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마을의 성장 이야기 ‘여럿이 함께 동네야 놀자’

 

  마을 만들기는 ‘있는 것을 잇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든다’는 말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 내는 의미로 읽혀지기 쉽지만, 마을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있어 왔던 ‘삶 자체’였던 만큼, 사업 이전부터 있었던 마을의 좋은 기류를 널리 전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주민들이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마을공동체 <여럿이 함께 동네야 놀자>를 다녀왔습니다. 행정구역상 산곡1동과 청천1동으로 나뉘어 있지만,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 호흡하고 있는데요,

  “마을 안에서 여럿이 함께 재밌게 살고 싶었던 젊은이들이 축제를 시작하면서부터 반찬을 만들고, 공부방을 만들어 동네 어르신들, 동네 외국인 친구들, 동네 아이들을 만나며 함께 놀기 시작한” 게 14년이 되었다니,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동네야 놀자>의 이용우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을을 위한 축제 ‘동네야 놀자’
과정 속에서 결실을 맺다.

  일단 이 동네는 구도심 생활권이다. ‘벌방’이라고 해서 작은 방이 벌집처럼 밀집되어 있는 거주 형태가 아직도 존재한다. 예전부터 노동자들이 살던 동네인데 탁아운동을 시작으로 실업운동. 공부방 활동, 청년 문화모임 등의 움직임들이 있었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한 동네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웃 간에 가까이 지냈다.

  IMF여파로 인해 작은 공장부터 실직자가 생겼고, 동네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네를 위한 경로잔치를 해 보자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2000년) 그러다가 여러 활동 단위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마을축제가 되었다.(2001) 원래는 일회성 기획이었는데, 해 보니까 너무 즐거워서 지속하게 됐다.

  처음 회원은 17명이었다. 그 중 십정동 햇님방(공부방)에서 단오제를 경험했던 분이 있었는데, 단오제가 옛날 농경사회에서 모내기가 끝난 후 ‘축낸 몸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지 않나. 동네에 활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단오날마다 마을축제를 열게 되었다.

 

14년간의 다양한 활동들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
  축제를 5년쯤 진행해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즈음 공부방을 다니던 아이들이 졸업해서 청소년이 되었는데,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보호터(공부방)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청소년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후원주점을 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취지에 공감해 줘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2007년 6월에 청소년 문화공간 <꿈터>를 개소하게 되었다.

 

▲어머니 한글교실(위), 이웃나라 무지개교실(아래)

다문화 가정, 어머니를 위한 <한글교실>, 다문화 체험의 <무지개 교실>
  2007년 단오제 이후로 ‘동네야 놀자 사무국’이 생겼다. 동네에서 소통할 대상을 찾다 보니 당시 결혼 이주여성 ․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대상을 설정하고 <한글교실>을 열었다.(2008) 그해 11월에는 지금의 사무실을 열었는데, 후년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나도 한글을 배울 수 없겠나?” 하고 부탁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어머니 한글교실>도 열었다.  

  이주여성들이 대체로 젊다 보니 반말로 대화를 했는데 아이들이 그걸 따라하더라. 그래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주 여성들이 사는 나라 위치, 국기, 날씨 등을 알려주는 <무지개교실>을 열었다. 베트남 엄마는 호치민에 대해 알려주고, 우즈벡 엄마는 목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시선도 변화하고, 엄마들도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니 뿌듯해 한다.

 

홀몸 어르신을 위한 반찬 전달 <홀몸반찬>, <효드림>, 그리고 중학생 봉사단 <마을누리>
  2010년에는 어린이집 자모회에서 홀몸어르신이 수의를 마련하실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일을 했었는데, 주민자치위원이 되어서 지켜보니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해보자는 생각에 대상을 찾아보니 2010년 당시 65세 이상 수급자가 257명으로 너무 많았다. 일단 동․반장의 추천 받고, 상담을 거쳐서 추려진 10명의 어르신께 생필품을 저렴하게 사다가 전해 드렸다.

  계속 할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할머니가 잘 계시는지 궁금하더라. ‘잘 계시는지만 확인하자’, ‘우리 한 달에 만원은 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반찬을 만드는 <홀몸반찬>팀이 생겼다. 그 중엔 반찬을 만드는 건 좋은데 전해 드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 때 우연히 세일고등학교 학생들과 연결이 됐고, 도시락을 전해 드리는 <효드림>팀이 생겼다.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엄마들과 학교가 보게 되었고, 곧 세일고 CA수업으로 지정되면서 반찬 배달도 월 2번으로 늘었다.

