돌면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하고 상인들이 반겨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엔 ‘쓸 데 없는 짓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니 대출 도서가 열권이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겨울엔 어묵을, 여름엔 레몬에이드를 파는 아저씨가 있는데, ‘요즘 누가 책보냐’며 핀잔하셨던 분이에요. 그런데 글쎄, 여름에 레몬에이드를 한 잔씩 그냥 주시더라고요. 마음을 여셨구나, 생각했죠”

사람을 찾고 세울 수 있는 사업인가?

  
▲ 손보경 동구 골목도서관 관장

손 관장은 내년에도 책수레를 지속할 것이라고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고민도 털어놨다.

“상인들이 마음을 열고 친근하게 다가오시기는 했어도, 아직까진 뭔가를 해주는 게 좋은 거고, 부탁을 받는 건 힘들어하세요. 시장탐험대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기는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는 데에는 비용을 지원 받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가니까 이만큼 가져 오더라’는 게 있었죠. 우리도 관의 지원을 받아서하니 편하게 가는 게 있고요.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그의 말은 더 이어졌다. “마을공동체라고 하는 우리의 지향을 함께 할 사람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더라고요. 이 도서관도 같이 할 사람이 생겨 쭉 이어져야하는데,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함께 하자고 제안하면 한 발 뒤로 빼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가 해주고 또 해주고 하는 식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어요”

손 관장은 그러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골목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깨달은 점 덕분이다. “도서관에선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래놀이와 요리수업도 해요. 요리수업을 맡은 언니(=이은해 회원)가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보육교사도 했고요. 아이들을 엄청 잘 다뤄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언니(=김은미 회원)가 있는데, 엄마들이 ‘누가 이렇게 실감나게 읽어?’ 할 정도예요. 꿈이 성우였대요. 처음에 도서관 사업을 구상할 때 같이 활동하는 사람(=회원)들이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게 김영구 지부장의 뜻이었거든요”

남구에 살면서 동구서 활동하는 까닭

손 관장의 집은 남구 학익동에 있다. 그가 남구가 아닌 동구에 와서 활동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보경이는 2006~2007년께 남구 문학동에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학부모로 만났어요. 2008년 연수구에 있는 늘푸른도서관에서 ‘나를 찾는 역사’라는 제목의 강좌를 듣자고 제안했고, 그 뒤 인천여성회에 가입했어요. 여성회에서 골목도서관을 만드는 걸 알고 ‘가서 해보라’고 권했어요. 보경이는 사람과 일에 대한 진정성과 성실함이 뛰어나요” 손 관장의 친구이기도 한 안미숙(44) 인천여성회 연수구지회장의 말이다.

손 관장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천여성회 가입 신청서를 받았을 때, 별 거리낌이 없었어요. 대학을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관심은 많았고, 마음속으로 지지했어요. 학원 강사를 하니 오전에 시간 낼 수 있고, 저녁에도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실 도서관 관장을 맡는지는 모르고 왔어요. 그래도 여성회가 활동하는 데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같이 일을 해보겠다고 온 것이니 맡았죠. 또, 동구 창영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창영교회를 다니고, 연수구에 있나 동구에 있나 똑같겠다고 생각한 거죠”

인천여성회 중ㆍ동구지부가 골목도서관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밤늦게까지 밖에서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요즘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죠. 그게 가능했던 건 동네 어른들이 ‘제 누구네 집 아이야’ 할 정도로 공동체가 살아있어서였죠. 공동육아를 하면서도 경험한 게 많아요.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이웃 아이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가족의 행복을 위한 일, 그래도 아이들에게 미안해

학원 강사가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면, 사실 작은도서관 관장 일은 생계와는 동떨어진 일이다. 아내로서, 두 아들(중3ㆍ초5)의 어머니로서 역할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남편은 사우디에 3년째 나가 있어요. 1년에 두 번 들어와요. 한번은 제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시더라.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행복했다고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내가 행복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나 이런 일 할 거야 하면, 따지지 말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닥치면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웃음)”

이야기는 아이들로 옮겨갔다. “‘지금은 엄마가 바빠서 너희들이 좀 불편하겠지만, 나중에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는 엄마가 지금처럼 열심히 활동해야한다’고 이야기해줬죠. 이해는 못해요. 어쨌든 엄마가 나쁜 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제가 여기 와 있는 3년 동안 큰애가 사춘기였으니까요. 언젠가 그러더라고요.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는 게 조금 힘들다고. 그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푸는 것 같아요. 제가 조절해줘야 하는데. 겉으로는 독립심을 키워줘야 한다고 큰 소리 치지만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상당히 크죠”

‘나중 행복보다 지금 행복’이 좋아

손 관장의 2013년 목표는 인천여성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제 역할을 찾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가 ‘운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철도민영화문제처럼 알지 못하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잘 알려고 노력하고 참여했던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사람관계라고 서슴없이 답했다. “우리 활동이 거의 자원 활동으로 이뤄지잖아요. 돈을 받든 안 받든 하죠. 그런데 일반 주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특히 일이 바쁠 때 서로 격려해주지 못하면서 상처를 받고, 재미있게 일을 하다가도 누군가와 관계가 조금 틀어지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하죠”

그렇게 관계가 어려울 땐 어떻게 풀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웃는데, 금요기도회가 있어요. 그 때 가서 마음을 다잡죠. 그런데, 예전엔 화가 나고 불만이 있어도 그냥 삭히고 말을 안 했는데, 이제 누구한테든 내 이야기를 하면 편해지더라고요. 말이 너무 많아졌죠(웃음)”

내년에는 손 관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것 같다. 인천여성회 중ㆍ동구지부장을 맡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마을만들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내년에도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했죠. 사업에 정신이 팔려 사람이 잘 안 보인 거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업만 한다’가 올해의 평가였어요. 제가 지부장을 맡을 가능성이 큰데, 회원을 늘려나가지는 못해도 유지하는 게 목표에요. 나 때문에 중ㆍ동구지부 없어졌다는 이야기 들을 까봐 겁도 나고요”

손 관장은 2013년 한 해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행복했다고 했다. “예전에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가 ‘나중 행복보다,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간간이 화가 나고 짜증나는 일이 있긴 했어도 나 지금 잘 살고 있구나, 그래서 좋다. 행복하다. 이런 생각을 해요. 내년에도 그렇게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