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학 3기-2강 : 누가 지역사회를 지배하는가?

2강 강의 : 한국의 지역사회는 누가 지배하는가?


강의 : 하승우 박사 <민주주의에 反하다> 저자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고착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일단 인천에 포커스를 맞춰서 얘기를 하겠다. 인천 사람은 아니지만 보는데 한계가 있어도 제가 잘 쓰는 방법이 수치를 추적해서 쓰는 방법이라 그런 것에 대해 얘기를 하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중에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지배’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역사회 구조가 딱딱한 느낌이 드는데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이 지배라는 말을 들으면 좀 그렇긴 한데 지배가 없는 사회면 좋을 텐데,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지배가 없는 사회는 만들기 어려운 불가능한 사회구조에 가깝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추구하는 목적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좋은 사람이 지배하는 것이냐라고 했을 때, 외국에는 좋은 정치인이 있는데 왜 우리는 없을까? 우리 사회가 좋은 정치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좋은 사람, 좋은 정치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좋은 정치인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좋은 정치인이 있어도 그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를 움직이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없앤다면 그 단계로 가려면 중간에 디딤돌이 필요한데 지배, 피지배가 있어도 지배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궁극적 목적은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지배하는 사람들,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구획화하고 있다. 아주 가끔 예전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희소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배를 해오는 사람들은 계속 지배를 해오고 있고 지배을 당하는 사람들은 지배를 받고 있다. 지난 시간에 말한 뽑기제도인 추첨제도 역시 순환시키는 장치였다. 누군가 계속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관직을 맡을 수 있다. 남보다 잘난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만 해야 하나, 자기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자기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사실 고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흔들고 섞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지배하면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지배하는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특정한 누군가 정책결정을 하고, 예산결정을 하고, 성실한 납세자들은 무조건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힘 있는 사람들은 그런데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그런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부분도 덕성으로도 풀 수도 있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소통하고 덕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경험으로 성장하고 훈련되어야 그런 과정이 곳곳에 있어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고정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그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좁혀져 있다.


혹시 주민참여예산제에 참여하는가?


이금남(교육참여자) : 청소년 관련해서 참여를 했다. 참여할 때는 뭔가 나누는 느낌이었는데 결과물에는 반영되지 않았고 그 다음을 구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말한 내용이 사라져서 즐겁지 않았다. 참여할수록 회의적이라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지능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부영(교육참여자) : 나도 비슷한 의견이다. 주민의 의견을 모아서 필요한 것을 올리고 시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참여예산제도가 시도는 좋지만 어렵게 끌고 가는데 그 사이사이 과정이 부실하고 형식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처음 참여예산을 실시한 곳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도입했다. 제도는 들어왔는데 왜 하는지 한국사회에서는 설명이 없었다. 맨 처음 브라질에서 참여예산을 한 이유는 예산이 없기 때문에 시작했다. 예산이 없어서 적은 예산으로 주민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주민이 우선순위를 결정한 다음에 하기로 한 것이다. 브라질은 참여예산을 통해 시장의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로 시작했고, 시민들이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집행하게 만들었다. 돈이 없으니까 우선순위부터 집행하기로 주민에게 권력을 주었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10년 정도 참여예산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조사를 했는데, 처음에 시장만 보면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고맙다고 생각했다가 ‘시장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여예산제의 긍정적인 면은 재정 민주주의로 예산을 합리적 효율적으로 쓴다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의미는 참여 민주주의라고 해서 참여과정을 통해서 의식이 바뀌고,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도 바뀐다는 것이다. 참여구조를 통해 권력사회가 이동한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마을단위로 무리를 지어서 총회에 나가고, 지역사회에서 대의원이 되고 권한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브라질은 예산을 시민들의 힘으로 결정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한국사회는 결정권과 예산을 주민에게 다 주지 않고 있다. 예전에 있던 주민들의 숙원사업비 정도이다. 한국도 10년 정도 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권력구조가 바뀐다는 것에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고 바뀌고 있지 않다. 참여과정이 열린다해도 정해져 있는 참여, 정부가 열어준 참여수준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결정은 별도의 문제로 뭔가 세상이 바뀐 거 같으면서도 또다시 바뀌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지방자치제도가 풀뿌리민주주의는 아니다


