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민통선평화마을


<강화 민통선 평화 마을>, 마을 공동체의 첫 걸음을 내딛다


 마을 만들기 교육을 자체적으로 8강을 만들어 주민들이 함께 들으며 마을 만들기 모임을 준비하는 마을이 있다. 신분증을 확인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강화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 강화도 양사면 교산교회가 주축으로 주변 덕화 교회 분들과 함께 모임을 만드는 박기현 목사, 마을 만들기 준비 모임 임시 추진 위원장 이정원 님이다. 우연 아닌 필연으로 만나게 된 한 집사님과의 인연으로 마을 만들기 교육을 시작, <강화 민통선 평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우직한 첫걸음을 걸으려 하는 마을 공동체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왼쪽부터 이정원 님(마을 만들기 준비 모임 임시 추진 위원장), 박기현 목사님 (교산교회)

마을 만들기 교육을 마을 안에서 8강까지 진행하셨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교회 계획이 뭐가 있었냐면 ‘야외 카페를 만들자’였습니다. 여기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만 명이 넘으시니 카페를 잘 꾸며가지고 그 분들이 오셔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만들까를 고민했는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화동·오재곤 집사 부부가 마을 만들기 할 때 마을 꾸미는 회사를 운영하세요. 제주도 가시리 마을을 만들 때도 거기 가서도 마을 만들기를 협조하시고 그런 분이세요.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노화동 집사의 이야기는 단순히 카페 식으로 하지 말고 마을을 위해서 중·장·단기적 계획을 세우는 게 좋겠다 제안을 하시고 해서 우리가 일단 해 보자라는 취지에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특강을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 준비 모임 식으로 해 보자 라고 뜻 모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산 교회와 옆에 덕화 교회와 마을이 중심이 되었고 주로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교인 아니신 분들도 마을 이장님한테 연락을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프로그램 내용은 노화동 집사님이 지금 정석 교수님 아래서 도시공학 박사 과정을 들으셔서 그 분이 짜시고 운영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같이 참여해서 토론하고 이야기하면서 진행이 된 거지요.

– 단체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름을 지으셨나요? 간단하게 단체 소개를 해 주시겠어요.

  우리가 <강화 민통선 평화마을>이라고 이름을 딱 정했어요. 여기에 무슨 이름을 지을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가 민통선 마을이고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고 해서 “평화”라는 이름도 넣어 그렇게 한번 정해본 거지요.

저희는 임시 단체입니다. 교육에 참가한 분들이 모여 협의해서 이름을 만든 거고 8주차 교육을 마치고 마지막 모임 때 참석하신 분들의 투표를 통해 임시로 모임을 결성, 위원장 한 명(이정원), 부위원장 두 분(김미향, 음일수) 사무국장(이우준)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목사님들, 외부에 있는 대외협력팀으로 참석하셨는데 교산 1리, 2리 이장님들까지 포함하여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입니다.

<강화 민통선 평화 마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연령대가 어떻고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계시나요? 성비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나요?

  주로 50대에서 70대지요. 성비는 비슷비슷합니다. 일단 우리 마을을 좋은 마을로 한번 만들어보자, 목사님께서 소개해주신 것처럼 교회에서 특강을 하면서 시작이 된 거지요. 특강을 하고 나서 이런 것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자 하여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저희 덕화 교회 같은 경우에는 작년부터 노화동·오재곤 집사님 부부를 알게 되었지요. 그 전부터 이야기하면서 마을에 대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협의했어요. 개인적인 친분관계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우리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남선교회가 밭을 같이 경작해서 수확물을 같이 일구고 판매를 해서 교회 선교자금으로 쓰고 그랬거든요. 그 분들이 회사 분들이랑 오셔서 같이 수확도 하고, 구매도 해주는 일을 해주시면서 교류가 있었지요. 그게 일 년이 지나면서 왕래도 하고 자연스럽게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거지요.

