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파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행복한 아파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사업단> 김효진 총무 인터뷰




아파트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요즘 유행하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골목의 문화가 살아있는 것이 느껴진다. 옆집의 일이 우리 집 일이고, 이사를 오면 떡을 돌리는 것이 으레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인천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동구는 특히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상황인데, 비록 내가 사는 곳이 잠만 자는 곳일지라도 이웃 중에는 그 삶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그런 공동체문화를 살려보고 싶었다. 더더군다나 아파트는 개별화된 정도가 심하기에 더 어려운 처지이니, 필요성이 더 높다.


만나면 현실이 된다!

개별적인 고민만 가지고 지내다가, 우연찮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주로 아파트 주민·동대표 분들이셨는데,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소식을 들으시곤 사업을 활용해서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주민이 공모에 처음 응모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단체(인천평화복지연대)를 찾아와 제안을 하시게 된 것이다. 결국 고민만 하던 개개인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체계화시켜보자는 기획이 생겨났다.

동대표 활동이 참 힘들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늘 있지만 열심히 독려해도 참여율은 저조하고, 처음 동대표가 되신 분은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천천히 함께 걷자

전 현직 동대표분들이 시작해서 그분들이 데리고 온 이웃들과 함께 아파트 주민학교를 열었다. 일단 동구 소재의 아파트마다 대표자회의에 제안을 했고, 그렇게 아파트마다 관심 있는 분들 3~4명 정도가 참여하셨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이런 시도를 해본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1차 교육을 받고 가신 분들이 다음 강좌에 한두 명씩 손을 잡고 오시는 것을 보면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재밌어야 꾸준히 한다. 그런데 모임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걸 유지하기 위한 것들을 해야 하고, 그럼 누군가에는 부담을 지우게 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즐겁게 가기 위해서는 이웃 간의 교류를 늘려 가면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인식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쉬고 싶고 귀찮지만, 쉬는 시간을 나누면 더 즐겁고, 함께하면 더 좋다는 인식을 만든 후에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파편화된 사회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은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아직 공동체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렇지, 이웃 간의 교류가 늘고, 재밌는 일들을 천천히 만들다 보면, 어느 새 함께 걷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각자의 필요를 채워볼까?

동대표 분들이 많이 오시니까 아파트 관련법 같이 동대표로서 필요한 것, 어려운 것들을 내용적으로 채워드리는 <아파트 리더학교>를 열었다. 여기에 더해서 <아파트 주민학교>를 열어 각각 5회, 3회 동안 교육과 워크숍을 섞어서 진행했다. 그런데 아파트공동체의 사례로 선보인 서울에 있는 ‘똑똑도서관’이 반응이 좋았다. 주민들께서는 아예 “개론적인 것 말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주민학교 과정은 기존 과정에서 완전히 선회하여 똑똑도서관 프로젝트로 변경되었다.(웃음)

똑똑도서관은 인터넷 공간을 플랫폼 삼아 그곳에 각자가 가진 책 목록을 올려놓고, 다른 사람이 올린 책을 빌리고 싶으면 사전에 약속을 해서 이웃집 문을 “똑똑” 두드려서 책을 빌려 가는 1인 도서관이다. 입주자들 모두가 1인 도서관의 관장이 되어서 책을 공유하는 것이다. 다만 공유 서재와는 조금 다르다. 아는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책만 주는 것이 아니라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남의 집에 놀러갈 수 있고, 이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요즘같은 사회에서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일, 쉬운 일이 아니잖나. 왜 옛날에 옆집에서 음식을 갖다 주변 빈 그릇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해서 음식을 담은 다음에 돌려주었잖나. 이런 게 왔다 갔다 하면서 이웃 간에 정이 싹트는 것이다. 책을 핑계(?)로 좋은 관계가 꽃피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각자가 가진 재주를 사람책 방식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럼 집이 교육장이 되는 셈이다. 이런 실험들이 늘어나면 어떨까?


오래오래, 꾸준히 하는 원동력

기존에도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아파트 음악회’, ‘퀴즈대회’ 같이 축제나 이벤트를 주로 했는데, 이게 행사를 할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집에 돌아가고 나면 사실 어떤 관계도 남지 않는다는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힘들지 않고 재밌게, 지속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에 마음이 많이 가 있다.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압박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면 충분하다. 다만 교육을 받고 나면 후속 프로그램이 중요한 터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후속작업으로 볼 수 있는 주민 커뮤니티 만들기는 별다를 게 없다. 많게는 한 아파트에서 4~5명, 적게는 2명씩 참여하는 그 분들과 계속 모임을 가져가는 일이다. 우리는 모임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는 정도다. 똑똑도서관의 취지가 돈 없이, 공간 없이도 이웃과 만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 이웃을 초대’하는 환대의 의미가 있는 것이니 작게라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내가 사는 곳과 삶터 주변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하지만 그 관심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대부분 관계나 공동체성 보다는 집값이나 교육문제 같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움직이곤 한다. 이해관계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간의 만남은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멈추기 때문에 지속적이기 어렵다. 이제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사람들과도 만나고 싶은데, 그런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똑똑도서관 프로젝트를 아파트 게시판마다 광고를 붙였을 때 연락이 두통 왔었나? 이런 주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딱 봐도 돈 되는 게 아니니까.(웃음) 일단은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시작하면서 만나려 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서는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어 나가려 한다.


시민단체와 지역의 협력

중·동구 평화복지연대 아파트사업팀에서 커리큘럼이나 강사를 모시는 데에 도움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도와드렸다고 할 수도 없는 게 처음 계획 단계부터 함께 만들어 나갔고, 단체는 잘 할 수 있게끔 옆에서 조력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주민학교는 교육과정이 완전히 바뀌었다.(웃음) 단체가 협력으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아파트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더 잘 아신다. 주민이 주도하고, 단체는 거드는 역할만 한다.

교육 일정과 내용 전체를 바꾸자는 주민 요구는 아직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보통은 짜여진 대로 따라오게 마련인데, 과정 중에 열의가 생겨서 사업계획을 변경한 것은 이번 사업에서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였다. 실제 주민의 의견대로 진행한 덕에 참여가 늘기도 했다.

아파트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다. 어떤 아파트는 자생단체를 끼고 있는 곳도 있어서 수월할 것이고, 어떤 아파트는 개별 주민으로 참여한다. 역동성 면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소소하더라도 자기 지인과 만나서 하면 더 잘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자생단체 분들은 속한 곳이 다양하고, 열정도 대단하셔서 굉장히 바쁘다. 어떤 경우가 더 잘 되고 아니고는 속단하긴 어려울 것 같다.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주민조직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지역공동체 활성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 도시농업 등 여러 사업을 해왔지만, 아파트에서만큼은 쉽지 않았다. 아파트는 철옹성인가? 라는 질문을 늘 갖고 있었다. 동구라는 지역은 특히나 베드타운의 성격이 강해서, 아침만 되면 엄청난 수의 젊은이들이 다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온다. 그래서 잠만 자는 지역에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포기할 수 없었다. 작은 시도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자문을 해 왔고, 그때에 아파트 리더분들과의 인연이 생겨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똑똑도서관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친목이나 끈끈한 관계가 다져질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적인 지향을 표출하는 단계까지 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형태가 자생단체이든, 자원봉사 단체가 되든, 동아리가 되든 상관이 있을까? 나는 다만 이 과정을 잘 밟아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끈끈한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실 있게 굴러간다. 그러한 주민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