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생산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공동생산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덕적도 단호박 연구회> 이현주님 인터뷰


마을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경제적인 자생력을 기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을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덕적도 단호박 연구회>는 단호박을 공동으로 재배·작업하면서 인건비·광고비를 최소화하고, 주민 스스로 역할 분담을 해 가는 주도적인 경제활동을 이제 막 시작했다. 이웃과 함께 일하면서 삶의 공통분모를 늘려 나가는 일만큼 생산적인 일이 또 있을까? 생산 공동체를 꾸려 가며 ‘좋은 관계’와 ‘소득’이라는 일석이조의 마을활동을 모색하는 <단호박 연구회>와 만나보자.


▲<덕적도 단호박 연구회> 이현주 님

“내가 받은 혜택을 지역에 사용하고 싶었어요.”

쭉 인천에서 살아왔다. 간호조무사 일을 하던 20년 전, 덕적도로 두 달간 실습을 나왔다가 남편과 인연이 닿았고, 결혼 후 남편 고향에서 살게 되었다. 남편은 덕적도를 너무 좋아해서 동네일이라면 생계도 생각 않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웃음) 부부는 닮는다고 하잖나. 나도 20년간 여기서 아이들 낳고 키우며 살다 보니 애틋함이 많이 쌓였다. 큰애 대학도 여기서 보냈다. 도서지역에서 대학을 보내기가 쉽지 않은데, 입시를 치를 때 옹진군 차원에서 혜택이 많았다. 입학 전형도 그렇고, 기숙사나 장학 혜택도 많았다. 비록 내 고향은 아니지만 받은 것들이 많다고 느끼니까 이곳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 같다.

“내 고향도 아닌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할까?” 지금도 하는 말이다. 스스로 의아해 하고 있을 때에 큰아이가 “내가 받은 것들을 지역에 환원하고 싶다”, “나는 덕적의 관광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며 문화관광과를 지원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아이를 다 키워 사회에 내보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다시 사회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하니까 나도 여기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것 같다. 덕적도에 있는 것만 잘 활용해도 얼마든지 도전과 성취가 가능하다는 경험 덕분인 듯하다.


정이 살아있는 마을

이곳에는 아직 시골 인심이 살아있다. 누구네 집에 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는 인심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귀중품을 놓고 다녀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고, 차키를 안 빼고 다녀도 된다. 다만 시골 사람들은 한 가지 이슈가 있으면 굉장히 큰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예전에 있었던 굴업도 핵폐기장 찬반문제로 생겼던 갈등이 아직 사람들 정서 속에 남아있다. 입장에 따라 “나는 반대 입장”, “너는 그때 찬성했던 사람”과 같이 사이가 양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것만 아니면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나 배척하는 태도는 다소 남아있지만, 여기서만 통하는 힘이 있다. 정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공동체에 대한 가족적인, 그런 마음들이 있다.


섬에서 난 특산물이 단호박?

육지가 가물면 바다도 가문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산물이 많이 고갈되어 가는 추세다. 그래서 농산물로도 섬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옹진군 차원에서 시범사업으로 단호박을 장려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북도라는 섬에 단호박 연구회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자란 단호박이 육지에 비해 훨씬 맛이 좋다는 소식만 듣고 있다가 견학 기회가 생겨서 구경을 가게 되었다. 해풍을 맞고 자란 단호박이 좋은 이유는 흰가루병이라는 질병을 농약이 아닌 바닷물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의 미네랄 성분이 다수확을 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되고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얻게 해준다고 한다. 뭍에서 단호박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바닷물을 구하러 다닌다고도 들었다. 덕적도 역시 지역적으로 바다와 인접해 유리한 조건이니 단호박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단호박이 재배시 손이 덜 가는 작물인 것도 한몫 했다. 이전까지는 덕적도에 고추농사가 성행했는데, 대량으로 수매를 하다 보니 고생해서 농사지은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다수확을 위해 약을 많이 쓰고, 한곳에서 오래 농사를 지으면서 토질도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비싼 농약 값도 문제지만 어르신들이 고추를 기르고 가루를 만드는 과정이 수고스러운 것도 문제였다.


