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네”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영성마을운영협의회>

“안동네”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영성마을운영협의회


        조관식(영성마을운영협의회 대표), 김진순(총무),

김영미(4통장), 엄재호(12통장), 이진성(17통장),

이강선(상우회 회장), 송상면(경로당 회장)

  사람들 사이에서 ‘마을’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심리적인 거리감 때문일까? 어느 순간 사람들이 함께 살고 호흡하고 때로는 부대끼는 마을의 모습 보다는 내일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거점이 전부가 되었다. 마을에 대한 정주의식을 바라기가 힘든 사회적 구조 속에서도 마을공동체를 다시금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영성마을운영협의회 분들과 통장님들을 삼산2구 노인정에서 만났다.

  영성마을운영협의회에서 추진하는 일 중 하나가 오래된 경로당을 새로이 지어 동네 어르신들에게 보다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경로당과 함께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를 만들어 드리는 일을 계획했다. 삼산1동보다 영성마을, 그리고 마을 분들이 쓰시는 표현 그대로 ‘안동네’에서는 마을 살이에 어떤 바람이 일고 있을 지 궁금했다. 덧붙여 주민들을 위해 통장 일을 하시는 분들의 마을 이야기도 듣고자 했다.



<영성마을운영협의회>에 이르기까지


영성마을운영협의회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김진순 – 3-4년 전에 추진하다가 정식으로는 2015년 12월 6일, 노인정에 모여서 주민들이 초기 창립을 했어요. 운영위원회를 결성해서 지금 대표님 3분, 임원진 12명에서 15명이 운영하고 있어요. 시에서 원도심 주택사업을 하면서 여기에 55억의 지원금이 떨어졌었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협의를 해서 노인정이 오래되다 보니, 새로 지으면서 우리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건물을 만들자, 이렇게 해서 계획을 했습니다. 일단은 도로정비, 가로등, CCTV 정비를 하고 35억이 남은 것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서 운영위원회가 결성되게 되었어요.


 
  

▲ <영성마을운영협의회>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영성마을운영협의회가 생기면서 마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조관식 – 우리 지역은 2001년부터 재개발‧재건축 지역으로 12년 동안 묶어져 있다가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집값 급등과 빌라 같은 다세대주택이 성행했어요. 그런데 시나 구에서 재개발‧재건축이 힘들다 해서 2012년에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포기각서를 내게 되었습니다.

재개발‧재건축의 틀에 있으니 구에서 아무런 혜택을 볼 수가 없었어요. 하다못해 도로를 깔아 달라, 보안등 설치를 새로 해 달라 해도 제재가 너무 많더라고요, 재개발 2구역을 해제하면서 우리도 구의원분들한테 자문을 구하다보니 마을 가꾸기에서 ‘원도심’이라는 것을 얻게 되더라고요. 여기에 대해 절차상 도움을 달라고 한 결과, 바로 시 쪽에서 50억, 구에서 5억해서 예산이 55억이 나왔는데 여기서부터 애로사항이 많아져버렸습니다.


  우리 동네가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한 12년을 묶어져 있었는데 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좋아지는 것을 하겠다 라고 이야기를 할 때 주민들과의 이해관계가 빨리 안 되어서 인천광역시 측에서 황순우 교수님과 학생들이 알림과 가가호호 방문을 두세 번하면서 이런 사업을 합니다 등등을 갖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뒤로 보람이랄까? 한 사람, 두 사람씩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운영협의회가 생기면서 주민들과 대화를 하고 매월 우리 2층에서 워크숍을 해서 플래카드도 걸고 나와서 한번만 나와서 들어보시라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회의 결성이 되니까 30, 40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시가 준 55억이 아니라 우리가 주민들의 뜻에 따라 워크숍을 하면서 3회 차부터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뭐가 필요한가, 뭐가 꼭 있어야하는가” 워크숍 때마다 의견을 계속 받다가 보니까 필요한 안건이 30, 40개로 늘어버리더라고요. 이 예산을 갖고 실행할 수 있는 안건과 할 수 없는 안건을 좁혀나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전선을 아래로 넣어 전주가 없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이 의견은 55억 갖고 시에서 할 수 없는 안건이었어요. 어느 한 사람의 안건을 배제하는 데 있어서 안건을 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안건을 낸 분을 회의에 참석하게 해서 그분께 우리가 한전 쪽에 알아보니 돈이 얼마 정도 든다를 알려드리고 한전에 가서 공사비용이나 기타 등등을 물어보고 그 자료를 얻어 와서 안건을 냈던 분께 보여드리고 정리를 해서 내려오게 되었지요.