  중학생 봉사단 <마을누리>도 있다. 아이들을 학원 안보내고 놀게 하려 해도 또래가 전부 학원에 가 있으니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매월 아이와 노는 프로그램 ‘동네 한바퀴’를 진행했다. 작년에 1기였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은 학원가야 한다며 빠지더니 중학생이 되고서는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고 다시 오더라. 그래서 중학생 봉사단이 되었다. 3월은 동네 청소, 4월에는 카네이션 만들기를 했고 5월엔 경로당 봉사, 8월은 이불 빨기 11월 케이크 만들기 활동을 하려 한다.

 


엄마들의 마을기업 <리폼맘스>
  한번은 인천시 도시축전에 ‘재활용 패션쇼’가 열렸는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참가했다. 모기장을 활용한 드레스와 우산 우비로 만든 작품이 각각 동상과 대상을 수상했는데, 우리도 깜짝 놀랐다. 디자인과 전공자와 모델들 사이에서 이룬 성과였다. 이후 동네에서 청바지를 고쳐서 입고 싶다는 문의가 늘어서 리폼교실을 열었다가 후에 <리폼맘스>라는 마을기업을 만들게 되었다.

 

주민이 함께하는 공간 <뫼골 문화회관>
  2013년에는 행안부의 희망마을 사업공모에 선정되어 <뫼골 문화회관>이 생겼다. 주민협의체를 사단법인 <우리동네 희망마을>로 만들었고, 현재 마을기업으로 운영 중이다. 1층은 공간 운영비 마련 차원에서 수익형 카페를 운영하고, 주민들 모임공간으로 활용한다. 2층에서는 어머니 한글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밖에 우리 동네 상점 회원들로 구성된 <동네방네> 팀은 첫 사업으로 동네 주말농장을 계획 중이고, 회원 조직이다 보니 월1회 모임(운영위원회)과 자문위원회, 장학위원회, 족구를 통한 아빠들 모임도 있다. 매년 8월에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섬 투어’를 간다.

  우리가 선택해서 시작한 사업은 다문화사업 한가지다. 그 외에는 모두 주민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회원활동과 조직활동은 달라서, 사업은 각자 담당을 정해서 진행한다.

 

참여하는 학생들이 자기 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할머니들 이름, 고향 알아오기’ 같은 미션을 준다. 그럼 돌아와서 할머니가 해 주신 1.4후퇴 때 이야기를 해 주는 등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 “현대사를 함께 확인해 보자” 하고 해방 이후, 6․25 이후 어땠는지를 책 나눔 등으로 진행한다.
  효드림 1기는 엄마들이 먼저 동의해서 시작한 친구들인데, 서로 첫 정이 아쉬워서 엄마들 제안으로 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생겼다. 그러다 나중엔 정기적으로 밥 먹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이들한테 “너네 할머니인데 왜 관심을 안 가져!” 하고 추궁(웃음)하면 더 관심 있게 본다. 할머니들께도 “아이들 어때요?” 여쭤보기도 하고. 활동이 좋았다면 “이후에 너희가 있을 곳에서도 지속적으로 하라”고 주문한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활동을 지속하는 걸 보면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경험이 된 것 같다.

 

“주민의 욕구에 의해서 시작한 사업은 금방 멈추지 않아요.”
  나중엔 욕구가 커지게 됐고. 다른 동네 사례들을 찾아보며 공부도 하게 됐다. 그런데 다른 동네의 성공사례가 우리 동네에 꼭 적용되지는 않더라. 서울의 성미산 케이스가 아무리 좋아도 이 동네에 그대로 입히기 어렵고, 주민자치를 통해서도 마을 만들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음에 어린이집과 공부방은 하고 있었고,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너무 많기도 하고, 복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주민이 보인 거다. 이주민들을 처음부터 어떻게 알았겠나.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욕구가 보이더라. 동네야는 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외에는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뭘 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거 하겠다”고 하면 뜻이 달라도 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존중한다. 생각으로는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주민이 보인다. 관계에서 생겨난다.

  욕구에 의해서 시작한 사업은 금방 멈추지 않는다. 찾아보면 많다. 잘 몰라서 그렇지 기회가 되면 착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잘 안보이기 때문에 “내가 베푼 선의가 잘 쓰일까?” 하며 주춤하게 되는 거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들고 돌아다니면 “저거 뭐야?”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일인지 설명하게 되면 눈에 보이니까 동참하고 싶어 한다.

