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기 주민자치인문대학 <자치하는 인간Ⅱ>1강 ‘자치하는 인간은 자유롭다’

8월 23일(목) 오전 10시, 주민자치인문대학 10기 <자치하는 인간Ⅱ>가 제물포스마트타운 7층 B회의실에서 열렸다. 첫 번째 강의는 ‘자치하는 인간은 자유롭다’를 주제로 주민자치와 거버넌스의 개념, 분권의 지향과 마을공동체적 관계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했다.

지방자치제와 분권

주민자치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개념이다. 지방자치제도에 의해 설명되고 보장된다. 그런데 지방자치라는 말은 사실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지방자치제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구성된다. ‘단체자치’는 예를 들어 인천시장이 시 행정이 인천시를 다스린다는 개념이고 자치의 주체가 명확하다. ‘주민자치’ 역시 주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것으로 주체가 명확하다. 그런데 지방이 스스로 어떻게 지역을 다스릴까? 정확히 말하면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지방자치제도라는 말이 맞는 것이지 지방자치는 맞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말에 불만이 많다. 법으로 표현된 건 어쩔 수 없이 쓰지만 지방이라는 말은 중앙을 의미하는 서울이 있고 그 외 변두리가 있다는 구분을 나누는 차별적 용어라고 생각해 가급적 ‘지역’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는 알다시피 부활했다. 1991년도에 지방의회선거를 구성했고 1992년에 자치단체장을 시민이 선거로 뽑은 후부터 지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방의회를 놓고 보면 지금 민선 8기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강하고 지방의회 영향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 민선 7기라고 표현을 많이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인천 시장, 구청장은 주민들의 대표가 아니다. 행정의 대표다. 주민들의 대표는 의회다. 분권과 자치 실현이 핵심적 목표라기보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다보니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단체자치중심으로 법이 설계가 되었다. 주민자치는 굉장히 협소하다. 모든 사람들이 지방자치제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되어있다고 교과서에 실려 있음에도 우리는 주민자치의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최근에 분권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현하겠다고 했으나 더딘 편이다. 민주적인 성격의 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에서는 분권을 중요시 한다. 분권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행사하던 권한을 그냥 이전하게 되면 전부 자치단체장의 권한으로 이전이 된다. 여기서 위험한 건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의 권한이 막강하다. 그 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권한을 누구에게, 얼만큼 분배할 것인가?

지역정부로 권한을 이전할 때 자치단체장과 의회, 주민에게 어떤 권한을 분배하고 또 누가 이 권한을 사용하게 할 것인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줄 것인가,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고민이 없다면 분권이 지역의 민주주의 발전, 주민 참여 활성화에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분권정도는 2할 자치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지방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체예산이 전체예산의 20%밖에 안 된다. 국가처리 사무와 지역처리사무를 보면 예를 들어 인천 미추홀구에서 처리하는 사무 중 국가 처리는 70%, 자기 지역의 고유한 처리 사무는 30%정도다. 70% 업무는 주로 경력증명, 주민등록관련 업무, 세금 등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 사무인 것이다. 보통 일본 등 주민자치제도가 잘 발달한 나라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 비중이 꽤 크다.

업무가 늘어나면 그만큼 예산도 늘어나야 되는데 세수를 개정하지 않으니 중앙정부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눈치를 보면서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세수를 개정하는게 정말 중요하다. 분권을 강화하려면 이 권한을 넘기는 대신 세금을 지방세를 어느 정도 이전해야할 것 인가 함께 고민해야한다.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 학교다.

지방자치제와 관련해 중요한 제도라고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학자가 토크빌이다. 미국에 방문에 지방자치제를 돌아보고 책을 하나 썼는데 사람들에 회자되는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 학교다.” 라는 말을 했다. 미국이 대통령이 모든 걸 결정하지 않고 주지사가 결정하고 민주주의 시민학교라고 말했을까? 아니다. 토크빌은 학교나 지역에서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직접 결정하더라. 그래서 그걸 통해 시민으로 역량, 능력을 실천적으로 강화시키는 학교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시민의 어원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다. 시민이라는 말은 직접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생한 고대그리스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에서 처음 생겼다. 노예, 여성, 16세 이하 어린이, 가난한 사람을 제외한 남자 중에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시민은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수행했다. 당시에도 지도자는 있었다. 그러나 그 지도자를 추첨으로 뽑았다. 그렇게 뽑힌 정치지도자는 결정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정권한은 시민이, 집행권한만 갖고 있었다. 시민은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시의 교육 목표도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었다.

왜 지금 민주주의, 주민자치인가.

