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에서 발행하는 마을신문 <놀던 동네 늬우스>


<놀던 동네 늬우스 팀>


  중구 신포동에 <놀던 동네 늬우스> 라는 동네 신문이 올해 3월부터 발행하고 있다. 동네 신문을 만들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신포동을 기반으로 모이게 된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는 분끼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밥만 먹고 끝나는 게 아닌 함께 모인 사람들이 공유한 신포동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을 신문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라는 제안이 나와 30개의 제호를 골라 선정된 신문의 이름은 <놀던 동네 늬우스>다.

  창간호 멤버는 신포동에 적을 두고 있는 분들로 3대 째 성광떡집을 운영하는 이종복 님, <흐르는 물>이라는 오래된 LP를 가지고 카페를 하시는 안원섭 님, 재즈 카페를 30년 이상 계속하고 계시는 허정선 님, 클래식 앙상블을 운영하시는 아이 신포니에타 조화현 님, 중구청 앞에 카페 팟알을 운영하시는 백연임 님, 다인아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윤미경 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20대부터 신포동에서 작업실이 있었고 사진작가이신 류재형 님이 같이 모였다.

  신문을 발행하기 위한 예산은 관이나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 하는 것이 아닌 신포동에서 일을 하시는 신문창간 멤버들이 회비를 걷어 만든다. 신문의 읽을거리나 인터뷰 등 신문의 콘텐츠를 선정하는 데, 지나치게 거시적으로 또는 이슈를 토대로 선정하는 것이 아닌 주변에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들 또는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의 이야기들을 정하여 꾸준히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신문에 대한 모든 배달은 인편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는 10-20부 정도 드려 가게에 비치하거나 다른 분들과 나눠볼 수 있게 배려한다. 집필진들 역시 각자의 가게에 놓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거나 손과 손으로 전달되어 본다. 간혹, 다른 지역에서 관심이 많아 우편으로 보내주길 희망하시는 분들이 계시나, 사람의 손으로 전한다는 원칙은 깨지지 않고 있다.

–<놀던 동네 늬우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마을, 동네”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놀던 동네 늬우스> 창간호에도 잠깐 그런 글을 썼는데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지내며 사실은 저도 도화동에 조그만 마을에 살았거든요. 골목을 끼고 슈퍼에서 만날 만나고 문방구에서 만나고 그 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놀이도 했지만 싸움을 하기도 하고. 골목이다 보니까 앞 집 애가 집에서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면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고 옆집에 색시가 집을 나가서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없으면 동네 아줌마가 데려와 실제로 밥을 준적도 있고 쌀을 준적도 있거든요. 서로서로 눈치껏 이야기 안 해도 저 아저씨가 일을 못 하는구나 이런 집이 있었거든요. 동네에서 뭐 미워한 적도 있지만 때 되면 밥도 주고 쌀이 없는 것 같으면 쌀을 주고 김치를 하면 김치 두 포기 갖다 주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런 과정 안에서 사실은 배우거나 누가 가르쳐주고 메모하고 익힌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서로 나누고 양보하면서 필요하면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 친구도 나한테 도움을 받고 주기도 하고 그렇게 성장을 했어요. 그게 몸에 배어 어르신이 버스를 타면 일어나고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있으면 인사하며 저는 그렇게 성인이 되었어요. 그런 게 동네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꼭 책상에 앉아서 줄쳐가면서 1번은 뭐고, 2번은 뭐며 매너는 이런 거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는 동네에서 매너교육과 예절과 함께 사는 그런 방식을 하루하루, 일 년 이렇게 부딪히면서 갈등하면서 해결하면서 나도 도움 받고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체득해 오고 그렇게 스무 살이 되었어요.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다음에는 나도 필요하면 도움을 주고 굳이 기승전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굳이 기부했다, 좋은 일했다 공표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그게 삶이었고, 생활이었고 우리의 일상이었고, 그 중심에는 동네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마을공동체가 살아야 되고 동네가 동네로서 다시 유연하게 움직여야 된다는 것이에요. 골목길에 불을 안 밝혀도 한시가 되면 누구인지 알고 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저 사람이 일이 힘든지 술을 많이 먹었는지 아는 등 그렇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이 다시 회복되는 운동 내지는 그런 활동들이 되게 많이 필요하다고 봐요.

– ‘신포동’이면 마을이나 동네의 느낌과는 다르게 상업적 시설이 많잖아요. 원도심이기도 하지만 ‘동네’라는 범위가 신선했습니다. ‘동네’라는 범위를 넣어서 신문을 만드신 까닭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포동이 왜 동네일까요?

  엄청난 의미로 이걸 우리가 정한 건 아닌 것 같지만 단지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을 함께 한 분들의 경험과 추억이 합의되는데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던 것 같아요.

  ‘마을, 동네, 이웃’이라는 단어들이 굉장히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하나, 세련된 다른 표현으로 다 바뀌면서 70,80년대처럼 이웃사람, 이웃친구, 동네, 같은 학교, 윗동네, 아랫동네, 윗마을, 아랫마을 등이 통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었고 그게 암묵적으로 범위를 나누는 ‘큰 길 건너는 우리 동네’, ‘너네 동네’ 이런 경험적 구분이 있었는데 사실 현대에 오면서 명확하고 합리적인 도식적인 분할이 되면서 애매모호한 것에 대한 거부, 이런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사실은 ‘동네, 마을’ 단어가 갖고 있는 매력이 오히려 그게 아닐까? 사실 ‘동네, 마을’이라는 말은 굉장히 칼이나 연필로 선을 긋듯이 굉장히 단절되고 냉정한 그런 구획은 아닌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동네’나 ‘마을’이라는 단어 안에는 ‘공유’라는 것이 함께 들어가 있는 거지요. 다들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던 차였어요.