우리가 보통 지방자치제도가 되면 풀뿌리민주주의가 실현될 거라고 얘기를 하지만 현재 한국은 그런 상태는 아니다. 원래 지방자치제도의 목적은 두 가지로 분리하는데 단체자치라고 해서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정부로 넘어오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주민자치가 있다. 주민들이 넘어온 권한을 쓸 수 있도록 주민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중요 과제가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있는데 한국은 단체자치는 되는데 주민자치는 잘 안 되고 있다고 평가를 한다. 한국사회는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주민이 운영하고 있나?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기존에 있던 기관이나 사람들이 이런 제도들을 협동하며 많이 간다. 하승수의 <지역, 지방자치, 민주주의>책에서 보면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역의 참신한 인물이 지방의회가 생기고 지역사회 권력구조가 바뀐다는 것이 지방자치 구상인데 실제로 결과를 놓고 봤더니 기존에 있던 관변단체로 불린 사람 들이 지방의회로 대거 들어가면서 예전에는 음성적으로 지역사회를 운영했다면 이제는 공식적인 새로운 직함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움직이며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곳도 있다.

과천시의 경우, 7명 중 두 명은 무소속 위원이고, 과천 풀뿌리 모임에서 두 명의 여성의원이 당선되어 의회에 들어가 있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도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여전히 풀뿌리민주주의까지 말하는 상태까지 가지 않았다. 그럼 왜 가지 않았을까라는 부분이 필요하고, 우리와 때로는 대립되고 같이 갈 수 있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요즘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피로하다는 것이다. 전에는 민주주의 기본이 비판하고 감시하는 부분이 중요해서 지방의회에서 회의하는 모습까지도 방청하는 부분도 많았다. 지금은 방청하기 힘들면 구의회나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가면 회의록이 올라와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요즘 취미생활로 회의록을 열어보는데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민주주의에서 비판의 방식이 중요한 과제였는데 요즘은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무엇을 가지고 소통하고 협력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며 비판과 감시도 분리하면 안 된다. 요즘엔 시민사회 경향이 비판과 감시가 약해져 있는데 소통과 협력만 생각하지 말고 비판과 감시도 같이 가야 한다. 누구를 비판하고 감시할 거냐도 중요하고 분석하는 방법도 많이 있다. 누가 지역사회를 지배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지역사회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세 가지 방법


지역사회를 누가 지배하는지 잘 알려면 지역사회지배구조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우리 지역, 우리동네 정책결정을 누가 내리나? 대통령, 시장, 구청장, 지방의회가 내리는 경우도 있다. 미군부대이전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내려와서 집행되는 경우이다. 중앙정부차원의 권한에서 지방정부차원의 권한을 볼 수 있다. 운영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둘째, 정책결정은 누가 하나? 이 정책을 누가 입안했는가를 볼 수 있다.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가를 정책의 이해관계자를 알 수 있다. 권력자가 보는 게 아니라 운영자가 보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도 정책실명자를 볼 수 있다. 전에는 누가 했는지 몰랐는데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 정책이 집행되고 있는지 누가 이 정책을 입안하는지 알 수 있다. 정책중심으로 살펴보면 된다. 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

셋째, 지역사회 내의 평판이나 명망을 수집하는 방법이 있다. 공식적 문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도 있다. 지역사회의 평판을 알려면 물어보면 된다. 지역유지나 토호들이 있는데 누가 우리 지역에서 힘을 쓰고 있나를 알아보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를 함께 쓰면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모두 하기는 피로한데 집착 강한 사람이 장기를 살려서 쓰면 된다.


