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을 만드는 청년들] 사람책 한 권 빌려보실래요?

‘사람책’ 한 권 빌려보실래요?[기획연재] 스스로 일을 만드는 청년들⑨ 대구광역시 북구 ‘아울러 사람도서관’

심혜진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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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승인 2013.07.25  18: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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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직자들은 취업이 힘들고, 막상 취업에 어렵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 끝 행복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경쟁적인 취업시장을 벗어나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일을 선택하는데 자신의 적성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출을 꾀하는 점에서, 이익과 매출을 강조하는 일반창업과 확연히 다르다. 일자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청년들의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내 인생을 책으로 엮으면 열 권도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인 이들도 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취해 있다 보면 ‘이건 정말 책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그런데 종이 책이 아닌 ‘사람책’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 있다. ‘아울러 사람도서관’(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은 책 대신 ‘사람’을 빌릴 수 있는 곳이다. ‘사람도서관’에서는 ‘사람책’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독자)들에게 직접 말로 전달한다. 이런 사람책들이 80여 권이나 마련돼 있다.

그동안 많은 청년 기업가들을 만났지만, ‘사람’ 자체가 아이템이 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지난 12일, 박성익(29) ‘아울러’ 대표를 만나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사람책, 빌려보실래요?

   
▲ 박성익 ‘아울러’ 대표.

도서관에 들어서자 박성익 대표가 환한 얼굴로 맞았다. 경북대학교 앞 골목 사이에 위치한 ‘아울러 사람도서관’에는 역시나 책이 많지 않았다. 한쪽에는 카페처럼 주방이 마련돼 있고 테이블 몇 개와 의자가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시원한 차 한 잔 드릴게요” 그의 말투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난다. “경상도에서 오래 사셨나 봐요?” 하고 묻자, “경남 경주에서 태어났고, 경북대학교 졸업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가 차가 담긴 컵을 내려놓았다. 사람도서관을 처음 시작할 때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2011년 4월에 경북대에서 처음 사람책 행사를 열었어요. 졸업하기 전이라 학생회 활동하는 친구를 통해서 공간만 빌렸어요”

그날의 행사는 이랬다. 행사 전 박 대표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몇몇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책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대부분 이전부터 박 대표에게 사람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은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은 박 대표와 함께 자신의 경험 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추려내 순서를 정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행사 당일, 행사장에 탁자와 의자를 군데군데 놓고 사람책들을 소개하는 간단한 안내문을 비치했다. 사람책은 저마다 탁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이제 독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독자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사람책 앞에 가서 앉는다. 그러면 사람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날 사람책으로 참가한 이들은 인권운동가, 원어민 강사, 해외에서 3년 동안 공동체 경험을 한 사람 등이었다. 독자로 참가한 이들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생생하고, 공감이 많이 갔다’ 등 좋은 반응을 들려줬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학교 안에서 주기적으로 사람책 행사를 열었다. 행사 참가자는 점점 늘었고, 지역 언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자 중에는 ‘나도 사람책이 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는 이도 많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뿌듯했어요.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죠”

저자들 찾아다니다 교수와 친구 되기도

그에게 사람책으로 이뤄진 사람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난감해하는 얼굴이다. 결정적인 ‘한순간’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 계기를 만나기까지 그는 무수히 많은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의 사람책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그는 다섯 살 때 사고를 당해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이후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하며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플까. 사람은 왜 살까’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시내로 나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학교 근처에 있던 작은 도서관을 드나들며 처음으로 책에 흥미를 느꼈다. 동서양 철학서적은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더 깊이 사유하게 했다. 주역과 관련한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저자인 동국대학교 교수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이후 교수는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것을 허락했고, 허심탄회한 대화도 자주 나눴다. 교수는 숲이나 생태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대학에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할 것을 제안했다. 교사가 되기를 원하며 부모가 반대하자, 교수가 직접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교수님을 만나고 나서 좀 놀라신 것 같더군요. 진로에 대해 별 말씀이 없었어요” 그는 결국 산림자원학과에 입학했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인생 바꿔놔