  이런 식으로 안건을 좁혀가면서 제일 첫 번째 마을 안건 중에 노인정에 동네 작업장이 있어서 우리 어르신들이 조금이나마 부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주민들이 안건을 내 줘서 그 안건을 갖고 워크숍 때 좁히고 좁혀서 우리 작업장과 노인정, 도로를 다 포장하는 것까지 해서 크게 다섯 개의 안건으로 좁혀졌어요. 첫 번째는 우범지역에 CCTV가 더 필요하다 해서 2대에서 6대로 추가로 냈고, 그전에 보안등이 전주 위에만 걸려 있었는데 전주 필요 없이 거리 조정을 해서 가로등 설치를 했으며 도로도 깔았습니다. 이러다보니 1차에서 3차까지 공사를 했어요.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를 알리면서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주민들의 관심들이 많아졌어요.


   
▲ <영성마을운영협의회>에서 제 5기 주민자치인문대학 현장 사례 탐방 중에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보내주셨다.

영성마을에 대한 통장님들 이야기


영성마을 또는 삼산 1동 동네 소개를 해주신다면 어떻게 해 주시겠어요? 삼산 1동은 살기에는 어떻고, 이런 점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걸 이야기해주세요.


이강선 – 촌 동네에요. 시골스럽고 정이 있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인천에서 제일 못사는 동네였어요. 하지만 인천에 수출4공단이 생기면서 시골에서 여공들이 올라와 소 기르던 외양간이나 잠 잘 데가 없으니까 칸만 막으면 세가 나갈 정도였어요.

그 때는 수돗물도 아니고 우물을 썼지요. 그 때가 여기가 제일 발전했던 때였어요. 그래도 여기 살면서도 저 동네는 못 살 동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진흙이에요. 완전히 마사가 나와요.


이진성 – 저희도 타지에 들어와서 몇 년 살다가 안건데, 이 동네가 옛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짓는 마을이었지요. 그런데 현대화가 되면서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농사지으신 분들도 있지만 생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주로 계십니다.

삼산 1동에는 공원이 없어서 아쉬워요. 아파트에 작은 단위의 공원이 있긴 합니다만 주민들이 전체적으로 쉴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원이 아직까지 형성이 안 되어 있어요.


김진순 – 영성마을은 아직까지 농경사회가 남아 있어 본토박이가 여기에 많아요.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아직까지 정이 있어요. 밖에 나가면 정이 없는데 여기는 인정이 있어요.

옛날로 말하면 삼산동에 ‘상우회’라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서 살던 분들이 상(喪)을 당하면 쌀을 나누고 이런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심이 좋다, 후하다, 이렇게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은 별로 없는데 인구가 많아요. 통장들이 39통까지 있어요. 부평구에서 최고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통장님들이 동이 많아지니 업무량이 많아지고 임대주택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아서 나라에서 오는 지원이 부족해요. 쌀 나누기 이런 거 할 때 항상 부족해서 다 100 퍼센트 못 하는 게 그런 게 아쉽지요.


이진성 – 타지에서 오는 분들도 많고 원주민들이 계셔서 이 분들의 융화가 제일 문제인데 처음에는 안 이루어진 면도 있었지만 점차 좋아지는 형세입니다. 전에는 무관심하게 아침저녁으로 출퇴근만 하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동네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워낙 지역은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는 자꾸 늘어나니 포화상태에요. 교통 문제가 심각하고요. 교통은 사통팔달 다 틔어있는데 자꾸 인구가 늘어가는 추세여서 주차난이 크지요. 차는 많으니 불법 주차하게 되고 위험도 따르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좋아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좋아지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영미 – 저는 영성마을에 대해 잘 몰랐어요, 같이 통장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 처음에는 솔직히 관심을 갖기 힘들었어요. 4통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그러다 알고 보니 이런 일이 있다고 조금 도와달라고 해서 영성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동네 발전을 위해 회장님이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주부로서 장보기에는 일단 삼산 농산물 시장이 있어서 편하고 사는데 불편함은 크게 못 느끼고 있어요.




마을의 어려움도 많이 보시고 통장 일 하시면서 힘드셨던 점은 무엇이고 보람 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이진성 – 저부터는 통장하기 전에는 동네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점차 나아졌어요. 제가 봤을 때 아파트 통장님들은 그나마도 일하시기가 편하지요. 여기 영성마을 같이 단독세대가 많고 세든 사람이 많으면 문을 열어주시지 않아요. 집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호응을 안 하니까 고지서, 전달사항 갖다 주는데도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그러나 통장 일을 1,2년 이렇게 오래 하다 보니 얼굴을 알게 되고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하게 되고 웃게 되고 그러다보니 조금씩 보람이 있지요.


김영미 – 저 같은 경우에도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아파트 담장 뒤에 큰 차들이 대놓고 안 좋은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민원을 넣어 담장 공사를 했어요. 화단에 담벼락 공사를 잘 해서 지금은 성공해서 주민들이 너무 잘했다고 인사 받고 칭찬해주고 최고라고 해요.