일상 속에 깃든 지배논리를 찾아내야 일상의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옥천에 가서 취미생활로 의회에 업무추진비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는데 옥천군민회가 좋아하는 맛집지도를 알 수 있다. 부녀회가 가장 많이 회식하며 먹은 곳, 지나치게 회식을 많이 하는 곳도 알게 된다. 관변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공문서 오타 잡고, 딴 지 거는 사람이 지역사회에 꼭 있다. 민원 계속 넣고, 그런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힘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왜 나를 빼고 하느냐하면서 협상력을 가지고 간다. 마을에서는 자기 이해관계로 가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일상에서 그런 일들이 많은데 이처럼 되고 있는 것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소소한 것들이 실행하면서 가는 것들이 중요한데 일상 속에 깃든 지배논리를 찾아내야 일상의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갑자기 어느 날 재개발이 뚝 떨어지면 몇 년 동안 준비한 것이 잘못 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야 한다. 우리의 주권을 쓸 때가 선거할 때 외에는 별로 쓸 때가 없다. 의미있는 권리로 일상에서 바꿔야 한다.

세계인권선언도 생활에서 별로 쓰지 않는데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참여예산 경우도 힘이 어디에서 나왔냐면 주민 10명이상 오면 한 명이상 대의원을 뽑게 해준다고 했을 때, 동네에서 100명이 가면 10명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힘을 키웠듯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사람과 구조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공무원, 관변단체, 지방정부의 각종 위원회, 각종 직능단체, 보훈단체, 기업, 주민들이 있다. 행사할 수 있는 주체들이 있다. 이주민이나 청소년은 배재되어 있기도 하다. 조금 뒤에 인천광역시의 도시계획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참 깜짝 놀랐다.

어떤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가에 대해 거버넌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거버넌스의 덫’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갔는데 중요한 결정은 그들이 다 내린다. 그런 부분이 맘에 들지 않아서 판을 깨고 나오려니 나오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다. 실질적 권한이 주민들이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정작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교육만 받게 하면서 실질적으로 권한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권한이 주어지지 않다보니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여전히 맨붕에 빠진다. 그러다보니 자치 역량은 없는 게 아니라 역량은 하면서 쌓이는 건데 권한이 없다보니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과정에 제한이 있어서 누구는 안 되고 특정정당은 빠지고 자꾸 빼고 제한을 하다 보니 감시와 비판은 사라지고 견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 좋은 정책의 과정이 살아나지 않아서 마을 민주주의가 못 살아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민자치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민자치회에 했던 사람도 어떤 사람, 누구와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이다. 시에서는 사람의 구성보다는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동별 숙원사업 해결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에서 행정적으로 발굴, 마을사람들이 풀고 나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시가 나서서 하고 싶어하는 형식적인 부분도 있지만 누가 어떻게 하는지 과정이 비어있었다. 한국에는 년 단위로 하는 사업으로 묶여있어서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최소한 3년은 해야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힘들고 내년부터 사업을 한다면 사업을 마을에서 진단하는 것부터 필요하다. 1년 동안 한 해 사업을 해서 평가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1년을 해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주민자치 역량이 뭔가 일을 하면서 생기는데 1년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시에서 목적하는 바와 실제 진행하는 과정에 차이가 날 수 있다. 주민자치역량은 사업과정에서 뭔가 하면서 생기는데 평가도 주민이 진단해야 한다고 했더니 시에서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3개동을 똑같이 사업을 하지 말고 사업과정을 다르게 하자고까지 합의를 했다. 그다음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자치역량이 그냥 쌓이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뭔가 하려고 하고 요구를 하기도 풀어내려고 한다. 실제로 관심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등장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민주주의=이해관계+공공성

공공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논의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문제지만 구조적인 부분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각각의 사안에 대해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다. 한 사람이 한 이슈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도 있고 구조적 문제도 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해관계라고 본다. 이해관계를 숨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각각의 이해관계를 충분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마을에서 우리 편에 있는 사람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마을이 갖고 있는 입장이 사람들마다 서로 각각 다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청소년이나 여성정책에 대해 보수적인 부분도 있다. 모든 사례에 대해 모두 진보적이지 않다. 관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의 이해관계가 드러내도록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 있어도 논의하다보면 반대 입장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여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뭔가 답이 있는 걸로 알고 그 답을 끌고 가려고 하거나 설득하려고 한다. 서로 소통하도록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몇 번을 만나도 서로 설득하기 위해서 만나지 소통을 하기 위해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인천광역시도 재정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물리적 액수뿐만 아니라 세수도 마찬가지다. 옥천의 경우도 그렇다. 재정자립도는 16%, 중앙정부의 지원을 합하면 재정자치도는 60%정도이다. 옥천군이 돈이 작지 않아서 엉뚱한 사업을 하기도 한다. 인천도 마찬가지이다. 인천시를 보면서 성남 다음으로 예상될 정도로 심각하다. 성남은 빚을 갚 아서  다시 돌아왔지만 인천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이다.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데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만 만나기 때문에 그렇다. 규칙이란 것도 합의하는 것이 어렵지만 규칙을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에 대한 규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도 그거에 대해 합의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그것을 만든 경험이 별로 없어서 동의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실패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다. 즉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실패는 구조화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구체적이어야 하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함께 구상하는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때로는 부조리나 비합리와 맞서야 할 때도 있다


