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_”강화 귀리촌 청년회”

2017 12월 마을탐방인터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되었으면

강화 귀리촌 청년회를 만나다

 

 

강화군 삼산면 석모3리 상봉산 인근에는 귀리촌이 있다. 지역 형상이 거북이 알을 닮았다고 하여 “구란”에서 귀리촌으로 마을 이름이 생겼다.

귀리촌에는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우리나라 최고의 밥맛을 자랑하는 고시히카리의 주 재배지로, 각종 쌀(멥쌀, 찹쌀, 누룽지 쌀 등)외 사자발약쑥, 고구마 등 여러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2017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사업에 처음 참여한 마을공동체로, 강화 귀리촌 청년회를 만나 이야기를 청했다.

강화 귀리촌의 자랑거리는

자랑할 거리가 너무 많다. 귀리촌 자체가 자랑이다. (웃음) 여기는 대대로 농지 소유를 많이 하고 있다. 2만 평씩은 농사를 짓고 있는 부농이고 부촌이다. 옛날에도 보릿고개가 없을 정도였다.

쌀이 제일 좋은데 ‘고시히카리’로 초밥을 만들 때 쓰는 명품쌀이 온다. 오염지역이 없어 쌀이 드넓은 곳에서 나오고 몇 십미터 파고 들어가도 돌 하나가 없다. 자체도정공장이 있고 강화 석모도 섬쌀로 나가지만 거의 가정집에서 바로 사 간다. 수매보다는 자체 판매 비율이 높은 셈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모내기할 때도 아주 재미있었다. 여기 사물놀이가 경기 내에서는 으뜸이여서 구성지게 소리를 해서 아주 좋았다. 다만, 가구 수가 상당히 많았는데 많이들 떠났다.

귀리촌 청년회의 그동안 활동 소개를 한다면

4H 클럽에서 젊은 사람들이 활동하다가 세월에 흐르다보니 많이 줄어들어 청년회로 점차 바뀌었다. 예전부터 주변 하천 청소부터 시작하여 마을정비사업을 주로 일 년에 한 번씩 했다. 청년회라고 해도 60세가 넘어도 포함한다. 열일곱 명에서 열여덟 명 정도 활동한다.

상봉산 입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경유하여 등산객들이 귀리촌에 방문하게 하려는 이유는

마을이 전반적으로 노령화로 인해 대대손손 내려온 향토가 존폐기로에 서 있다. 대안으로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왕래하게 해서 활력을 불어넣고 농가 소득으로 연계했으면 한다. 많은 후손들이 귀농귀촌하여 마을을 지켜가며 잘 살아가기 위해서다.

‘한가라지’에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등산로로는 해명산이 알려져 있고 보문사나 ‘한가라지’에서 인적이 멈춘다. 등산객들이 우리 마을에 오게 해서 우리 마을에서 자랑할 만한 먹을거리 장터나 농작물을 판매했으면 한다.

방 온도로 치면 반대편 마을은 아랫목인데, 여기는 냉골이다. 석모도에 다리가 놓이면서 만 칠천 대 차가 들어왔었다. 마을 어귀에 먹을거리 장터를 만들어 향 좋은 농주도 만들어 팔고 순댓국도 팔아 어르신들 소일거리는 물론, 소득을 내어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게 하고 싶다.

지원사업에서 철쭉꽃길을 조성하시려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청년회에서 노력봉사를 많이 했지만 예산이 빈약하다보니 미터 수가 별로 안 나왔다.

진달래 동산은 전국에 천편일률적으로 많다. 영취산 진달래도 유명하지만 우리 진달래꽃은 더 예쁘다. 개미골 능선에 서해 낙조와 이북 연백평야, 개성의 송악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조망대나 전망대를 만들고 싶다. 그러면 등산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어 귀리촌 쪽으로 발길이 옮겨질 것 같다. 주변 인프라를 차곡차곡 만들어 놓고 싶다.

귀리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아직까지 섬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불편함은 없었다. 다리가 생기면서 많이 해소된 편이다. 하지만 요즘 주말에 관광객들이 여름 성수기 때 많이 다녀서 농기계가 다니는데 불편함이 있었다.

위락시설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가 전부 보존 관리지역으로 묶여 있어 짜장면 집이나 통닭집도 못 연다. 동네에 식당이 없다.

농사를 지으려면 기본적인 기계가 있어야 하는데, 콤바인 하나가 6-7천만원 된다. 2억 정도 기계장비를 장만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농사꾼이 2억 소득을 내려면 얼마나 힘이 드나.

농지는 석모3리 자체가 56만평을 갖고 있다. 다른 동네보다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 정도 더 갖고 있다. 하지만 젊은 층들이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대대손손 이 동네에서 살 수가 없다. 동네에 사람이 몰려서 농사도 짓고 조화롭게 해 나가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농업만으로는 답이 없다. 공동체가 운영하는 상업시설도 필요하다.

앞으로 귀리촌이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요즘 사회가 참 각박하다. 우리 귀리촌은 그래도 낫다. 다른 리에서 마을총회를 했다는데 힘들다하더라. 옛날부터 석모3리는 오늘도 많이 모여주신 것처럼 단합이 잘 된다. 어르신들도 지금까지 농사를 짓는데 이 수익 가지고는 힘들다. 석모도가 유동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마을공동으로 16만평의 땅이 있으니 차차 조건을 만들어가며 귀리촌 마을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는 길, 한 분이 말씀해 주셨다.

“사무장님의 막내가 아홉 살로 마을에서 제일 어린 아이입니다. 귀리촌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마을공동체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며 전통을 이어나가고, 후손이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는 등 삶의 터전을 가꾸는 초석을 만들고 싶은 강회 귀리촌 청년회의 소박한 바람이 노력만큼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