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주민자치대학_1강 ‘마을, 왜 자치하려고 할까, 마을과 자치의 관계’

4월 5일(목) 오전 10시, 제 9기 주민자치대학 <자치하는 인간Ⅰ>이 지원센터 교육장에서 열렸다. 35명의 참여자들은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이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기대 하는지 발표했다. 인천의 각 구에서 마을활동가, 주민자치위원, 아파트관리소장, 주민 등 다채롭게 참석했다.

주민자치를 왜 하려고 하는가?

이 호 강사(더 이음 공동대표)는 주민이 지역사회에서 권한을 가지고 주도해 나가려하는데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시사점을 주는 사례를 통해 왜 마을공동체를 자치의 지향과 목표로 삼아야하는지, 주민자치와 마을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 학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왜 마을=공동체인가?

우리사회를 바꾸기 위한 모든 활동은 절박성이 녹아들어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하고 자원 과소비와 불균형,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령사회문제, 빈부격차, 자본주의와 경쟁이 만들어낸 주류논리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러시아 학자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대조하며 일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는 다른 공동체적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공동체’는 신조어다. 그 만큼 공동체적 관계가 파괴됐고 마을에서 주민들의 관계가 그립기 때문에 화두가 된 것이다. 우리사회가 공동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공동체의 파괴,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사회가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절박감이 있기 때문에 말을 쓴다고 본다.

마을과 지향

지향은 관계를 보다 더 깊게 만들고 확대하는 과정

마을이 공인된 어원은 없으나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는 어원이 ‘마실’에서 나온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이웃의 집에 편안 옷차림으로 갈 수 있는 물리적 범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 보면 마을은 소통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일 것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개인의 자율성보다 전체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을이 전체주의가 될 수 있고 폐쇄적이라고 비판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몇 백 년에 걸쳐 공동체는 개인의 자율성과 전체의 이익을 상충하지 않고 공동체적 사회로 바꾸려는 ‘지향’을 갖고 있다고 반증했다. 공동체는 우리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을 가장 큰 지향과 목표로 삼았다. 또한 공동선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 우리사회가 공동체를 용인할 수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환경으로 변해가지 않으면 결코 공동체는 성공, 지속가능 발전하지 못한다고 깨달았으며 우리사회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어야 개별 공동체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개별 공동체 한두 개를 만들지만 우리 공동체가 지역사회로 확대해 내갈 것인가라는 관심과 지향을 갖고 있어야하고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수다가 중요하다. 같이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컨설팅을 받거나 지원사업에 제안서를 내는 것이 마땅히 맞는 방법이다. 그런 ‘과정’을 갖는 게 중요하다. 요즘 우려스러운 것은 ‘사업’을 놓고 활동을 이야기한다. 일회적 사업이 반복되며 공모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을활동이 누굴 위해서 하는 건가? 나와 자녀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하는 건데 돈이 없으면 못하는 걸까? 적게 들이는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행정에서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언제든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계획을 만들고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수시공모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권한의 문제다.

주민자치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주로 쓰는 용어다. 전 세계적으로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거버넌스’다. 우리나라에 90년 초·중반에 들어온 거버넌스는 우리나라에서 민관협력정도로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거버넌스’는 ‘민관협력’과 염연히 다르다. 민관협력은 권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거버넌스는 정치지도자와 행정이 갖고 있는 권한을 시민들과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주민자치도 우리 주민들이 일정한 권한을 갖고 참여하는 것인데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주민자치는 기만이다. 조례를 보면 권한은 없다. 권한에 대해서 주어가 동장, 구청장으로 되어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인데 주민자치활동을 못한다. 거기에 50% 책임은 제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핵심은 권한의 문제다. 어떤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주민·시민에게 넘겨줘야 하는 논쟁은 있지만 넘겨줘야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대의제민주주의는 선거 때 우리가 투표하는 역할밖에 못하지만 선거 후 나머지 기간 동안 통치 당한다.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우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일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제 직접 민주주의,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통해서 결정을 할 때 우리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게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질적민주주의의 핵심적 내용이다. 참여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한다. 일정한 권한을 더 많이 행사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내용이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의 내용은 ‘참여’다. 주민자치는 참여를 어떻게 활성화하고 권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이자 자치역량을 길러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동체는 지향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자치역량을 길러갈 수 있다. 자치역량을 기르기 위해 유명 교수 불러다 강의한다고 해서 자치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설프다. 조금씩 하면서 그 능력이 길러진다. 민주적인 의사결정도 시민으로서 역량을 스스로 체험하고 훈련받는다. 공동체를 통해서 자치,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변화를 추구해 나갈 수 있다. 마을공동체는 자치의 지향을 보여주고 자치는 마을공동체 운동에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부여해준다는 차원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2강은 4월 12일(목) 오전 10시, <마을 민주주의, 스위스 란츠게마인데>를 주제로 제물포스마트타운 7층,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진행한다.

글 교육담당 / 사진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