민주주의가 낭만적인 것도 있지만 좋은 일들을 만들려면 나쁘게 되어있는 부분을 바로잡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내는 세금을 같이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그리고 구상하는 과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부분이 개선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설마 누가 보겠어?’ 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보고 있어’라는 부분이 전달되거나 확인되면 간접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 지금 현재 예산서에 대해 검색 조회수는 낮지만 조회수가 갑자기 폭증하거나 누군가 계속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민원까지 넣으면 긴장을 하게 된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긴장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사용한다.


한국사회와 민주주의

민주주의(Democracy) : 민중(Demos) + 지배(Kratia)


민주주의(Democracy)는 민중(Demos)이 지배(Kratia)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여기서 민중으로 해석되는 데모스는 지역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민의 민주주의가 원래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데모스에서 불리던 사람들이 보통 아테네에서 발언을 할 때 ‘나는 oo에서 온 oo요’라고 말을 했듯이 지역을 구분했다. 데모스라고 불린 사람들이 어느 지방의 사람인가를 말해야 발언이 생겼는데 그런 사람들이 목소릴 내도록 공론의 장을 마련한 것이었다.

아테네의 민회는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장치 중 하나였고, 배심원제도나 행정관직을 추첨이나 직접 뽑고 함께 어울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150년 정도였다. 아테네가 가장 힘이 강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테네의 숙적인 스파르타가 있었는데 아테네가 육지전은 약한데 바다전쟁은 강했다. 아테네가 계속 전쟁에서 지다가 한 번은 스파르타를 크게 이긴 적이 있다. 스파르타와 전쟁을 이기고도 아테네에 복귀한 후 5명의 장군들이 모두 처형당했다. 그 당시 병사들은 노예가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만 참전을 했다. 보통 전쟁에 이기면 그 나라를 약탈하는 권력도 가졌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전에서 이기기 위해 바다에 빠진 선원을 구조하지 않고 싸운 것에 대해, 아테네 민회에서는 장군들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아테네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이기는 전쟁의 승리는 의미는 없다고 하면서 전쟁에 이긴 장군들을 처형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은 그 때 유능한 장군을 처형시키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했고 싫어했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전쟁에서 승전 장군까지도 처형시킬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는 형식적 과정이 아니라 민회의 권한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처형시킬 수 있는 그 정도의 결정권한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권한은 매우 약한 편이다.


왜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했을까?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의 개혁


그 시대 클레이스테네스라는 사람은 어떻게 했냐면 데모스와 귀족들을 분리시켰는데 결국 사람들이 땅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토지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발언할 수 있도록 하고, 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이 자유와 존엄인데 결국 자기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하는데 이해관계에 묶여 있어서 참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갈수록 많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람들한테는 왜 참여를 못하느냐고 설득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이 묶여 있는 고리를 끊어주는 게 필요하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설득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해구조관계를 바꿔줘야 한다. 아테네에서도 평민들이 민회에 참여를 해야 하는데 귀족들은 다 참석하는데 평민들은 일하느라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계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주자, 실제로 참여를 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기회구조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계속 ‘참여하세요’라고 말로만 하는 당위적 참여는 의미가 없다.


민본주의 (民本主義) :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정도전을 방영했는데 민본주의라는 것들이 있었고 민주주의가 아테네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도 나름 전통도 있었다. 정도전은 민본주의라는 것을 통해 왕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어 놨다. 말은 참 좋다.

