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앙시장 2세경영자가 들려주는시장살이

<정미반찬> 조정미 님, <진영봉투> 이준영 님


  처음 가는 길은 무조건 ‘돌다리도 두들겨서 가라’라는 성향이라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 청년 2세 경영자들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이 조심스러웠다. 요즘 같이 스마트폰으로도 위치를 찾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버스노선을 보다 말다 하다가 주변 지도를 인쇄해서 찾아가게 되었다.


  5월 19일, 때 이른 무더위로 뜨거워질 무렵 12번 버스를 타고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시장 주변을 둘러봤다.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은 아파트와 저층 주거지가 함께 있는 길목에 자리 잡은 시장이었다. 11시, 그리 일찍인 시간은 아니지만 시장에는 손님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점포들이 널찍하게 자리를 펴고 있었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종 모형물이 시장곳곳 아케이드 안에 설치되어있다는 점이다. 이곳저곳 걷다보니 우연치 않게 중앙시장 안에 있는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 지원센터에 가게 되었는데 소원의 종이 자리 잡아 있었고 소원지가 있어 내가 원하는 소원을 적어놓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 모습

 



▶ 소원의 종과 소원지

  <정미반찬>의 2세 경영자인 조정미 님과 통화를 하니, 남동생 분이 대신 전화를 받아 시장으로 들어와 롯데쇼핑을 지나 옆에 있는 반찬가게로 오라고 하셨다. 점포의 수가 적지 않은 터라 찾기 어려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찾았다. 가게에서는 한창 열무를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조정미 님은 진열된 반찬과 김치를 손님들에게 파는 참이라 조정미 님의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진영봉투>의 2세 경영자인 이준영 님과 통화를 하여 시장지원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시장에서 일하다보면 같은 나이 또래를 만나기도 힘들고 서로 장사하며 가게 손님 상대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다고 조정미 님이 말했다.


<정미 반찬>의 조정미 님은 어머니께서 시장이 생길 때부터 24년간 반찬가게를 하셨고, 자신의 이름을 딴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진영 봉투>의 이준영 님은 자신의 이름 준영과 여동생 이름인 진희의 앞 글자를 딴 ‘진영’이 가게 상호가 되었다.


서구 정서진 중앙시장에 대한 소개를 해 달라 부탁했다.

“중앙시장은 규모가 크고 일직선으로 상점이 있어 손님들이 편하시고 물건 종류가 다양한 편이에요. 다른 시장을 구경하면 여기는 물건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저는 이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그 당시 활발했던 시장이 거북시장이었어요. 지금은 상권이 많이 쇠퇴하였지요. 그런데 중앙시장은 유일하게 상권이 살아남았어요.”


  100개 남짓 되는 점포는 대부분 식자재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다. 마트도 갈 필요 없이 시장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기 때문에 청라지구에서도 오는 손님들이 있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근처 마을 주민들은 중앙시장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중앙시장 상인 분들의 연령대는 타 시장보다 젊은 편. 40대 초 중반 ·50대의 상인들이 가게를 운영한다.

  조정미 님과 이준영 님께 중앙시장의 장 ·단점을 물어보니,


“주민과의 소통이 있어요. 시장지원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오가면서 노래도 하시고. 이벤트도 있고, 어린이 날 같은 기념일에는 빠지지 않고 행사가 있어요.”

“중앙시장에 한번 오셨다가 다시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 반찬가게 손님들도 집이 멀리 있어도 또는 이사 가셔도 꾸준하게 찾아오세요.”


  장점 이외에도 단점은 있어 다른 시장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아 장사가 잘 되는 데에도 규모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의 목소리도 있고 단점은 아직까지 모르겠고 바뀌어가며 단점을 찾기보다는 개선을 해 나가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왼쪽부터 <진영봉투> 이준영 님, <정미반찬> 조정미 님




  <정미반찬>의 조정미 님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면서 시장 일을 배웠다고 한다. 제일 많이 팔리는 품목은 김치이다. 기타 밑반찬 역시 판매하지만 김치가 맛있어서 사러 오시는 분들이 많단다. 가게는 조정미 님을 비롯한 어머니,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식구끼리 운영하는 중이다. 아침에 가게를 여는 시간은 9시에서 문 닫는 시간은 저녁 9시이기는 하지만 손님이 늦게 온다고 연락을 하면 그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을 닫는다.

 어렸을 때도 어머니 일을 도와드렸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어머니 가게 일을 도와 드렸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여자는 직장을 다니는데 한계를 느꼈다 한다.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반찬가게일이 여자에게는 전문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29살이 되던 해에 회사를 그만 두고 가게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진영 봉투>의 이준영 님은 비닐봉투 가공 인쇄를 가업으로 하고 있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8시까지 일을 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 쉬는 날 없이 일을 한다. 올해 나이 서른. 스물넷에 군대를 전역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한 2년 정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후 26살부터 시작, 이제 5년차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경험이 많았는데 그게 좋지 않았다. 이준영 씨가 일을 많이 해도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적고 하니 차라리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 노후에 도움이 되고 동생 학비에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냐는 판단 하에 가업을 이었다.


  하루 12시간의 일, 쉬는 날도 없이 시장 가게에 문을 열어야 한다. 시장에서 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준영 님은 “제가 보통 직장생활을 했으면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관계도 맺고 그런 게 있었을 텐데. 지하에서 가공 일을 하루 10시간을 일하니까, 주로 50대 거래처 사장님들, 다 아버지 연배 분들만 만나게 되어요. 그게 힘든 것 빼고는 고충이 없어요.”