  ‘동네’라는 말을 여러 분들이 같은 경험 안에서 이야기하면서 ‘우리 동네, 놀던 동네.’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들은 여기 와서 혼재되어 있는 지역이기는 해요. 신포동이 주거, 상업의 영역과 관광, 행락 이런 것들이 혼재되어 있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의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의식주를 다 해결하는 하나의 마을로 본다면 그게 원도심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신도시 또는 새로 정리된 아파트 단지나 이런 개념이 아니라 원도심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그 안에 시장도 있고 옷가게도 있고.

  우리가 표현을 해도 이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자립 또는 자급자족이라는 측면에서 동네에서 모두 사서 쓰는 이런 방식이 통용되어서 신포동은 매력적인 동네라고 어떻게 보면 훌륭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 <놀던 동네 늬우스> 창간호, 2016년 4월에 발행했다

 – 점차 종이신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종이신문으로 발간하신 까닭은 무엇인지요? 또한 신포동이라는 지역과 신문이라는 매체의 결합은 어디에서 생각해 내신건가요?

  ‘종이매체’라는 게 발전은 못하고 퇴보하는 건 맞고 그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는 사양이에요. 사소하고 작은, 이런 데에서는 미시적으로 보면 사실은 오프라인의 방식, 종이를 이렇게 만지고 종이가 푸석푸석 소리를 내는, 인편으로 주고받는 데서 오는 그런 연대 공감이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오히려 세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소식들과 같은 거대담론은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통해 보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요.

  하지만 동네 소식지는 오히려 종이매체를 통해서 서로 주고받고 만지고 서로 호흡하고 뉘앙스를 함께 읽고 이런 게 더 효과적이다 라고 봐요.

  마지막으로는 종이매체의 경제적 부담도 사실 적기에 여러 가지를 봤을 때 작은 영역의 매체로는 오프라인의 매체가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 매체, 언론에 대해서 굉장히 거대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소박하게 이야기하면 뉴스레터, 소식지. 이런 방식이었다는 거지요.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미 휴대폰, SNS 방식으로 우리는 1인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거든요. 우리는 누구나 모바일을 통해 자기가 뭔가 어필을 하며 언론 안에서 두드러지기도 하고 나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이 공유를 하면 여론이 되어가기도 하고 이렇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신문’이라는 매체가 어디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약간 19세기 방식인거지요. 그런데 모바일에서 미디어 활동하는 것은 열려있지만 오프라인으로서는 우리의 상식이 경직되어 있거든요. 저는 ‘소식지’라고 정해도 상관없고 ‘신문’이라고 정해도 상관은 없는데 우리는 ‘신문’이라는 단어가 주는 해석이나 방식도 지금은 이제 좀 더 열리고 편안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문’이라고 달았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감은 중요한 자세인거지요. 우리가 일기 쓰듯이 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 <놀던동네 늬우스>창간호 멤버들이 모여 편집회의를 하는 중이다.

– 집필진이나 발행인분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은 것 같고요. 다른 점은 다들 활동영역이 다르다, 잡(job)으로서의 일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며 연령대도 다르고. 그래도 다른 점은 그렇게 별로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 2호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는데 나눠보자면 사람, 아티스트, 스페셜 칼럼이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기사를 선정하시나요? 이번 2호에는 신포시장 <신신옥> 사장님이 전면에 나와 있더라고요.

  일단 저희가 콘텐츠는 신포동을 중심으로 우리가 공유할 만 한 분, 어떤 공간의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했고요. 당분간은 저희도 모인 분들이 전문필진이거나 전문 미디어 일을 하는 분들은 아니기 때문에 이슈 파이팅보다는 스토리텔링이나 그런 것들로 채우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서 신문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분들, 신포동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는 분들이 두 영역이 공감하고 공유할 때까지는 조금 더 편안하고 흐뭇하고 소박한 이야기들도 지면을 만들자, 이런 게 초기 편집회의 할 때의 방향으로 정했거든요.

– 앞으로 신문에는 어떤 내용들이 더 실리고 독자들에게 어떤 신문으로 기억되었으면 하시나요.

  일정 시간까지는 저희가 좀 더 안정화 될 때까지 그리고 신포동에 있는 분들이 “<놀던 동네 늬우스> 그거 괜찮아, 볼만해.” 라는 평을 들을 때까지는 그분들이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편안하고 신포동에 숨어있는 그러나 우리 모두 독자를 포함해서 이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컨텐츠를 찾아내고 그걸 지면에 싣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지금 사실 ‘신포동’이라는 장소성 때문에 인천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 있는 분들이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신포동이 인천 안에서 핫 플레이스로 부각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의견들을 많이 주세요. 조금 더 언론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는 지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신포동의 정책이나 방향이나 이런 것이 거론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지금처럼 소박하지만 우리가 편히 만나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의견들이 있지요. 의견은 저희가 일단 받고요. 저희가 조금 더 실력이 갖춰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신문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또는 경직에서 벗어나 우리가 함께 나눈 추억을 쌓는 <놀던 동네 늬우스>는 출발 자체가 좋다. 가뿐하되,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운 지면을 보는 즐거움은 소소하다. 거대담론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생활밀착형인 동네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사람 사이를 잇는 또 하나의 길이다. <놀던 동네 늬우스>가 사람들 사이에 정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선물 같이 매달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양지나(홍보지원)

사진 : <놀던 동네 늬우스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