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환을 위한 생태계 거점으로 공간을 상상하다

정선애(전 서울혁신기획관)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서서 새롭게 주목받게 된 것은 다양한 주체들이 모이고, 떠들고, 꿈꿀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소 수입반대 촛불집회 이래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린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상의 소소한 관심사를 나누는 공간, 다양한 지식과 정보와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공간에 대한 필요가 늘어났으며 마을에는 다양한 커뮤니티형 공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자극한건 2015년 서울시 은평구 질병관리본부가 이전한 자리에 본격적으로 문을 연 서울혁신파크라고 할 수 있다.

서울혁신파크는 3만평이라는 (109,691㎡, 건물 27개동)이라는 압도적 규모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직접 마주하는 사회문제의 답을 풀어가는 주체를 ‘사회혁신가’라 부르며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플랫폼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실험적이었다. 서울혁신파크에는 2021년 현재 약 250여 사회혁신 기관과 단체, 1,300여 명이 상주하고 있고,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젝트와 서울혁신센터라는 중간지원조직을 운영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역혁신정책관이라는 전담부서를 통해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을 조성하면서 공간을 기반으로 한 사회혁신실험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1년 현재 소통협력공간은 춘천, 전주가 문을 열었고, 제주, 대전, 충남, 울산에 조성될 예정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지역의 문제를 찾아 나가는 공론장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참여실험으로서 리빙랩, ’지역의 혁신자원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민관협력 거버넌스와 제도‘등에 공통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제주시가 전국 최초로 「가정 밖 청소년 자립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전주시가 버스회사, 전문가, 시민디자인단 등 47개 기관단체 협업으로 21년 마을버스노선 개편하는 등 체감할만한 성과들이 쌓이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플랫폼이자 공유재로서 공간을 상상할 때 강조하고 싶은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간은 그 시기, 그 지역 사회의 에너지와 필요를 담는다는 것이다.

서울혁신파크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사회혁신’담론과 실천이 한국 사회에서 10년여 무르익어 가던 시점이었다. 시민 누구나 문제해결자가 될 수 있고 이를 사회혁신가, 체인지 메이커라고 부르는 시도들이 희망제작소, 아쇼카 한국, SK 행복나눔재단 등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또한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소셜벤처 현장도 활발히 형성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들이 서울혁신파크라는 담대한 구상을 하는 배경이 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기후위기가 초래한 팬데믹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삶을 꾸려왔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탄소기반 문명을 생태 문명으로 전환하고, 인류생존을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온도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만들고 있다. 파리의 15분 도시처럼 일하고, 배우고, 돌보고, 여가를 즐기는 등 도시를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기능을 최대한 근거리에서 충족하고 회복력 있는 근접도시가 새로운 도시운영 패러다임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인천이 상상하는 새로운 공간은 도시전환을 위한 생태계의 거점으로 지역사회의 에너지와 필요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생산하는 공간, 경험하고 제안하는 공간에 대한 상상이다.

규모 있고 오랫동안 용도를 정하지 못해 방치되어 있는 공간을 재생할 경우에는 사무실, 회의실, 컨퍼런스, 네트워킹 공간 등으로 정형화된 공간기능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서울 이노베이션팹랩은 사회 문제 해결형 제작실험실로 폐자재와 원목을 활용하여 고양이 중성화 작업의 실효성과 개체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IoT 고양이 급식소를 제작하는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3D프린터, 레이저가공기, CNC 선반 등의 디지털 장비를 갖춘 팹랩은 대표적인 제작, 생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펜데믹이 지속되면서 복지 사각지대의 돌봄 공백도 심각하다. 지역의 복지기관, 마을부엌, 먹거리 사회적 경제 기업 등이 함께 로컬 푸드로 간편 보존식을 개발해서 거동이 불편해 정기적으로 장을 보기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하는 사업구상을 할 수 있다. 이때 정말 필요한 인프라는 법적 기준에 부합하고 간편 보존식 개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유주방이다. 옷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추나 지퍼 등이 따로 분리되어 관리되어야 하고 비슷한 소재의 천들이 구분되어 있어야 다양한 용도로 재생이 가능하다. 동네마다 더 많아져야 할 되살림 가게가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소재은행 인프라가 없어서이다.
팹랩, 공유주방, 소재 은행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지역이나 집수리할 때 나오는 목재와 재생 가능한 자재들을 보관하는 규모 있는 창고 등은 소비하는 도시에서 생산하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인프라이다. 이러한 공동인프라는 훨씬 개방적으로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달라질 삶을 디자인하고 미리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커먼즈로서의 공간이다.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수단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국가, 가정경제, 시장이다. 국가는 전체 국민을 위해 공공재를 생산하고, 가정경제는 가족성원들을 위해 핵심재화를 생산하고 돌보며, 시장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재화를 생산한다. 반면 커먼즈는 공동체를 위해 함께 생산하고 관리하는 시민 공유재를 만들고, 도시에서 발생한 부가 도시를 함께 만들어 온 모두에게 정당한 권리로 속하게 하는 것이다.
커먼즈로서의 공간은 이 공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할까를 궁리하는 단계부터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공동의 인프라로 만들어 가는 기능과 규칙을 만들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더 많은 공유재를 만들며, 이 공간에서 생산된 부와 가치가 다시 함께 만든 사람들에게 귀속되게 하는 가치를 공유함으로서 가능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설이 잘 조성된 공간일수록 입주한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중간지원조직은 입주자 관리조직으로 민원을 상대하기도 버거워 하며,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진 고립된 섬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관협력으로 공간을 조성해 나갈 때 필요한 몇 가지 제언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행정의 입장에서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첫 단추는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실 마스터 플랜이 어떻게 만들어지냐가 이후 행정절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대체로 마스터 플랜은 시책연구기관이나 민간용역을 통해 행정내부절차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 민관이 함께 열린 논의를 해나가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현재 행정의 관행이나 기준으로는 공간을 운영할 주체를 미리 선정하고 공간이 조성되기 전부터 다양한 관심사를 모아 주체를 형성하고, 공간설계에 반영하고, 공간의 정체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실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도 공간의 성격과 요구를 잘 모르는 채 공간을 만들고, 막상 운영자가 선정되고 나면 공간도, 주체도, 프로그램도 새롭게 만들어나가느라 초기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된다. 공간조성 전 운영 주체를 선정하는 사례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으니 이 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민관협력으로 조성하는 공간의 경우, 대부분 인프라의 질과 규모, 사업비가 정책결정자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므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한 답은 민간이 공간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적극적으로 조달하고, 거버넌스를 내실 있게 운영하며, 공간을 기반으로 한 활동이 지역사회의 새로운 네트워크와 이니셔티브를 얼마나 만드느냐에 달려있다.