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주민자치인문대학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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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주민자치인문대학 ‘마을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

6월 10일(수)~7월 8일(수)까지, 13기 주민자치인문대학 ‘마을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이 5회 동안 진행한다.

[2강] 서로 믿으면 행복한 세상이 된다고?

행복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양’이다. 이렇듯 주류경제학에서 ‘행복’을 굉장히 간단히 생각한다. 돈이 많고 그 돈을 쓸수록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주류경제학의 관념에 반발을 하는 중요한 연구가 나온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 그는 돈의 액수가 정말 사람의 행복에 정확하게 영향에 미치는 지 연구했다. 수십 년 간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했는데 실제로 1940~1950대에는 미국 국민들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이후 10년간은 실질국민소득은 계속 증가하는데 국민들의 행복도는 감소했다. 돈이 늘어나는 만큼 비례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가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확인을 위해 1990년까지 후속연구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행복은 점차 감소했다. 돈 만원, 지폐 한 장이 각 사람에게 주는 행복이 다 다르다. 즉 한계효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후 요즘 경제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중 브루노프라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는데 그는 <행복, 경제학의 혁명>이라는 책을 썼다. 핵심 내용은 행복을 돈으로 측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며 재화는 내재적 속성과 외재적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0원의 음료에서 얻는 행복은 ‘외재적 속성’이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한 잔도 정말 1,000원짜리 행복인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길거리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마시는 봉지커피 한잔이 더 행복을 줄 수 있다. 이건 경제학자들이 설명하기 어렵다. 브루노프라이는 이런 걸 행복의 ‘내재적 속성’이라 말했다. 이처럼 모든 재화에는 외재적 속성과 내재적 속성이 있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 존f. 헬리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경제학자는 65세 은퇴 후, 새롭게 행복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분의 학문이 굉장한 인정을 받았으며 실제로 유수 경제학지에서 꼽은 노벨평화상 후보기도 하다. 그 연구는 이렇다. 경제학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분석해서 6가지 이유로 행복을 규정했다.

UN에서 2011년부터 연구를 한 후 2012년부터 매년 세계 행복보고서를 발간한다. 156개국의 매년 행복의 순위가 발표된다.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매년 그 해에 행복이라는 결과를 두고 놀라운 결과가 실린다. 올해 3월 발표되었는데 대한민국의 행복경제학 순위 66위이다. 작년까지 54위였다가 매우 떨어졌다. 그동안 경제학순위에서 우리나라가 40위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여기서만 왜 그럴까?

이 보고서에서는 행복은 6가지 순위로 매긴다.

1. 1인당 GDP
2. 자주적 삶의 선택
3. 건강기대수명
4. 관용성
5. 청렴도
6. 사회적 지원(벗과 우정의 중요성)

첫 째로 ‘1인당 GDP’, 여기서 27등은 우리나라 최종 순위를 굉장히 끌어올리는 요소이다. 두 번째, ‘자주적 삶의 선택’은 그 나라 국민이 자기의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느냐이다. 당시 나는 이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자주적 삶의 선택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144등이다. 앞서 1인당 GDP 순위와 자주적 삶의 선택 순위의 차이를 이 세상 어느 경제학자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주적 삶 부문에서 우리 경쟁국가가가 수리남, 체드, 코트디부아르, 시리아이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그 나라 대중이 아무런 선택의 길이 없어서 보트를 타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한 나라이다.

세 번째, ‘건강기대수명’은 우리나라가 9~10등정도 나온다. 복지는 물과 공기 같아서 체감하지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굉장히 훌륭하다. 네 번째 ‘관용성’은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대하냐는 것이다. 내 연봉에 신경을 기울이는 만큼 이웃에게 관대하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나? 실제 이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90등 대이다.

이 행복보고서 이후에 여러 세계 기구에서 비슷한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서 이것과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비정기적으로 내고 있다. 선진국 36개국 12가지 지표로 한다. 그 중 공동체성이라는 분야가 있다. 공동체성도 측정이 되고 순위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36개국 중 36등이었다. 10점 만점에 우리나라는 0점으로 꼴찌를 했다. ‘교육수준’ 남아프리카 0점, ‘부정부패’ 브라질 0점, ‘공동체성’ 한국 0점.

헬리웰 교수가 2012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물었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로 6가지 기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인가?” 그는 말했다. “나는 사회적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 행복한지 아느냐? 내가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벗이 있으면 행복하다.” 여든의 경제학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청렴도이고 마지막 ‘사회적지원’은 개인이 당면한 문제를 사회, 지역사회에서 함께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주로 복지를 지표로 삼는다. 이 사회에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국가가, 사회가 그 사람의 벗이 되어주라는 의미이다. 국민들이 힘들 때 벗이 되는 국가. 그럼 그 나라 국민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행복과는 아예 다른 의미다.

호모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인간은 이익과 손실에만 반응하는 과학적이고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고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감하는 능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능력이기도 하다.

프란스 드 발이라는 영장류학자가 요즘 사람들은 공감을 못하고 산다고 느꼈다. 그 후 그는 그것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인지 연구를 했다. 드 발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 정상에 오른 사람인데 실험은 이렇게 진행된다. 한 우리 안에 침팬지를 둔다. 그 안에는 줄이 매달려 있는데 그것을 잡아당기면 바나나를 얻을 수 있다. 침팬지가 처음에는 호기심에 당겼다가 바나나가 나오자 맛있게 먹는다. 반복을 통해 줄을 당기면 바나나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침팬지는 바나나가 먹고 싶을때마다 줄을 당긴다.