  노화동 집사님 부부께서도 놀러 와서 일을 하실 생각은 없었던 거지요. 회사일 하다가 잠간 쉬었다 가게 되고 사정상 집을 짓게 되면서 쉬었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활용을 하셨던 건데 마을에서 교류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나중에 자꾸 이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저희가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더 자주 만나게 되고 하다 보니 노화동 집사님 부부께서 헌신적으로 일하게 된 거지요. 교회를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셨고 농촌 마을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마을만들기 관련된 사업을 살펴보니, 마을이 주체가 되고 능동적으로 하는 사업보다는, 외부 컨설팅 회사에서 제안을 해서 찍어지듯이 만들어지는 마을이 너무 많았고, 농촌 마을 사업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이야기 하던 차에 이렇게 인연인 돼서 교산교회와 덕화교회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 준비교육 모임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

  처음에 막상 교육 받는 데 직접 와주시는 분께 강사비를 적게 드렸어요. 그렇지만 강사 분들이 흔쾌히 승낙하시고 좋은 교육을 해 주셔서 초빙한 강사 분들의 도움이 컸지요. 그래서 우리 마을은 이런 걸 통해서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거지요. 가시리 마을 안봉수, 대구대 황병중 선생님,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님 같은 분들이 오셨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진정하게 서포트 해주는 의미에서 한계점 같은 것도 잘 고쳐 주시고 해서 저희가 훨씬 더 균형적인 시각을 보게 된 것 같아요.

– 마을만들기 모임에서 이장님들이 오신다고 했잖아요. 그게 사실은 교회에서 마을 만들기는 충분히 하고 하는 영역들이 많지만 마을로 확산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확장성에 대해서도 이런 강의를 하시거나 과정을 거치면서 고민들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한 고민들이나 생각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일차적으로 지난 번 준비 모임은 마을에 관심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교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로 해서 했고요. 그런데 교산 1리, 2리 이장님이 계신데 1리 이장님은 교회 안 다니는 분이시지만 제가 말씀을 드리니까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승낙해주셨어요. 이장님께서도 우리 마을이 좀 달라져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어요. 지난번 운영 모임 주체는 관심 있는 분들은 지금 추진위원들이 생겨서 앞으로 할 일은 많은 사람들을 참여할 수 있는 같이 할 내용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과제인 것 같아요. 교회 위주로 하면 그런 인식들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 나가느냐. 이게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니까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일을 같이 추진해 나가는 걸로 그렇게 방향이 되고 있는 거지요.

 

– 우리가 회장님이나 모두 다 뛰고 있지만 면장님도 만나 뵙고 앞으로 이제 하게 되면 면사무소 송달도 되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하려고 하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만 저희가 출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서포트 하며 교회가 그런 일들을 관심 갖고 해 나가는 것도 마을을 위한 일이니까 점차 마을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 및 공간으로 만들어가야지요.

                                                                            교산 교회 전경

– 마을에 거점이 생겼네요.

  사람도 만나게 되고 일이 추진되는 과정도 그렇고요. 올해에 교산리 같은 경우에는 마을 축제를 했어요. ‘마을 한마당’이라는 방식으로 해서 1리 · 2리 분들 모시고 교회 주차장 공간에서 윷놀이도 하고 새끼 꼬기도 하고 민속놀이 투호, 떡 메치기 등 여러 가지를 같이 했어요. 그런 것도 마을에서 처음으로 했는데 호응이 좋았어요. 이제 앞으로 발전시킬 내용과 같이 맞물려서 마을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하려는 일들이 하나하나 진행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야 그런 것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는 거지요.

– 교산교회로 오면서 봤는데 군인 두 명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는 등 오고감 하나만 봐도 다른 동네와는 굉장히 다른 곳이라고 봅니다. 이런 특수성이 주민과 만났을 때 더 결속력을 다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우리 주민들 입장에는 검문소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검문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못 들어오니까요. 지금은 검문이 많이 완화되었어요. 평화전망대가 생기는 바람에 신분증만 제시하면 되는데 평화전문대가 생기기 전에는 사전에 미리 신고를 해야 들어오고 웬만한 사람은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어요.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검문소 때문에 발전이 더디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검문소의 위치를 변경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그렇게 될 수 있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대남방송이라든지 그런 것 때문에 관계가 더 나빠졌어요. 그런 면에서는 지역 주민들은 많이 불편하지요. 여기 교동 쪽으로는 대남방송 하는 게 소리가 상당히 커요. 그래서 제가 새벽기도 때 나오면 들리는 정도인데 교동 사람들은 아주 시끄러워 해요. 시끄러워서 신경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점은 발전이 가장 많이 더뎌서 옛날의 마을 모습을 잘 갖고 있고 옛날 생각이 난다고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셔요.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게 불만이긴 한데 외지 분들에게는 그것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는 거지요.

 앞으로는 검문소가 기능이 약화되겠지요. 남북관계가 좋아져야지 나빠져야 되겠습니까.

‘민통선’은 역사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보면 우리 마을의 결점이었는데 우리 마을 만이 갖고 있는 특징 내지는 유산이 될 수 있는 거지요. 마을에 ‘민통선’이라고 쓸 수 있는 마을이 몇 개 없으니까. 그리고 같은 민통선 내에서도 바로 가까운 곳에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없거든요. 분단의 현실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 의미가 남다르지요.