정도전의 개혁 정책은 위민(爲民, 백성을 위하고), 애민(愛民, 민을 사랑하고), 중민(重民, 민을 존중하고), 보민(保民, 민을 보호하고), 목민(牧民, 민을 기르고), 안민(安民, 민을 편안하게 하고) 등 민 중심으로 어떻게 사회를 만들 것인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고, 사대부의 기득권과 명분을 앞세웠다 사대부도 왕을 견제하려면 뭐가 필요하냐면 민을 자기들이 대변할 필요가 있었다. 그 힘을 길러야만 왕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지금도 단체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수단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과 뜻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가 그럴 정도의 과정을 마련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힘을 몰아줄 수 있냐라는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잘 안 보이는 것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책임질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마을에서 민주주의를 하려면 결정권한이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돈도 있고, 권한도 있으면 주민이 모인다.

인도의 경우 케랄라(Kerala)주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신분 차별이 심하다. 브라만이 있는 곳에 불가촉천민은 물도 같이 먹지 못한다. 그런 복잡한 구조가 있는데 행정에서는 보통 부작용을 최소화 하고 장치를 마련하고 주는데 인도에서는 주정부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산을 다 주니 첫 회에는 브라만 계급인 지역유지들이 다 가져갔다. 1년을 마치고 나서 동네마다 방을 부쳐서 모두 사업공개를 했다. 그들이 마을 사업을 하는데 이들이 얼마를 가져갔는지 공개를 하니 열 받은 마을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할 바에는 우리가 하자라고 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불가촉천민들이 자기사업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여성위원을 구성할 때 의무적으로 여성과 불가촉천민들의 할당량 30%를 채워 넣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초기에는 망했지만 2,3,4년이 지나면서 주민의 힘이 보여지면서 주민자치역량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봤던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행정이 가지고 있는 걱정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없애는 방법은 행정의 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움직여야 하고, 이런 문제가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그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주정부가 정보를 공개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로비가 있었을까? 공개하면 다 죽는데도 그 힘을 뿌리치고 주정부는 원칙을 정해서 여성과 불가촉천민들이 일을 하도록 이 사업을 이어나갔다. 브라만처럼 이미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 사업을 못하도록 주정부가 막아주고, 이 판을 망가지지 않게 하고 나머지는 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하도록 하게 했다. 사업을 하다가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마을 단위에서 싸움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싸우면서 결국 사람들이 성장하기도 한다. 싸울 할 때 힘을 가진 브라만이 습격하는 것 정도만 막아주는 것으로 정부의 역할이 했다.

한국에서도 소개한 미국의 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과정도 이웃 만들기 과정인데 공무원이 마을회의에서 주민에게 한 일은 장소 잡은 것, 불을 켜고 끄는 역할이었다. 나머지는 주민들이 모여서 하고, 주민들이 하다가 막힐 경우, 전문가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행정이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원을 쓰면서 그전까지는 예산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 본인이 기획하고 돈을 써보면 답이 온다. 평생을 피지배자 입장에서 살던 사람들이 그 과정을 통해서 이제는 지배만 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름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을 하게 되었다.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 들어가면서 브라만과 일대일의 관계가 되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협동조합도 비슷하다고 본다. 지금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일인일표가 식상하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협동조합이 갖고 있는 일인일표가 중요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가질 수 없는 사회였는데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었다. 일인일표가 지금처럼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민감한 사항이었고, 자부심이고 권리였다. 그렇게 되니 참여할 동기가 부여 된다.