실험은 여기부터다. 침팬지가 있는 우리 맞은편에 또 하나의 우리를 만들어 그곳에 동료 침팬지를 데려온다. 서로의 우리 사이에는 유리가 있어 서로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줄을 당기면 바나나를 주는데 달라진 점은 줄을 잡는 동시에 맞은편에서는 사육사가 동료를 채찍으로 때렸다. 처음에는 침팬지가 이해를 못하다가 동료 침팬지가 고통을 당하는 상황을 몇 번을 반복하며 이해한다. ‘내 이익이 곧 동료들의 고통이라는 것을.’

이 침팬지는 그 사실을 안 이후에 줄을 당겼을까? 단 한 마리도 당기지 않았다고 한다. 극한상황으로 몰기 위해 실험 침팬지를 며칠 굶겨도 줄을 결코 당기지 않는다. 그것은 동료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후통첩 게임

최후통첩게임은 그동안 주류경제학자들이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전제를 허물게 중요한 실험중에 하나다.  *최후통첩게임은 A에게 일정한 돈을 주고 B와 자율적으로 나누도록 하는 게임이다. B는 A의 제안을 수락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 금액대로 두 사람이 나누어 갖지만 B가 거절하면 모두 한 분도 받지 못한다.

행동경제학 사람들이 종교, 소득수준, 연령, 인종이 다양하게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 수백차례 반복된 결과 놀랍게도 거의 비슷하다. 이는 통계학적으로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실험대상자(A)들은 평균 4,500원을 상대방(B)에게 제공했다. 즉 45%를 금액을 한 번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일이 없는 사람에게 기꺼이 나눠주었다.

그리고 A로부터 2,000원 이해를 제안 받은 B는 분배 자체를 거절했다. 이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손해는 감수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안중근의사, 유관순 열사가 어떤 이익을 생각하고 그 고통을 감수했을까. 인간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일도 감수한다. 그렇게 역사는 발전했다.

1강에서 말했던 호모이코노미쿠스(인간은 늘 경제학법칙에 의해 계산적이고 과학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주류경제학은 전제가 잘못되었다. 이 결과, 주류경제학의 역사를 뒤바꾼 결정적인 한 장면이었다. 당시 경제학자들이 쇼크를 받았다. 경제학의 전제가 허물어졌다.

옥시토신과 협동

경제학이 발전하면서 신경경제학이 새로 생겼다. 폴 잭이라는 사람이 신경경제학의 거두이다. 이 사람은 인간이 어떤 경제학적 활동을 할 때 과연 우리 몸에 어떤 신체적 변화가 일어날까 연구한다. 이 사람이 최후통첩게임에서 파생된 신뢰게임을 하면서 인간의 호르몬을 채취했다. 실험에는 협동하는 사람이 있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의 호르몬 분비를 측정하면 협동한 사람들의 몸에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대거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행복호르몬, 돌봄호르몬이라 불린다. 여성들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게 어마어마한 고통이다. 그런데 이것을 왜 할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한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옥시토신으로 상쇄한다.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고 낳고 기르는 게 어마어마한 고통임에도 돌봄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아이를 돌보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마을에서 공동체활동을 하는 분들도 이런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지 않을까? 협동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할 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협동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공감의 시대 / 최재천

프랑스 드 발이라는 영장류학자가 인류의 조상인 침팬지는 공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드려다. 그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있다. 이 책은 번역자가 최재천 교수다. 공감의 시대라는 책에 쓴 서문이다. 이 서문이 마음에 와닿아 공유한다. ‘공감은 우리와 유전자의 99% 가량을 공유하는 침팬지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우리와 진화적으로 그리 가깝지 않은 온갖 동물에게서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공감 능력이 다양한 동물들에게 존재하는 진화된 속성이라면 우리 종 즉 호모사피엔스의 구성원에게는 보편적으로 나타나야 할 텐데,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넘치도록 우러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메말라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번역하며 깨달았습니다. ‘공감은 길러지는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충분한 공감 능력을 갖추고 태어납니다. 공감 능력은 우리 종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타고난 습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다독이며 상처를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말라고, 경쟁해서 이기라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러니 공동체성이 0점인 것이다. 행복에 관한 마지막으로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에 나오는 좋아하는 문구로 강의를 마친다.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필요한 것은 뭐든 돈으로 살 수 있는데도 우리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결핍감을 더 많이 겪는 것을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얘기다.

경제적으로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동체가 결여된 것은, 모든 필요를 돈으로 채우기 때문이 아니라, 돈 ‘외에는’ 채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런 사람은 돈으로 채울 수 없는 욕구를 돈으로 채우려 애쓴다.

그러나 돈은 비인격적 포괄적 본질상 동일한 욕구만 채워줄 뿐이다. 필요한 열량 몇 칼로리, 단백질 몇 그램, 비타민 C 몇 밀리그램처럼 표준화·수량화가 가능한 욕구는 채워주지만, 누군가 정성을 담아 차려준 훌륭한 음식에 대한 욕구는 채워줄 수 없다.

거주할 집에 대한 욕구는 채워주지만, 나 자신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줄 수 없다. 돈으로 사실상 어떤 도구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만들어준 도구와 그에 얽힌 이야기는 살 수 없다. 돈으로 노래를 살 수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는 살 수 없다.

밴드를 집에 불러 노래하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위해 노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연인이 불러주는 세레나데가 얼마나 내면 깊숙한 욕구를 채워주는지 우리는 안다.

 

행복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지금까지 경쟁사회에서 공감능력을 삭제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이 세상에 행복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연구, 실험결과 우리에게는 행복을 새로 규정해야할 이유가 있다. 협동에서 동료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걸음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가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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