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지식과 성찰의 향연에로 초대[문화&공간] 고전을 공부하는 공간 ‘온고재’

동서양의 지식과 성찰의 향연에로 초대[문화&공간] 고전을 공부하는 공간 ‘온고재’

김영숙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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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승인 2014.03.20  11: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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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재 대표

길병원사거리에서 남동경찰서 쪽으로 가다가 1층에 철물점이 있는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가니 문밖에 한문으로 ‘溫故齋(온고재)’라고 쓰여 있다. 그밖에 아무런 홍보문구가 없다. 이우재(57ㆍ사진) 대표와 인사를 하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거기에 ‘고전(古典)을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5년 전인가? 후배들이 연구소 겸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가르치는 공간을 만들라고 하기에, 자신 없다고 했더니, 후배들이 일을 저질렀어요. 덜컥 사무실을 계약한 거예요.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지요”

사실, 이 대표는 그전부터 맘을 먹고 있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넘어가는 때는 사회생활도 할 만큼 하고 애들도 다 컸을 때라 사는 게 공허해져요. 자기를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살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죠. 이럴 때 고전을 읽으면서 사람의 본성을 찾고 공허함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이 대표는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공부했다. 꾸준히 해온 공부라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같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온고재’를 시작했다. 2009년 10월 ‘온고재’의 문을 연 후 논어ㆍ맹자ㆍ장자뿐만 아니라 음악사ㆍ미술사ㆍ영화사ㆍ서양철학사 등 다방면의 인문사회학을 공부했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훈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온고재? 그 이름에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앎)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신’은 못하더라도 ‘온고’라도 하자는 취지로 이름을 지었어요”

‘빠름, 빠름’으로 인기를 얻은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가 생각났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로 암묵적 동의를 받는 ‘속도’와 거리가 느껴지는 이곳이 궁금해졌다. ‘고전읽기’의 열풍이 불기도 했지만, 고전을 뒤적이는 건 시대 부적응자 취급을 받을 우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에 다시 고전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여전히 유효

“2000년 전의 고전이 지금도 살아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4대 성인 중 세 분이 동시대를 살았어요. 붓다가 기원전 600년 무렵에 태어나시고,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그 후 50여년이 지나 연이어 태어나신 거죠.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철기문명하고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해요”

3대 성인이 활동한 시기는 철기문명이 꽃을 피운, 인간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때였다. 먹고 사는 데 급급했다가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성인들은 ‘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어요. 과학이 2000년 동안 발달했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그 물음은 동일하거든요.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풀린 게 없어요. 인간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왜 죽어야하는지, 짧은 삶의 허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고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채워야하는지, 여전히 몰라요”

생산력이 발전한 것처럼 철학의 인식론이 조금씩 발전했다 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이다.
“옛날에는 지식이 삶과 분리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박사라고 훌륭한 삶을 살지 않아요. 오히려 후퇴했다고 봐요. 지식만 쌓이고, 삶을 몰라요. 성인들의 물음과 고전에 나와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여전히 유효해요. 톨스토이나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을 보세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성찰이 녹아있죠. 고전이 주는 가르침은 자기를 성찰하고 찾는 거예요”

고전을 읽으려면 투자하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전은 쉽지 않은 존재다.
“읽으려면 투자를 해야지요. 이차방정식을 풀려면 더하기 빼기부터 공부해야해요. 고전을 읽으려면 그게 필요해요. 예를 들어, 논어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나와요. ‘공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공자는 진지하게 얘기한 거거든요. 그럼 ‘공자는 공부하는 게 왜 재밌을까. 재미란 뭘까.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하지’ 계속 곱씹고 고민해봐야 해요. 그런 진지한 투자 없이 고전의 참맛을 어떻게 압니까?”