우리도 조합원들에게 참여하라고 얘기를 하지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다른 곳도 비슷하다. 협동조합도 크면 클수록 조합원들이 관심이 없다. 조합원들이 바쁜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조합원 운영의 과정 속에 조합원의 이해관계도 있고, 조합원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투명해야 하고 익명성이 없어야 하고 명확해야 한다. 부담스럽지만 중요한 얘기이다. 이것에 대한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이냐를 명확해야 한다. 투명성을 갖고 일을 해야 하는데 보통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투명하게 진행하다 보면 사람의 문제에서 역할의 문제로 넘어간다. 투명하지 않으면 사람과 역할을 일치해서 보기 때문이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가 아니라 그 누구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성인과 청소년의 관계도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서로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되려면?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되려면 꾸준한 학습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공부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지속적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는데 자꾸 하라고 하니 더욱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출발을 쉽게 해야 하는데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노동조건도 안 좋아지고, 휴식도 제대로 보장이 안 되는데 심지어 더 나와서 참여를 하자고 하면 사람들이 불만을 갖게 된다. 휴식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삶을 같이 만들어가면서 때로는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었지만 일터를 마을로 끌어들이고 내가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큰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경험이 의미가 있으려면 큰 경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면서 누군가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 한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은 전망하는 역할을 했다. 정세분석이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예측을 전망을 했고, 현재 하고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분석하기도 하고 예측해보는 시도를 했다. 지금도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예측이 필요하다. 물론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마을에서는 전문가의 역할보다는 우리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민들이 자기 마을의 예측을 하고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우리가 끌어들이게 하나? 그런 거를 어떻게 만들거냐? 오고 싶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 중에서 예산도 중요하고, 권한도 중요하다. 하지만 예산과 권한을 떠나서 여기 오면 사람들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가 되어야 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이 장에 들어오면 저 사람과 같은 동등한 위치를 갖고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뉴욕열전>이라는 책에서 20세기 초반에 서로가 너무 낯설게 느끼고 살 때 협동조합이나 센터에서 잘 된 사례의보면공통된 특징을 들여다 보면 ‘그들이 그 장에 들어오면 그들은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여기에 오면 될 수 있다’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16시간 일하는 것을 말할 때 그 얘기를 듣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하루에 4시간을 자고, 잠을 줄여서라도 이 공간에 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생각하는 장들이 그동안 많아졌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사업에서는 많이 늘어났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도 얘기하고 있지만 그런 장이 마을에 얼마나 만들어졌을까? 여느 민중의 집에 가보면 민중을 위한 사업을 하는 곳이지 민중이 그 장에 들어오면 ‘아, 여기는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이다’라기 보다는 서비스의 수혜자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타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다보면 피로해진다. 여기가 누군가를 의식하고 맞추다보면 즐거운 공간보다는 힘든 공간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민이 누구인가? 민은 주민일 수 있고, 시민이 될 수 있고, 이주민이나 거주민이 될 수 있다. 그 자리에 ‘내가 민이다’라고 들어서서 서로 얘기가 될 수 있다고 하면 민주주의는 서로 민이 되어 주체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너는 누구니까 안 되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결정을 할 수 없어’라고 전제를 하면 이 사람은 그런 공간이 주는 효과가 반감이 된다.

그런 장들이 마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된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권리로 만들면 된다. 누가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지 그들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역할을 보고 이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왔는지 보고, 잘 해 온 것들을 인정해주면 되고, 못하거나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접근해서 같이 권한을 공유하고 같이 쓸 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누군가 마을에서 일할 때 역할분담도 필요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동등해야 한다. 삼일운동을 보면 전문 장마다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고, 통문을 돌리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재수의 난에서 보면 이재수가 통문을 돌리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랑방 전담이 있다. 열심히 마을 이야기를 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사람을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역할을 하면 된다. 민주주의니까 다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려서 하면 된다.

한국사회의 조직구조는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만 관심이 있다. 네가 다 결정하고 가라는 부분은 아니다. 그들은 대표가 아니고 대리인이다. 결정을 할 때 혼자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뽑아준 사람한테 물어보고 안을 결정해야 한다. 정보를 가지고 와서 주민에게 물어보고 결정을 한다.

과천시에서는 과천시민대상으로 설명하고 토론회도 하고, 지역사회의 질문을 하고 합의과정을 묻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인천도 공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인천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찾을 때 마을만들기가 꼭 행정단위로 가야 하나? 어느 동네, 어느 지역이 마을이 될 수 있나? 유연한 경계지점이 있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역사회에 따라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고민이 달라진다. 민주주의는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계속 실현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자 오늘 2강은 제목은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름답게 끝냈다. (웃음)

다음 3강에서는 여러분들이 가장 관심있는 ‘일상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겠다.


[위 내용은 2강 강의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2강 강의내용정리 : 한오봉 (연구지원팀)

사진 : 이광민 (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