 

오래토록 지속할 수 있었던 힘
“나의 성장이 마을의 성장과 함께 간다는 것”

  사업 속에서 내가 성장하는 걸 느낀다. “이주여성과 뭘 하지?”, “뭐가 제일 필요한지 어떻게 묻지?” 소통의 방법을 처음엔 몰랐다. 그냥 같이 해보자고 3~5명이 모여 앉아서 희희낙락거리며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장소와 분위기를 다 만들어 놓고 선생님 역할을 하라고 했으면 나라도 못 했을 거다. 처음엔 할머니 만나면 할 얘기가 없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아, 내가 노하우가 생기는구나,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구나. 성장하고 있구나. 예전엔 3개월 걸리던 사업계획서 작성이 이제는 빨라졌구나.(웃음) 하는 것이다.

  나의 성장이 <동네야>의 성장과도 같이 간다. 복지나 시혜 같은 접근보다도 내가 있는 곳에서 생기는 모든 활동이 자기 성장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면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동네야>는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주민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외부에 보여지는 성과에 관심을 끊고 마을 축제 그 이상의 규모를 넘지 않고자 한다. 그리고 준비부터 행사, 평가까지 동네 주민들이 직접 주도한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들.
  아이들이 자라고, 돈 벌러 나가면 엄마들도 바뀐다. 공 들여 놓으면 사라진다.(웃음) 그런 게 힘들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새로운 관계가 생기니까 좋다 나쁘다 하긴 어렵다. 새로운 관계에서 할 일이 더 크니까 상처받는 것은 적다.

  갈등이 생기면 <동네야>의 가치가 틀렸는지, 처음과 다르게 잘 못 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조율해서 방향을 정한다. 이후엔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후원회원은 늘어나는데 활동회원은 비슷한 숫자에서 계속 사람만 바뀌는 실정이긴 하다.
  나 혼자라면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활동을 지지하는 선배들의 격려, 함께하는 주민들이 힘이 된다. 또 지역주민 조직가 훈련 등을 받고 나니 주민을 대하는 태도나 잣대가 달라졌다.

  예전 이 동네는 재개발 대상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뫼골 문화회관>이 들어설 때 반발이 있었다. 재개발 되어야 할 이유가 많아야 되는데 복지건물이 새로 들어서면 곤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개발은 물거품이 되었고, 지금 동네 사람들은 집주인들보다 세입자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얘네와 상관없이 상황이 나빴던 거구나.”라는 걸 안다.

 


앞으로 : 청소년에 대한 관심
  종종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와서 카페를 점령(?)한다. 처음에는 어차피 한산해서 괜찮았지만, 주민이 함께 이용할 공간에서 계속 그러면 곤란하다. 한명 한명이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몰려다니게 되면 말썽을 부리기 쉽다. 내쫒으면 딴 데 가서 말썽 부릴 것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다. 지금은 조금씩 대화가 되어가고 있다.

  공부만 시키니까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못 찾은 아이들이다. 청소년사업은 아직 재정이 없어 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데 안할 수도 없다. 시작하게 되면 새로운 욕구를 어떻게 담을까 하는 게 고민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작은 프로젝트를 구상하려 한다. 연극을 함께 볼까? 아니면 직업탐색을 해볼까?

 

마을은 작은 사람들, 정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진다.
  지금 ‘마을 만들기’가 붐인데, 무엇보다 자발성이 중요하다. 자본이 들어갔을 때 얼마나 자발성에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다. 정부지원금과 상관없이 주민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필요 없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동네야>가 축제를 하면 200명은 자원봉사자로 꾸려진다. 경로잔치를 하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다 끝나고 나서야 같이 밥을 먹는다. 밥값도 전부 자비로 낸다. “자원봉사까지 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하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럼 후원금이 자원봉사자 밥 먹으라고 준 건지, 경로잔치에 쓰이기 위해 낸 건지 되묻는다. 효드림, 홀몸팀도 자기 돈으로 밥 먹는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자원봉사인데 내가 해야 내 일이 되지, 누가 해주면 내 것이 안 된다. 비용이 필요하면 바자회나 공동출자 등의 방식을 고민해서 만들어야 한다.

  돈을 들고 시작한 조직은 계속 그만큼 들고 시작해야 유지가 된다. 이 동네에는 수급자가 너무 많지만 동네의 힘으로 유지가 된다. “저 단체 봉사하고 나서 얻어먹는 거 아니야?” 하고 물으면 동네 반장님들이나 식당 주인이 나서서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게 힘이 된다. 마을을 지키는 건 작은 사람들. 정주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역할은 계속 만들어지지 않을까.

 

 

여럿이 함께 동네야 놀자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1동 51-4 산곡볼링장 1층

http://cafe.daum.net/dongnea
032-518-0206

 

 

글 : 이광민(사업지원팀)
사진 출처 : 여럿이 함께 동네야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