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사업가 ‘최고의 환한미소’ 최환 대표를 만나다

“세상에 나와 꿈을 펼치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에요”

서른한 살 사업가 ‘최고의 환한미소’ 최환 대표를 만나다

14-07-24 16:57ㅣ 이재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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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예비사회적기업에 등록했다가 올해 6월, 노동부 인정 인증사회적기업으로 승인받은 기업이 있다. ‘예비사회적기업’을 3년 동안 유지하면서 사업비를 지원받다가 인증 받는 보통의 절차와는 다른 행보다. 폐현수막을 이용해서 가방과 신발을 만드는 ‘최고의 환한미소’가 그 주인공. 서른한 살 젊은 사업가 최환(31) 대표를 남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예비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원을 받으면 안정적이 되지만 그게 한계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지원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생으로 살아남고 싶었달까요.(웃음)”

2011년부터 폐현수막을 이용해 스스로 개발, 제작한 물건을 에티오피아, 케냐, 인도 등에 기부해왔다. 누군가 “그럼 사회적기업이냐?”고 물어, “그럼, 우리는 ‘사회적인’ 기업이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비냐, 인증이냐?” 재차 묻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예비는 뭐고, 인증은 또 뭐냐?” 주변의 권유로 지난해에야 사회적기업을 신청했다. 해외 기부는 기업실적에 들어가지 않아 지역 내에서 진행한 재활용 패션쇼, 인천도시축전 참여 등을 경력으로 내세웠다.

“저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아직은 아름답게 벌고 싶어요. 나중에 정말 생활이 어려워지고 가족이 힘들면 얍실하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우리 세대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취업 문제도 그렇고, 제 주변에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처 없이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무한자원인 쓰레기로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자는 욕심,
장애인, 독거노인 등 직원 4명이 수작업으로 생산

최환 대표는 의류디자인을 전공했다. 아직 졸업은 하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하고 싶을 때 할 생각이다. 학교(인하대) 창업지원센터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다.

예전부터 쓰레기에 관심이 많았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무한자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인천은 특히 현수막 소비가 많은 도시다. 옥외물정비법이 느슨한 탓이다. 제조 공장이 많아 쉽게 생산할 수 있고, 단가도 낮다.

폐현수막은 남구시설관리공단이나 남구옥외물정비과에서 무료로 받아온다. 2012년,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기특한 젊은이’라고 칭찬하면서 선뜻 내주었다. 그걸로 시장바구니도 만들고 신발도 만든다. 모두 수작업이다. 작업실은 숭의동에 있고, 장애인과 독거노인 등 4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 ‘최고의 환한미소’가 제작한 신발, 파우치, 모자 등 / 이재은

 

스무 살 때부터 10년 넘게 살아온 곳 인천,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자

기업하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인천은 그다지 구조가 좋지 않은 편이다. 서울에 의존적이어서 독립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거래처가 다 서울에 있으니 단순하게는 배송비부터 만만치 않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며 인천에서 10년째 살고 있으니 좀 더 인천에서 활동해보자고 생각했다. 고향은 부산이지만 대학생활 포함 20대를 온전히 인천에서 보낸 덕분에 인천은 최 대표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운이 좋았죠. 한 번에 인증사회적기업으로 승인받기 힘들다고 하던데. 서류, 현장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어린애’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다. 2년 전에는 혼자 기획, 제작, 판매를 했으므로 온갖 곳으로 뛰어다녔다. 라면만 먹으면서 일주일을 버틴 적도 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 하나 죽어도 모르겠구나, 눈 하나 깜빡 안 하겠구나, 야속함도 많았다. “환아, 너는 위인이 될 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컸는데 내 꿈을 펼칠 수 없다는 생각에, 꿈을 펼치기에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막 나가자’고 마음을 바꿨다. ‘스마트배너’였던 초창기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듯 싶은) ‘최고의 환한미소’로 바꾼 것이 한 예다.

“친구들한테 장난치고 개그 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중학교 때 자기소개할 일 있으면 ‘최고의 환한미소 최환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제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줬죠. 지금도 회사 이름이 특이하다고 말하시는 분이 계세요. 뭐 어떠랴 싶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내가 가장 중요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무작정 남구청장 찾아가 “도와달라”
‘인천아시안게임 성공기원 자원 패션쇼’로 이름 알려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에서 축제 현수막이나 추석 때 사용했던 현수막을 일괄적으로 보내면 그걸 인조가죽으로 만든 뒤 물건으로 상품화시켜 패션쇼를 진행한다. 아직 개별상품을 판매해서 수익을 얻지는 못하고 기업 홍보류의 프로모션 위주의 사업을 다수 진행한다. 현수막을 인조가죽으로 바꾸는 것은 특허를 받았다. 플라스틱으로 제작할 수 있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름만 ‘사회적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기업, 인천과 같이 살 수 있는 기업으로 남고 싶습니다. 인천에서 서로 잘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해요. (주변 사람들이) 점점 인천을 떠나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삼성 때문에 수원에 가고, 현대 때문에 울산에 가는 식이죠. 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꿔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12년 남구청 대강당에서 개최한 ‘인천아시안게임성공기원 자선 패션쇼’에 참가한 모델이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젊은이의 외침이었죠. 지금의 ‘최고의 환한미소’가 탄생한 데는 이 패션쇼의 영향이 컸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셨어요.” / ‘최고의 환한미소’ 제공

 

‘최환’ 이름 걸고 패션쇼 열고
아프리카에 재봉학교 만들고 싶어

“바라는 거요? 첫째, 폐현수막을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특허를 받고요, 둘째, 전국의 폐현수막 제작 업체와 제휴에서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셋째, 미국의 유통업체와 연계해 박람회, 패션쇼 등을 개최, 우리 물건을 미국에 판매하고 싶습니다. 외국에는 현수막이 많지 않거든요. 이 소재는 우리나라에서밖에 구할 수 없어요.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 무엇보다 제 이름으로 패션쇼를 하는 게 꿈이죠.”

최 대표의 또 다른 꿈은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 재봉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7만원 정도면 오래된 수동 재봉틀을 구입할 수 있는데 그걸 아프리카로 가져가는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붉은악마 티셔츠 몇 백 장이 아프리카의 한 도시에 ‘기부’된 적이 있다. 선의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 도시의 경제성은 마비됐다. 그 옷으로 1, 2년을 버틸 수 있어 의류산업(재봉으로 옷을 지어 돈을 버는)이 얼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떠넘겨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옷을 지을 수 있는 교육이 그들에게는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고, 정말로 다 할 수 있으리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이런 구절이 맴돌았다. “기적 같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간절히 원한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