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편한 세상]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휠체어도 흔들흔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휠체어도 흔들흔들[기획연재] 장애인이 편한 세상은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6. 이동권

심혜진 기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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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승인 2012.05.22  15: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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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가 작동 중 추락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커졌다.

그 후 많은 이들이 장애인 이동권 확보투쟁에 참여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ㆍ장애인콜택시 도입 등 큰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리프트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휠체어를 탄 이들은 집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직접 이동해보기로 했다. 인천지하철1호선 부평구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부평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과제였다. (사)장애인자립선언(대표 문종권) 활동가 김경현씨가 동행했다. 김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이다.

적응 안 되는 공포, 휠체어 리프트

 

   
▲ 리프트를 타고 부평구청역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5월 16일 오후 5시 20분, 부평세림병원 뒤쪽에 있는 (사)장애인자립선언 사무실을 나섰다. 휠체어가 자꾸 한쪽 방향으로 기운다. 휠체어를 처음 타서 이런 걸까 했는데, 길 자체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김씨는 배수 때문에 대부분의 길 가장자리가 기울어 있어, 넘어지지 않기 위해 평평한 길 중앙으로 가야할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 3번 출구까지 가야한다. 그곳에 리프트가 있다. 공사 때문에 길이 좁고 바닥이 울퉁불퉁해 이동이 불편했다.

5시 34분, 부평구청역 3번 출구에 도착했다. 리프트를 타기 위해 직원 호출 단추를 눌렀다. 김씨가 먼저 리프트에 올랐다. 리프트가 출발해 계단 아래에 도착하기까지 3분 35초가 걸렸다.

다음으로 기자가 올라탈 차례. 다시 3분 35초 동안 리프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휠체어 바퀴를 굴려 리프트에 조심스럽게 올라탄 순간, 계단 아래가 까마득해 보였다. 평소 고소공포증도 없고 놀이기구도 겁 없이 타지만, 이건 확실히 다르다. 공포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침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오면서 리프트 탄 기자를 쳐다본다. 그 시선이 왠지 불편하다. 3분 35초 후 바닥에 닿았을 때, ‘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씨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공포”라며 “탈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한다”고 했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이들과 단체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리프트 타는 데만 1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사고 위험과 공포감, 소요 시간 등을 따져보면 엘리베이터는 편의시설이 아닌 필수시설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이 필요한 이유

계단을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다. ‘바퀴를 잘못 굴리면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씨가 두리번거리며 공익근무요원을 찾는다. 지하철을 탈 때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공간에 휠체어 앞바퀴가 빠질 수 있으니 나무판을 대야 한단다. 부탁을 하려는데 마침 전철이 들어왔다. 공익요원이 휠체어를 들어 올려줬다.

지하철을 무사히 탔다는 안도감도 잠시, ‘내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김씨는 “앞바퀴가 빠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 갔던 일을 얘기해줬다. 출발역에서 직원들이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 목적지를 물어본 후, 도착역에 미리 전화를 해준단다. 몇 번 칸에 장애인 몇 명이 탔는지를 전달하면, 도착역에서 미리 인원을 배치한다고 했다.

다행히 부평시장역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가 넓지 않았다. 지상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한 번에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는 후진을 해야 한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 맞은 편 거울을 보면서 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부평시장역 엘리베이터는 거울이 없었다.

김씨는 “전동휠체어는 부피가 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향을 돌리기 어렵다. 뇌병변장애의 경우 고개를 돌려 뒤를 볼 수 없는 이가 많아 후진하다 사람들과 부딪힐 위험도 크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거울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인도나 차도나 위험하긴 마찬가지, 차라리 차도로

 

   
▲ 아스팔트 턱에 휠체어 바퀴가 걸려 오도 가도 못하자, 지나가던 시민이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6시 11분, 지하로 내려간 지 50분 만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부평시장역 1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시장을 가려면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야했다.

첫 번째 횡단보도는 인도와 차도가 잘 연결돼있지 않았고, 아스팔트 턱이 높아 앞바퀴가 걸렸다. 안간힘을 쓰는 사이 신호가 바뀌어버렸다. 차도에 밀려나와 있는 기자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도로 다시 올려주었다. 진땀이 흘렀다. 다음 신호에 겨우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녹색 등이 켜져 있는 시간이 빠듯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지나다니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계양 센트레빌 모델하우스를 끼고 돌아가는데, 갑자기 인도가 뚝 끊겼다. 김씨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차도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차도로 가는 이유는 그들이 용감해서가 아니라, 잘 정비돼지 않은 인도는 차도와 똑같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높은 턱을 내려와 차도로 이동한 후 다시 인도로 들어섰는데, 승용차 한 대가 인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김씨가 담과 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부평시장, 휠체어로 장 보는 데 문제없어… 하지만 가는 길은 불편해

6시 32분, 드디어 부평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골목을 누비며 장을 보는데 휠체어를 타고도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김씨는 “이렇게 시장 깊숙이 들어와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동안 접근하기 편한 마트를 주로 이용했던 것. 그는 좌판 채소 가격을 보고 “마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싸고 질도 좋다”며 미나리와 쑥, 비름나물 등을 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문턱이 없는 식당을 찾지 못했다. 다시 (사)장애인자립선언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어깨와 팔이 너무 아파 휠체어체험을 중단하고 말았다. 김씨는 “휠체어 장애인은 어깨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부평시장을 나오며 “부평시장에서 장을 편하게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시장까지 오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며 “장애인만이 아닌 모든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도로와 시설을 정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