조정미 님은 “개인 시간이 없는 게 제일 커요. 시장이기 때문에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헛걸음하시지 않게 하루라도 문을 닫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제 인간관계가 틀어지기도 해요. 친구들을 만나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어요.”


개인 여가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에서 일을 지속하는 힘은 무엇일까.


“제가 열심히 하면 가업을 잇는 것이고 여동생이 마음껏 공부하게 되는 거니까 그게 보람이 있어요.”

“가게에 오시는 저희 손님이 덕분에 큰 일 잘 치뤘어요, 라는 이야기 들을 때 좋아요. 저 멀리 강원도에서 우리 집 반찬 맛있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는 분이 있어 감사하고요.”


정서진 중앙시장 상인 분들에게 도움을 받는 적도 많이 있단다. 보통 직장문화에는 없는 중앙시장 만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어 많이 돌봐주시고, 배려해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장사할 때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데 트집 잡는 손님부터 시비 거는 손님까지 한 귀로 듣고넘겨라 라고 다독거려주시기도 하지만 잘못된 점은 “네가 잘못한 거다” 라며 따끔한 소리도 하신다.


 




▶ <진영봉투>에서 일하는 이준영 님


일터가 어머니· 아버지의 가게가 되면서 일상에 변화된 점은 무엇일까.


  조정미 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랑 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가게에 있어요. 가게가 제 일상에 1순위가 되었어요.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날 손님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요.”

이준영 님은 “하루하루 너무 빨리 지나는 것 같아요. 4-5년이 짧게 느껴져요. 평일에도 일하고 쉬는 날이 없어요.”


일상에 변화와 함께 2세 경영인들이 시장으로 오면서 달라진 점은 어떤 점일까.


 “시장 내에서 2세 경영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예전 전통시장 이미지처럼 지저분하다, 물건 찾기 힘들다, 이런 것을 벗어나려고 노력들을 많이 해요. 여기 두부 가게도 2세 경영으로 바뀌었고 시장 상인층이 젊어지니까 뭐라도 하나 바꿔보려는 시도들이 있어요. 2세들이 다른 것을 해볼까, 라는 생각들을 많이 해요.”


 시장에도 변화가 있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니까 주상복합처럼 거주민들이 일상의 쇼핑을 중앙시장으로 하러 오는 느낌이 강해졌다고 한다. 곧이어 시장 주변 공터가 개발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아케이드도 없는 시장이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했던 곳에서 벗어나 시장지원센터가 열리고 시장 내 방송도 있단다. 대형 마트에 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 <정미반찬> 가게 전경

그렇다면 청년상인 2세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장사를 할까.


  조정미 님은 “반찬을 위생적으로 맛있게 해 나가고 더 크게 나가서 제 이름이 걸린 반찬가게를 열었으면 해요.”


 이준영 님은 “아버지, 어머니와 지금처럼 오래오래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묻자, 일반시민들이 이 기사를 많이 보았으면 한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더 좋은 게 없다며 홍보를 부탁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사진을 찍기 위해 들린 <진영봉투>. 40-50대 남자 분들이 쉼 없이 생산된 봉투를 차량에 싣고 계셨다. 소금꽃이 필 만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밝은 웃음으로 반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정미반찬>에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바쁜 와중에도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는 조정미 님을 보니 마음 한켠이 찡해왔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 없이 열어야 하는 시장 일을 때로는 당차게, 때로는 패기 있게 하는 청년 2세 경영자를 만났다. 그리고 전통시장 역시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시장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점점 깨어지고 새싹을 보기 위해 마을과 시장은 그렇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대형마트에 굴하지 않고 오래된 시장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하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반가웠다.



P. S 두 청년의 마을살이 

 

이준영 님의 마을살이 이야기


  이준영 님은 시장 바로 옆에 산다. 시장 옆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부모님과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지금은 따로 나와 독립해 살고 있다.

  예전에 살던 곳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주변과의 교류는 없는 아파트 살이와는 달리, 시장 바로 옆에 있다 보니까 시장 한복판에 사는 느낌이란다. 일할 때나 아니면 퇴근하거나 보는 사람들은 시장 사람들이라서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느끼는 게 다르다.

  시장에서는 개인적인 일로 선반을 하나 짠다든가 자전거를 수리하다든가 도색을 한다든가 그런 일이 가끔 있다. 아파트에 살 때는 할 수 없던 일들을 하다보면 손이 다 모인단다.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용접도 해 주시는 등 도와주시는 부분이 참 많다.

  앞으로 마을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은 역시 시장에 관련된 일이다. 요새 마트나 다른 곳들을 보면 인터넷으로 많이 판매가 되기도 하는데 재래시장은 그런 게 활성화되지 않아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으로 물품 구매가 가능하게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조정미 님의 마을살이 이야기


 조정미 님의 마을은 연령층이 다양하다. 젊은 사람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고 시장이 있어서 그런지 이웃들 간에 소통이 잘 되는 편이란다. 서로 필요한 물건은 대신 장도 봐 주시는 분들이 계실 정도로 정이 듬뿍 넘치는 곳이다.

 조정미 님이 사는 마을을 추억한다면 어떨지 묻자 지금 살고 있는 우리 마을 자체가 추억인 것 같다며 시장 골목이 어릴 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음을 이야기해주셨다.

  마을은 지금도 계속 변화 중이고, 조만간 개통하는 인천지하철2호선이 제일 크게 체감하는 변화다.

                                                                                                                            글
·사진, 인터뷰 정리/홍보 지원 양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