대학에 가서도 책읽기는 계속됐다. 고등학생 때보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책 저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손에 들어왔다. 지식인도 노동현장을 경험해야한다는 생각에 동화돼 2년 반 동안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다. 이때 모은 돈으로 그는 인도행 비행기표를 샀다. 교수를 통해 만난 동국대 학생에게 ‘오르빌 공동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르빌 공동체는 스리오르빈도라는 구루의 철학을 이념으로 한 공동체에요. 철학을 삶으로 실천하는 공동체죠. 부모님께는 ‘이제부터 경제적인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는 일은 막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곳에서 지낸 6개월 동안 그는 “말만 했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밤마다 영어공부를 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정해진 삶도, 인생의 답도 없었다.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살 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탔다.

2010년 여름엔, 그는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이 그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사람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김수정 지음)였다. 책에는 덴마크에서 시작한 사람도서관 운동과 사람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산티아고길을 걸으며 제 인생을 돌아봤어요. 세상을 돌아다니며 얻은 것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자마자 확 꽂혔어요. (웃음) 왜냐하면, 제 인생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 덕분에 많이 바뀌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어요. 내가 사는 대구에서 이걸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대구에 돌아와 그는 지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에게 사람도서관을 설명하며 의견을 모았다. 누군가는 ‘전문가들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가 듣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생소해 하면서도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2011년 4월 첫 행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람책도, 독자도 ‘윈-윈’

   
▲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사람책’ 행사 모습.

‘아울러’에 등록된 80여 명의 사람책은 대부분 20~30대의 ‘보통 사람들’이다. 독자로 참여했다가 사람책이 된 경우가 많다. 박 대표는 “누구나 사람책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처음엔 비슷한 고민을 해요. ‘내가 너무 어린 것은 아닌가?’ ‘내 이야기를 누가 좋아할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취하는 것’이에요. 자기가 즐거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도 즐거워지죠. 그 다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사람책이 되겠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사람책은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책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여성 칼럼니스트의 사람책을 만들 때였어요. 그분에게 어떻게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물었어요. 계속 역추적을 했더니 결국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갔어요. 그분도 깜짝 놀라더군요. 그동안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이걸 왜 하는지 묻지 않았던 거예요. 스스로 사람책이 되는 과정에서 본인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돈 받을지 말지 석 달 동안 고민해

사람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야하는 특성때문에 상시적으로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사람책 행사를 통해 독자와 만난다.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사람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사람도서관 후원회원들이 회비를 내지만, 그것으로 월세와 운영비, 활동비를 대기엔 한참 벅차다. 그는 세 달 동안 고민을 했다. 과연 이 사업으로 돈을 벌 것인가, 말 것인가.

“돈을 안 받으면 사업이 지속되기 어려워요. 지속성이 있어야 사람책과 독자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돈을 받자니 ‘인신매매’ 같기도 했어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는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되물었다. 결국, 지역에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기엔 이 사업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돈을 받아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어요. 사람책을 통해 지역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수익을 내는 것보다 훨씬 우선에 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요”

그는 교육청에서 저소득층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중학교에 찾아가 자존감이 낮거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사람책이 직접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업을 제안했다. 현재 4개 중학교에 사람책을 파견하고 있다. 왕따와 일진, 학교폭력, 가출 경험이 있는 사람책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학교 안에서 실시한 평가에서 사람책 사업은 학생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학생들도, 사람책도, 모두 만족하고 있어요. 아직 시작 단계지만 차차 늘려가야죠” 그는 앞으로 사람도서관을 더 많은 사람책으로 채우는 동시에, 이곳을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람책과 사람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과 비슷하더군요.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공감하고 관심을 갖고 질문만 던져도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앞으로 사람도서관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을 하든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