– 마을 만들기 활동영역은 어디까지시고 마을 주민의 참여도는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해주시겠어요.

  거기서부터 조금 차이가 있는 게 뭐냐면 순수하게 교육 모임으로 모인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사업 형태나 그런 것은 갖춰지지 않는 부분이여서 이제서 정관을 만드는 등 법인형태로는 갖춰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활동영역도 토론을 통해서는 굉장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지만 사업의 형태로는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말씀드리기가 사실 어렵지요. 아이디어 수준이고 내용들도 어느 농촌 마을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 60-70 퍼센트여서 아직 확정짓지 못했어요.

– 마을만들기에서 이런 점은 지켜나가고 싶다 또는 하고 싶은 일, 비전이 있으신지요.

  글쎄, 저 같은 경우는 마을만들기에 대해서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참석하기는 했지만 뭐 철학이다 이런 것은 아니고, 어찌 되었던 민통선이 있기 때문에 마을 발전도 더 더디고 낙후된 형편이며 주민들도 점점 많이 줄어들고 주민 자체 의식도 마을에 대한 비전을 갖기 힘든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를 통해서 마을이 변화되는 것이 나타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을의 주민들이 먼저 서로 연결되고 결속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뜻이 먼저 모아지는 게 마을 만들기에서 먼저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시적인 성과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가 여기는 우리 마을이고 힘을 합해서 살아가야 할 곳이고 좋은 마을을 만들어가자 이런 공감대를 넓혀가고 그러한 차원에서 대화가 서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마을 만들기 추진위를 통해 주민들이 매주 만났고 계속 이야기하며 거기에 또 한 사람이 모이고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중요하지요. 사람들이 이제 그런 목표를 갖게 되니까 시각이 바뀌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재산 아니겠습니까.


교산교회를 등지고 바라본 호수 모습

– 마을 분들이 정기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 큰 의미일 것 같아요. 혹시 개인적으로 마을 만들기 활동이나 교육을 통해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에요. 그냥 학교는 아니고 서민층 자제도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를 세우는 게 제 꿈이에요. 교포 학교 컨셉인데요. 여기에 폐교도 좀 있고 해서 제가 이제 아이들을 쭉 보니까 아이들이 살아있는 공부를 하는 것을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시험 보는 영어 말고 인터뷰하고 친구들과 말하는 영어를 가르치고 싶고 영어책도 없고 국어책도 따로 필요 없고 국어 책 대신 책 백 권 읽는 것들이 주제가 될 것이고. 영어권 아이들도 오고 동남아권 친구들도 오고 일본인 교포 2세나 3세 중심으로 한국의 생활을 맛보도록 해서 교환 학생들이 한국에 오면 같이 영어로 말하도록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지 않은가. 철학의 측면에서는 영어로 성경을 가르치는 게 좋은 생각이고. 그렇게 공부하다가 대학을 가고 싶은 아이들은 대학을 가고 해서 혼자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하게끔 하고 싶어요. 마을 사업과는 상관없이 그런 생각을 해 오고 있어요.

– 마을 만들기 모임에 함께 하는 단체나 교회, 동네가 있으신가요?