뒤늦게 적성을 찾다.

곧 단호박 수확이 끝나갈 쯤이면 가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려 한다. 단호박 연구회 회장님이 쌀농사를 많이 지으시는데 쌀농사와 단호박을 연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막걸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왜 울릉도 하면 호박엿이 떠오르지 않나. 가공도 그런 것이다. 대부도에서는 단호박 찐빵을 판매하더라. 그런 것도 시도해 보면 괜찮을 것 같다. 단호박 자체의 단맛이 강해서 여러 가지로 활용해 볼 수 있다.

최근에 막걸리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어서 집에서 담가 마시기도 했다. 한번은 장이 열려서 파전을 만들어 팔고 있더라. 그 날이 마침 막걸리를 거른 날이었다. 그래서 주변 분들과 나누어 마셨다. 그러다가 전통주를 만드는 분과 알게 되었는데, 삼산동 쪽에서 전통주 빚는 법을 가르치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분께 술을 배워서 단호박 막걸리를 만들어 볼까 한다. 내년부터는 사업장이 있으면 직접 만든 술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이 완화된다. 특색 있는 막걸리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

이런 걸 두고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풀도록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아직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워낙 지원금을 함부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제제가 많아졌다. 아직 시집살이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웃음) 그동안 얼마나 잘못해 왔으면 시작할 때부터 시집살이를 시킬까.(웃음) 무엇보다 사회적경제는 공동체 기반이 없이 사업부터 시작하면 위험할 것 같다. 지금 단호박 연구회를 하면서 개인적인 소득은 발생하지 않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서 충분히 긍정적이다.


 

주민들이 만나는 창구 ‘나그네의 섬’

덕적도에는 그동안 주민들이 융화되지 못할 사건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작업을 하기 위해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상설 장터인 ‘나그네의 섬’을 만들었다. 진리 선착장 옆에 있는 이곳에서 덕적도에서 나는 생산품만 소개해 보자고 시작했다. 덕적에는 돼지감자, 둥굴레 같은 작물이 많은데 그걸 그냥 판매하기보다 겨울에는 끓여서 권하고, 여름에는 차갑게 해서 권해 보자고 제안했다. 의외로 관광객들이 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판매량도 많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유대도 깊어지는 것 같다.

옹진군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덕적이다. 1/3정도가 노인이다. 열정은 있지만 나이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나름대로 그분들의 손과 발이 되고, 덕적에 생기고 있는 변화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풀어가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는 엄마로, 아내로 살았지만 지금은 이웃과 소통하며 내가 갖고 싶었던 시골의 느낌을 느끼고,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늦게나마 적성이라는 걸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내가 하는 일은 봉사에 그친다. 혹자는 “도대체 이득도 안 생기는데 그런 일을 왜 해?”라고 묻기도 한다. 처음에는 때 너무 힘들어서 몸무게도 많이 빠졌다. 운영위원장이라는 타이틀만 있지 완전 잡부다.(웃음) 어머님들 대신 힘쓰는 일 하고, 소식통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그분들이 더 이득을 얻게끔 돕고, 나중에는 함께 잘 풀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단호박을 함께 키우고 수확해서 경제적인 효용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덕적에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만나기 시작하다