공자에 대한 이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仁)을 강조했는데, 이 시대에도 절실합니다. 공자는 ‘인’을 사전적 의미로 정의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글자 그대로 사람이 둘인 거예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나 혼자만 잘 살려고 하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규정합니까? 이기적인 존재가 본성적이고 당연한 거라고 규정하잖아요. 자본주의 이론가들이 그렇게 만든 건데, 물론 이기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타적인 측면도 있어요. 고대 사상가들의 이론은, 나만을 추구해서는 세상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공자도 남과 같이 살줄 알아야한다고 했죠”

이 대표가 처음부터 공자에 매료된 건 아니다. 공자를 ‘보수 반동’으로 규정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개혁가’로 깨닫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2000년 즈음에 심각하게 방황했는데, 그때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삭이지 못해서 술에 빠져 살았어요. 별 생각 없이 논어 학이편(學而篇) 구절 중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 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를 보다가 놀랐어요. 뛰어난 인물인 공자가 노나라에서 상갓집 개 취급을 받으며 13년을 떠돌아다니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잖아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공자처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덤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공부를 다시 했더니 공자는 개혁가라는 걸 깨달았어요”

꿈과 야망이 많은 공자가 좌절을 완숙의 경지로 바꾼 것을 보면서 이 대표도 변했다. 예전엔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독기를 품고 싸우곤 했는데, 공자를 만나고서는 점차 마음의 매듭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대표는 무엇 때문에 독기를 품고 방황했을까. 그의 과거가 궁금했다.

“1978년 유신반대, 80년 광주항쟁, 86년 인천5.3항쟁 사건과 연루돼 감옥을 세 번이나 다녀왔어요. 90년 이후엔 사회운동세력들이 정치권으로 들어가거나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고 활동을 접은 뒤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매일 술을 마셨죠”

다시, 고전으로

   
▲ 이우재 대표

이 대표는 다시 고전을 읽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 내세를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한 번만 살아요. 윤회나 내세가 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귀한 삶이예요? 내 삶을 내가 살아야죠. 그런데 지금 우리 모습은 어때요? 내 삶을 돈이 살고 욕망이 살아요. 인생이 얼마나 아까워요? 내가 되는 자기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하고 진지하게 돌아봐야 해요”

알 듯 말 듯했다. 조금만 쉽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해요. 자기를 위해서 살아야죠. 공자는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늘의 뜻을 안다’고 했는데, 지천명이란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안다는 뜻이에요. 하늘이 나를 세상에 내려 보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고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는 거죠. 덩치가 좋으면 운동을 하고,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하고, 노래를 잘하면 사람들에게 즐겁게 노래를 불러주면 돼요. 특별하게 좋아하거나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주어진 조건에 열심히 살면 돼요. 자아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면 돼죠”

그렇다면, 열심히 사는 건 무엇일까.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에요. 사회를 벗어난 인간은 의미가 없죠. 인간이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는 게 올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으로 먹고 살려면 물질이 필요해요. 하지만 물질만을 좇아 사는 게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야합니다.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풍요롭잖아요. 분배의 관점으로는 달리 볼 수도 있지만 만족할 줄 알면 좇기지 않고 벗어날 수 있어요”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야

인터뷰가 아니라 고급 과외를 받은 기분이었다. 마지막이라며 이야기를 더 청했다.
“논어에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이라는 글귀가 있어요. 예전에는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공부했는데, 지금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이 말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산다는 거예요. 나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아파트ㆍ자동차ㆍ명품 등을 소비하잖아요. 남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해요”

‘온고재’는 2009년에 문을 열었는데, 애초부터 운영하는 데 수지타산이 맞을 리 없었다. 사무실 유지와 강사료를 지급하기에는 수강료가 터무니없이 쌌다. 그 간극을 메우는 건 고스란히 이 대표 지인들의 몫이었다. 후원계좌에 매달 넣어주는 선후배들의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수강료를 낼 여유가 있으면 내고, 없으면 말지요 뭐. 얼마나 어려우면 낼 사정이 안 되겠어요. 어차피 강의는 하는 거니까 많이 오셔서 함께 배웠으면 좋겠어요”

매일 저녁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펼치는 지식과 성찰의 향연에 함께 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온고재’의 문을 두드리시길.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카페: cafe.daum.net/ongoj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