양사리에 기독교 연합회가 있어요. 그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서 10개 리의 모든 마을들을 아울러서 합니다. 지금 계획은 마을 만들기가 한 두 사람에서 움직여지면 나중에 참여하기가 힘드니 지금 생각은 다 같이 할 수 있는 구조로 가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행정기관을 한번 방문했고요.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걸 말씀 드렸습니다. 주민자치센터 회의실 공간을 활용해도 되냐는 요청을 드렸습니다. 노인회, 청년회, 이장단 그리고 지역 정치인들을 포함해서 저희의 후견자로 지원해서 같이 만나 뵙는 등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 마을 만들기 강의를 들으시면서 느낀 점이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마을 만들기 일로 추진사업단 선생님들이 직접 오셨는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하면서 속 이야기를 다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직접 하셨던 분들과 협업이 돼서 이야기를 해 보니까 명과 암이 항상 존재하는 걸 알았고 이 분들이 고생들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좋은 일로 시작하셨는데 자기가 취하는 것도 없는데 뒤에서 욕먹고 집에 가서 혼나고 부인에게는 인정 못 받고 자기 일도 못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으셨더라고요. 결과를 내신 분들은 결과를 냈으니까 덮어지지만 결과를 잘 못 내고 유야무야된 경우에는 후유증들을 앓으시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에 돈이 들어오는 경우입니다. 지금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에서는 돈의 규모가 크지 않지만 정부 관련 마을 살리기의 경우에는 5억, 10억 이렇게 들어오니까 사람들은 나는 얼마만큼 1/n로 가져갈 수 있을까 또는 사람들은 이런 돈이 얼마나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또 중요한 건 항상 방관자들이 있고 결과만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더라고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정서적인 아픔을 많이 겪더라고요. 방관자였던 분들이 자기가 다 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는 등 그런 데에서 인간관계의 고통들이 있더라고요. 처음 스터디 할 때는 장밋빛이 많았는데 깊이 생각해보니까 장밋빛으로 보면 절대 안 될 일이고, 돈이 들어와도 마을에서 성숙하게 서로 잘 믿어가고 신뢰적으로 쓰일 수 있는 구조가 되지 않으면 돈을 받는 게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돈을 받는데 일장일단이 있으니까 마을 만들기를 하는 사람이 먼저 성숙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해 보니까 처음에는 어떤 사업을 해볼까 그런 생각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을이 좋은 마을이 될까, 여기 사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는가. 그런데 외부에 돈을 안 받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몇몇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봤을 때 우리가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몇 사람이 작은 일부터 해보고 관계 쌓고 시각도 함께 갖고. 그리고 시간을 더 들여 조금 더 큰 사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지어 농촌체험마을 하셨던 분인데 일곱 시간 동안 저를 감금하고 점심도 안 드시면서 저한테 강의를 하셨어요. 저보다 열정적인 선생님을 만나서 너무 감사하게 배웠습니다.

(웃음)

  돈이 들어오면 공동체가 더 깨질 수 있으니까 마을 만들기 목적은 마을을 세우는 일인데 돈 안 되는 사업을 먼저 하면서 결속력을 먼저 해 다져나가고 그런 것이 다져진 상태에서 일을 서두르지 말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지금은 마을 만들기에서 교회가 중심이지만 교인 중심이 아니라 교회 안 다니시는 마을 분들이 스스럼없이 참여하실 수 있는 것을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과 선생님께서 그리고 있는 마을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넷이거든요. 이 아이들이 “여기 살면 좋겠네, 시집 장가도 여기에서 가고 그런 게 더 좋겠어요, 아빠.”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실현되려면 마을에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들이 일어나야겠지요. 여기에서 출퇴근을 할 수는 있겠는데. 우리 집사님은 큰 걸 기대하시는데 최종적으로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웃음)

  우리 아이들이 대학원 다니고 대학 다니는데 그 아이들이 빠져나가니까 밑에서 올라와야 하는데 올라오는 아이들이 없어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초등학생도 많지 않아요. 마을만들기를 하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나갔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고향에 대한 향수는 다 가지고 있지만 당장 먹고 살기 힘드니까 바깥에 나가서들 삽니다. 그렇지만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귀농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럽니다. 강화는 여러 가지 좋은 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마을 공동체가 잘 세워지면 나갔던 자녀들이 돌아와서 “우리가 마을을 지키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마을 분위기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만들기가 이뤄지면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다들 고향에 오고 싶어도 기반이 없으니까 못 오는 거지요. 도시 생활이 너무 각박하잖아요. 도시 생활이 얼마나 힘들어요. 마을만들기가 잘 이루어지면 여기 고향이 아닌 사람도 올 수 있는 거고 앞으로 언제까지 휴전선이 걷히지 않지는 않을 것입니까. 통일이 되면 강화가 북한과도 연계가 되고 배가 다니고 육지에서도 그러한 땅이 될 텐데 강화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앞으로는 많은 변화들이 있을 건데 마을 만들기를 위해서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해 나가는 거지요.

–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저희가 2단계 사업을 시작하면 마을만들기에서 확산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아요. 강사 지원도 그렇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같은 레벨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오셔서 교육을 해 주시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교육지원이나 그런 것을 요청 드리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초보 단계이고 걸음마단계니까 많이 도와주셔야지요.

 마을만들기 준비 모임에서 마을 공동체 주민들과 함께 찾아낸 우리 마을의 유형 · 무형 자산 찾기

  교산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만들기 교육 강좌를 통해 재조명 된 <우리 마을의 유형 · 무형 자산>이 걸려 있었다. 마을 공동체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겸손히 말씀하시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화 민통선이라는 지역적 특수성 이외에도 강화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자산을 바탕으로 하는 <강화 민통선 평화 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갈지 다음 인터뷰가 기다려진다.

글/사진,인터뷰 정리 홍보지원 양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