단호박 연구회를 진행하기 전에는 주민자치위원회 일도 좀 했다. 주민자치센터 예산을 적절히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여론조사를 해보니 어머님들이 발효에 관심이 있더라. 스무 명 남짓 만나서 강사를 초빙해 2달간 발효연구회를 꾸렸었다. 여기서 더 전문적으로 해보자고 13명이 손잡고 서울에 가서 자격증도 따왔다.(웃음) 많게는 70넘은 어머님도 계셨는데, 무척 기뻐하셨다. 단호박 연구회에서는 내가 대표직을 맡는 것보단 농사 베테랑 어른들이 많으니 책임감을 심어 드리고 나는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기로 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맨날 하던 것만 하면서 유야무야 보내지 말고, 우리가 가진 예산을 주민이 필요한 곳에 잘 쓰고 가급적 많이 배우자고 해서 덕적도 풍물단을 만들고, 국화분재 교육도 진행했다. 풍물단은 곧 열릴 옹진군민 체육대회 때 길놀음이라는 환영행사를 한다. 분재 모임은 덕적으로 귀농한 농업기술센터 소장님께 부탁을 해서 자치센터 예산으로 매주 8명이 진행한 모임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니까 유기농 비료 만드는 법도 배우고, 해수로 흰가루병 고치는 것도 배웠다. 박식한 이웃 덕에 다방면에서 배울 수 있었다. 11월에는 국화분재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이렇게 모임을 만든 것은 한번에 7개 리를 아우를 수 없어서 소모임을 통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만나게 하고, 튼튼하게 모임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주민자치위원 하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여러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치위원회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지고 있던 주민 연결망 덕분!

지금 주업은 한전에서 검침 일을 하는 것이다. 10년이 넘게 집집마다 다니면서 검침을 하다 보니 원주민인 신랑보다도 내가 사람들을 더 많이 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웃음) 어쨌든 지나가다가 할머니가 혼자 계시면 말벗도 해 드리고, 다음에 만나서 “고생하는데 물 한잔 마시고 가라” 하시면 좀 더 놀다 가고 그런다. 소장님이 이런 부분을 이해해 주시고 밀어주시는 덕이다. 아마 검침만 하고 말았으면 나도 그냥 그러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옆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도 나를 다시 봐준다. 농사야 신랑에게 배워 가면서 하지만, 서류를 작성한다던가 행정 업무를 보는 것 같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돕는 것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검침으로 만난 사람들이 발효로 만나고, 단호박으로 만나고, 그렇게 연결점이 생긴다. “쟤가 농사를 제대로 짓겠어?” 하던 분들도 아침 일찍 나와서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뢰를 갖는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계신다. 이제는 동네 분들이 이런 것들을 알아준다. “대체 언제 앉아보냐, 쉬기는 하면서 일하냐”고 묻기도 하고.(웃음)


Q) 적성을 찾은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마을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과 보람이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앞으로 덕적도에서 이루고 싶은 것, 또 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굴업도 핵폐기장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슈로 남아 있다. 이 섬 일이 아닌데도 백지화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 있고, 이해관계가 달라서 찬성 편에 서서 소득을 얻은 분도 있다. 동네일을 하면서 호응을 얻는 것도 오래 걸리지만, 쌓인 불신을 회복하는 것은 더 오래 걸린다. 사람들 마음 한켠에 있는 갈등, 고립 등을 나그네섬 같은 창구에서 서로의 물건도 살펴주고, 맛도 모양도 봐주면서 마음을 풀고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리 별로 되어있어서 서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접점을 찾아 연결해 줄 중간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주말마다 새벽 다섯 시에 나와서 청소부터 포장지 하나하나 바꿔드리는 등 사비를 털어가며 살다시피 했다. “넌 그런 일을 뭐하러 하니?”라고 말하시던 분들도 내가 가져온 포장재를 사용하면서 판매가 잘 되고, 손님도 많아지자 나에 대해 말만 무성하던 것들이 점점 나아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열의가 단호박만큼 많았다.(웃음) 덕적도에 결손가정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들 정서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많은데 멀리서 강의 오시는 상담 선생님들은 발걸음 하시기가 어렵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다 크면 그런 상담 역할을 해주고 싶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점차 배워가면서 덕적도에 더 좋은 관계를 만드는 중간 역할을 해내고 싶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