30-40년 전에 유럽을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민과 정치지도자 학자 등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민주주의 위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민주주의가 그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 주권제민의 의구심이다. 민주주의는 아테네가 로마한테 멸망하고 이 지구상에서 없어졌다. 근대에 시민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부활했으나 그때 시민은 부르주아지다. 상공업을 통해서 일정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재산은 스스로 벌었는데 정치적 의사결정권은 자신들한테 없었던 것이 불만이었고 그것이 시초가 되어 시민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사람들의 민주주의가 부활됐던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를 부활시키는 게 적절한가라는 의문에 장자 크루소는 지금 같은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유지되는 민주주의를 진짜 민주주의로 볼 수 있냐는 비판을 한다. 선거 외 기간은 피통치자. 지배받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그런 의견은 소수였고 다수가 지지해서 지금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발생하게 되었다.

정치지도자의 권한과 권력은 원래 누구 것인가? 우리의 것이고 일정 기간 빌려주는 것이다.예를 들어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 천장에 물이 뚝뚝 떨어져 집수리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보자. 세입자가 마음대로 집수리 할 수 있나?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가옥주와 상의를 해야 한다. 이게 빌려쓰는 사람의 의무다. 그런데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들한테 물어보는가.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주인이 맞는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다.

둘째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훌륭하다고 인식한다. 초기산업사회에는 정치지도자가 결정을 하고 시민은 보좌하고 열심히 일했더니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걸 체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은 1970년대 이후 후기사업사회들어서니 사회가 그렇게 성장하지 않았다. 고실업 저성장사회로 들어서니 과거의 방식으로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삶은 편리하고 과학은 발달했으나 우리의 삶의 질은 왜 팍팍할까? 사회학자들이 말하기를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건 바로 부모세대보다 자식세대가 가난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 순간적인 현상이 아닐 확률이 높은 것이다. 민주주의 좋은 정치체제라면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거기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보다 많이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의사결정은 삶의 질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다. 정치인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결정하는 것에 있지 않은가. 시민들이 정치지도자들과 동등하고 권한을 분배받아 그 사회를 다스리고 운영하는 공동의 통치자도 참여하는 것만이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는 합의에 도출했다. 그게 거버넌스라는 말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버넌스’는 민관협력쯤으로 사용한다. 민관협력은 집행과정에서의 협력이다. 그 안에 권한은 전혀 들어가지 않다. 결정은 여전히 행정에서 갖고 있고 주민들은 집행하는 과정에만 협조한다는 것이다. 민관협력과 거버넌스의 다른점은 핵심적으로 권한에 분배를 전제로 한다. 협치라는 말로도 대신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민참여제도가 도입되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1989년도 브라질 남부 작은 도시에서 만들어지고 급속히 확산되고 수천 개 도시에서 하는데 예산을 결정하는데 시민이 참여한다. 권한을 많이 가지려면 그에 맞는 의무가 필요하다. 그 의무는 참여다. 그래서 자치하는 인간이 필요하다. 권한을 분배해야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쟁점이 되는 것은 어떤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시민에게 넘겨야 하는 게 강론이다. 논의를 할 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은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의 기준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민자치하거나 마을공동체 활동을 할 때 그와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게 자치하는 역량을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가가 고려되지 않으면 사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주민참여 제도와 권한이 우리자치역량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는가와 연동 될 때 주민자치는 실현되고 실천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는 정치의 주인이어야 될 시민들이 관객으로 전락해서 뒤에 머물러 있다. 관객은 무대에 난입하면 안된다. 박수를 치거나 야유를 하는 정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주민자치도 갈 수가 없다. 이 핵심은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만 꼼지락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국제적인 관계망에서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참여해서 해결할 수 있는 지역에서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자. 우리 동네에서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하고 그것이 옆 동네로 퍼지고 그렇게 모이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할 수 있다.

삶의 질을 높아질 수 있는 방법 중 중요한 지향이 공동체적 관계라고 본다. 우리 삶을 옥죄는 이유는 파고 들어가면 공동체적 관계가 파괴되고 각자도생, 경쟁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이루려고 하는 게 공동체적 관계를 복원해서 우리 끼리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흐름과 문화, 사회적 현상을 만드는 것이 주민자치를 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1강에서 ‘거버넌스’는 가치가 담겨 있는 권한 분배와 참여자의 자치역량이 함께 강화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2강은 8월 30일(목) 오전 10시, <자치의 기반 마을거버넌스>를 주제로 제물포스마트타운 7층,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진행한다.

글 교육담당 / 사진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