엄재호 – 저는 삼산동 와서 산지가 꽤 오래되었어요. 강원도에 88년도에 올라온 게 결혼해서 잠깐 부천 가서 살다가 다시 삼산 1동으로 왔어요. 처음 이사 와서 살 때 미래타운은 하나도 없었고 현대아파트 지을 때고 그전에는 여기를 안동네라고 불렀었지요. 시골 논길 밖에 없었어요. 삼산동은 지금도 인천 구역상으로 보면 제일 끝에서 변두리에요. 부평구 측에서도 넘어가면 부천이고 계양구다 보니, 미래타운 들어섰지 아파트가 쭉 들어서다보니 옛날 안동네를 유지하고 있는 동네는 여기 밖에 없어요. 주공아파트 뒤쪽에 포장마차도 늘어서서 사람들이 술 먹고 싸우고. 저도 그런 것을 많이 봤는데.

그 때 제가 자율방범대를 하면서 순찰 돌다 보면 많은 걸 보는 등 저도 그런 세월을 겪어서 이 동네를 살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삼산 1동에 대해서 좀 많이 알 수가 있지요. 그 때보다 생활환경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동네는 옛날 골목골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동네니까 아무래도 교통이 불편하고 주차난이 심각하고 그런 게 많지요.

저는 삼산 사거리에 있는 성당 앞에 담당하는 통장이거든요. 성당에 “요셉의 집”이라고 해서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하지만 통장일 안 하고 그냥 살 때에는 어려운 분들이 사시는 줄 몰랐어요. 통장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일을 알게 되고 지나가면서 몰랐던 분들도 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도 제가 인사하게 되고 하면서 우리 마을을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안동네”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영성마을운영협의회가 생기고 어떤 모습의 마을로 되기를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순 – 살기 좋은 마을 만들면 좋은 게 아닌가요? 우리가 마을공동체를 하면서 다른 동네 마을 만들기 현장답사도 해보니 장단점이 다 있더라고요.

이왕이면 주민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어르신들은 항상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까 어르신들도 이사 언제 가냐고 관심도가 높아져서 올해 안에 어르신들이 계실 곳을 잘 지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늙어서 죽기 전에 좋은 노인정에서 살아보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웃음)


이진성 – 살기 좋은 동네도 물론 좋지요. 근데 나는 우리 세대 말고 다음 세대가 다시 찾고 싶은 동네, 편안하게 범죄가 없고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을 만들어서 외부에서 우리 동네로 이사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런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조관식 – 노인정과 공동작업장을 같이 하려는 모든 과정을 주민들과 협의가 잘 되어서 그 때부터 동네 모든 분들과 소통이 잘 된 것 같아요. 이러니 앞으로 우리 동네가 정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줄 수 있는 다정다감한 동네가 되지 않을까.

지금은 노인정 건물과 마을회관이 없는 동네에요. 하지만 이번 기회로 우리 마을회관이 생기면 부녀회도 생길 것이고 청년회도 생겼으면 좋겠고. 마을주민들과 소통을 잘 해서 모든 게 이루어지면서 우리 동네 삼산1동이 안동네가 아니라 옛날식으로 “동네”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불렸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엄재호 –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좋지요. (웃음) 실제로 우리가 건물설계도 및 준비를 여러 차례 해서 설계변경도 되고 완성이 거의 되었는데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났으면 좋지 않을까. 그 건물 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짓기 전에 우리가 의논해야 할 사항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차근차근해서 만들어야 되고. 아무튼 건물이 빨리 지어져서 노인정이 반듯하게 되어야 하는 등 좋은 방향으로 건물을 썼으면 좋겠어요.


이강선 – 어떤 마을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건물을 잘 지어서 우리가 욕 안 먹는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끼리 서로 모여서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해서 다 해놓았는데 나중에 참가도 안 하고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이런 거 했니 저랬니 말들이 안 나오길 바라는 거예요. 좋게 잘 끝나서 잘 됐다 이런 소리만 들으면 다행이에요.


송상면 – 지금부터 8월 달까지 기다리니까 공사가 제대로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늦어도 너무 늦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모르겠어요. 어떤 마을이 되고 안 되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 지역에 마을회관을 잘 지어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조율이 되어서 운영을 잘 할 수 있는지 그것도 걱정이 되고요. 좀 힘들 거예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영성마을운영협의회 대표 조관식 님은 마을 탐방을 통해 몰랐던 것과 생각 안하고 있었던 것을 가서 보면서 많이 배우셨다 했다. 많이 배우다보니 구청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훨씬 수월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성마을운영협의회 분들의 노력과 통장님들의 협력 아래, 영성마을에 노인정과 공동작업장이 함께 있는 주민 커뮤니티 센터가 잘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관식 님의 말씀처럼 “안동네”가 아닌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그냥 “동네”라는 이름이 주민들 사이의 이야기에서 두런두런 회자되기를 바란다.





                                                                              글
· 사진 : 홍보 담당 양지나

                                                                                   사진 : <영성마을운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