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인문학] 마을의 겨울, ‘동지팥죽’처럼 그렇게


마을의 겨울, ‘동지팥죽’처럼 그렇게 

 


이충현 l ‘동네야 놀자’ 부대표


올해 마지막 마을행사로 어르신 300여분을 모시고 동지팥죽을 나눈다. 가장 긴 겨울밤을 잘 보내시고 새롭게 시작하는 날을 맞으시라는 바람을 동네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새알은 한글공부하시는 어르신들이 만들어주셨다. 함께 드실 전과 잡채, 물김치는 반찬나눔 하는 아줌마들이, 서빙은 아이들이 맡기로 했다. 동네에 ‘동지팥죽’ 플랭카드가 걸리면 지나다니시는 어르신들이 물어오신다. “오늘이여?”

반찬도시락을 찾으러 가면 늘 요구르트나 귤이나 뭔가를 하나라도 주신다.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요구르트지만 뭐라도 주시려는 할머니 마음이다. 일 년 동안 반찬도시락을 들고 할머니에게 놀러 다닌 아이들도 이 요구르트를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는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고3이 되는 녀석들은 할머니와의 짧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자리야 새로운 2학년들이 채우겠지만 정들어버린 이별에 가슴이 먹먹하단다.

한 달에 두 번, 홀로계신 어르신들이 드실 반찬을 만들며 자매가 되어버린 반찬아줌마들, 서로 수고했다며 내년에 만들 새로운 반찬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마을청소, 어르신 이불빨래, 반찬기금마련 바자회, 마을축제 등 다양한 자원활동을 했던 중딩 아이들도 내년에는 더 새로운 자원활동을 생각해보겠다며 수줍어한다.

한글만 배운 게 아니라 틈틈이 배운 노래율동을 뽐내시며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 많은 활동은 안 했어도 서로 더 친해진 것 같다는 이주민들이 자리를 채운다. 마을행사 때마다 온갖 뒷일을 맡아주는 마을형님들, 내년엔 뭔가 더 해보시겠다면 건배를 외친다. 족구를 하면서 알게 된 옆 족구팀이 얼마 안 된다며 의미 있는 일에 보태라고 내민 ‘봉투’보다, 함께 나누려는 그 마음이 좋아서 어깨를 마주잡고 술잔을 부딪힌다. 아이부터 청소년, 청년, 장년, 어르신까지 모두 한데 모여 서로에게 힘주고 마음받는 자리, 마을 송년회 모습이다. 


물을 끓이고 전날 만들어놓은 팥앙금을 풀은 뒤 새알을 넣어 잘 저어준다. 살짝 소금간도 한다. 큰 나무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주면서 새알이 눌어붙지 않게 하나하나 잘 익히는 게 기술이다. 그렇게 동지팥죽이 솥단지에서 하나로 익어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청년, 아줌마, 이주민, 아저씨, 어르신까지 자기들대로 성장하고 서로 부벼대며 살아가는, 마을의 겨울이 그렇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